본문 바로가기

필독!초기경전/2. 잡아함경

45. 각경(覺經)46. 삼세음세식경(三世陰世識經)7)

잡아함경 45. 각경(覺經)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 계셨다.

그 때 세존께서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5수음이 있다. 어떤 것이 다섯 가지인가? 색수음(色受陰)과 수(受受陰)·상수음(想受陰)·행수음(行受陰)·식수음(識受陰)이니라. 만일 사문 바라문이 '나는 있다'고 본다면, 그들은 모두 이 5수음에서 나[我]를 보는 것이니라. 여러 사문 바라문은 '색이 곧 나다. 색은 나와 다르다. 나는 색 안에 있다. 색은 나 안에 있다'고 본다. 수·상·행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며, '식은 곧 나다. 식은 나와 다르다. 나는 식 가운데 있다. 식은 나 가운데 있다'고 본다.

 

어리석고 무식한 범부들은 무명(無明)으로 말미암아 '색이 곧 나다. 나와 다르다. 나와 나 아닌 것이 함께 있는 것이다'라고 보고, '나[我]는 진실한 것이다'고 말하며 버리지 않는다. 버리지 않기 때문에 모든 근(根)은 더욱 자라고, 모든 근이 더욱 자란 뒤에는 모든 접촉[觸]을 더하며, 6촉입처(觸入處)에 부딪치기 때문에 어리석고 무식한 범부들은 괴롭거나 즐거운 감각을 일으키나니, 그것은 다 촉입처로부터 일어나는 것이니라. 어떤 것이 여섯 가지인가? 이른바 안촉입처(眼觸入處)와 이촉입처(耳觸入處)·비촉입처(鼻觸入處)·설촉입처(舌觸入處)·신촉입처(身觸入處)·의촉입처(意觸入處)니라.

 

이와 같이 비구들아, 의계(意界)와 법계(法界)와 무명계(無明界)가 있다. 어리석고 무식한 범부들은 무명의 접촉[無明觸]으로 말미암아 있다는 감각, 없다는 감각,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다는 감각, 내가 낫다는 감각, 나는 그와 같다는 감각, 나는 못하다는 감각, 나는 알고 나는 본다는 감각을 일으키나니  이와 같이 알고 이와 같이 보는 감각은 다 6촉입처를 말미암기 때문이니라.

 

그러나 많이 아는 거룩한 제자들은 이 6촉입처에서 무명을 버리고 밝음을 내어, 있다는 감각, 없다는 감각,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다는 감각, 나는 낫다는 감각, 나는 그와 같다는 감각, 나는 못하다는 감각, 나는 알고 나는 본다는 감각을 일으키지 않는다. 이렇게 알고 이렇게 보고 나면 먼저 일어났던 무명의 접촉[無明觸]은 소멸하고, 그 뒤에는 밝음의 접촉[明觸]의 감각이 일어나느니라."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잡아함경 46. 삼세음세식경(三世陰世識經)7)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 계셨다.

그 때 세존께서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5수음이 있다. 어떤 것이 다섯 가지인가? 색수음과 수수음·상수음·행수음·식수음이니라. 만일 사문 바라문이 숙명을 아는 지혜[宿命智]로써 여러 가지 숙명을 안다면, 즉 이미 알았거나 장차 알 것이거나 현재 안다면, 그것은 다 이 5수음에서 대해 이미 알았거나 장차 알 것이거나 현재 아는 것이니라. 곧 '나는 과거에 이러한 색(色)이었고, 이러한 수(受)였으며, 이러한 상(想)이었고 이러한 행(行)이었으며, 이러한 식(識)이었다'고 아는 것이다.

 

만일 그것이 걸리고 나뉠 수 있는 것이라면 이것을 색수음(色受陰)이라 하느니라. 또 걸리는 것으로서 손·돌·막대기·칼·추위·더위·목마름·굶주림이나 혹은 모기나 등에 같은 모든 독한 벌레·바람·비에 부딪치는 것을 가리켜 그것을 부딪치고 걸리는 것이라 하나니, 그러므로 걸리는 것을 다 색수음이라 한다. 또 이 색수음은 무상하고, 괴로우며, 변하고 바뀌는 것이니라.

 

모든 느끼는 모양은 다 수수음(受受陰)이니, 무엇을 느끼는가? 괴로움을 느끼고, 즐거움을 느끼며, 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음을 느끼나니, 그러므로 느끼는 모양을 수수음이라 한다. 또 이 수수음은 무상하고, 괴로우며, 변하고 바뀌는 것이니라.

 

모든 생각[想]은 다 상수음(想受陰)이니, 무엇을 생각하는가? 적은 생각·많은 생각·한량이 없는 생각·전혀 가진 것이 없을 때 가진 것이 없다고 생각하는 생각이니, 그러므로 상수음이라 한다. 또 이 상수음은 무상하고, 괴로우며, 변하고 바뀌는 법이니라.

 

지어 가는 모양은 행수음(行受陰)이니, 무엇을 지어 가는가? 색에 대해서 짓고, 수·상·행·식에 대해서 짓나니, 그러므로 지어 가는 모양을 행수음이라 한다. 또 이 행수음은 무상하고, 괴로우며, 변하고 바뀌는 법이니라.

 

분별해 아는 모양은 식수음(識受陰)이니, 무엇을 아는가? 빛깔을 알고, 소리·냄새·맛·감촉·법을 아나니, 그러므로 이것을 식수음이라 한다. 또 이 식수음은 무상하고, 괴로우며, 변하고 바뀌는 법이니라.

비구들아, 저 많이 아는 거룩한 제자들은 이 색수음에 대해서 이렇게 배운다.

 

'나는 현재 색(色)에게 먹히고 있다. 과거 세상에서도 이미 현재와 같이 저 색에게 먹혔었다.'

그리고 그는 다시 '나는 현재 색에게 먹히고 있다. 내가 만일 미래의 색을 즐거워하고 집착한다면 다시 현재와 같이 그 색에게 먹히게 될 것이다'라고 생각한다. 그는 이렇게 생각한 뒤에는 과거의 색을 돌아보지 않고, 미래의 색을 즐거워하거나 집착하지 않으며, 현재의 색에 대해서도 싫증을 내고, 탐욕을 떠나며, 재앙을 소멸하고, 소멸하는 길로 향하느니라.

 

수(受)·상(想)·행(行)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며, 많이 아는 거룩한 제자들은 식수음에 대해서 이렇게 배운다.

'나는 현재, 현재의 식(識)에게 먹히고 있다. 과거 세상에서도 이미 현재와 같이 식에게 먹혔었다. 내가 이미 현재의 식에게 먹히고 있으면서, 만일 다시 미래의 식을 즐거워하고 집착한다면, 반드시 장래에도 현재와 같이 식에게 먹히게 될 것이다.'

 

그는 이렇게 안 뒤에는 과거의 식을 돌아보지 않고, 미래의 식을 즐거워하지 않으며, 현재의 식에 대해서도 싫증을 내고, 탐욕을 떠나며, 재앙을 소멸하고, 소멸하는 길로 향하느니라. 그래서 소멸하고서 증가시키지 않고, 물러나서 나아가지 않으며, 소멸하고서 일으키지 않고, 버리고서 취하지 않느니라.

무엇을 소멸하고서 증가시키지 않는가? 색을 소멸하고서 증가시키지 않고, 수·상·행·식을 소멸하고서 증가시키지 않는다.

 

무엇에서 물러나 나아가지 않는가? 색에서 물러나 나아가지 않고, 수·상·행·식에서 물러나 나아가지 않는다.

무엇을 소멸하고서 일으키지 않는가? 색을 소멸하고서 일으키지 않고, 수·상·행·식을 소멸하고서 일으키지 않는다.

무엇을 버리고서 취하지 않는가? 색을 버리고서 취하지 않고, 수·상·행·식을 버리고서 취하지 않느니라.

소멸하고서 증가시키지 않나니 고요히 소멸하여 머무르고, 물러나서 나아가지 않나니 고요히 물러나 머무르며, 소멸하고서 일으키지 않나니 고요히 소멸하여 머무르고, 버리고서 취하지 않나니 얽매이지 않느니라. 얽매이지 않고 나면 스스로 열반을 깨달아 '나의 생은 이미 다하고 범행은 이미 섰으며, 할 일은 이미 마쳐 후세의 몸을 받지 않는다'고 스스로 아느니라."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셨을 때, 많은 비구들은 어떤 번뇌도 일으키지 않고 마음이 해탈하였다.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아(我)·비하(卑下)·종자(種子)와

봉체(封滯)·오전(五轉)·칠처(七處)와

취착(取著)·계착(繫著) 두 가지와 각(覺)과

삼세음세식(三世陰世食)8)을 설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