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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독!초기경전/2. 잡아함경

한글 잡아함경 해제

한글 잡아함경 해제


-------------------------------------------------------------이 글은 동국역경원에서 발행한 한글대장경 잡아함경 제1권에 나오는 해제이다. 이 해제는 누구의 작품인지 밝혀져 있지 않다. 내용 가운데 일부 수정되어야 할 부분도 있지만, 초보자가 팔리삼장과 한역 아함경의 관계를 이해하는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것이라고 사료되어 여기에 옮겨 싣는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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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근본경전(根本經典)


아함경(阿含經)이라고 부르는 한 무리의 경전군(經典群)이 근본경전이다. 아함(阿含)이라고 하는 말은 원어(原語) 아가마(Agama)를 중국의 역경승(譯經僧)이 음사(音寫)한 말이며, 그 뜻은 ‘도래(到來)한 것’ 또는 ‘전래(傳來)해 온 것’이란 뜻으로서 아함경이라고 하면 ‘전래해 온 경’이란 뜻이다. 그리고 아함이라고 하는 음사 이외에도 중국의 역경승은 아급마(阿笈摩)․아가마(阿伽摩)라고 하는 음사를 쓰기도 하나 경의 이름으로는 아함을 사용하는 것이 통례이다. 또 아함경에 수용되고 있는 경전군을 남방불교에서는 빤짜-니까야(Panca- nikaya)라고 통틀어서 부른다.


이들 아함경의 경전군이 중국에 전해져 한역(漢譯)된 시기는 대략 서기 4세기의 끝 무렵으로부터 5세기의 전반이다. 이 사이에 한역된 아함경을 아함사부(阿含四部)라고 하는데 다음과 같다.


1. 중아함경(中阿含經) 60권, 224경, 승가제바(僧伽提婆 Samghadeva)역, 한역년대 397-398.

2. 증일아함경(增一阿含經) 51권, 472경, 승가제바 역, 한역년대 397.

3. 장아함경(長阿含經) 22권, 30경, 불타야사(佛陀耶舍 Buddhayasas) · 축불념(竺佛念)의 공역(共譯), 한역년대 413.

4. 잡아함경(雜阿含經) 50권, 1362경, 구나발타라(求那拔陀羅 Gunabhada)역, 한역년대 435.


이 네 가지 이외에 이역(異譯)으로서 별역잡아함경(別譯雜阿含經) 16권, 364경과 잡아함경(雜阿含經) 1권, 27경 등이 있다.


오늘 날 전해지고 있는 아함경의 경전군은 거의 완역(完譯)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전부를 번역 수록하고 있다. 그럼에도 중국에서 이 경전이 받은 대접은 무시되고 독송(讀誦)되지 않았으며 연구도 되지 않았다. 중국불교를 본 뜬 우리나라 불교계에서의 대접도 예외는 아니었고 일본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그것은 아함경을 소승경전(小乘經典)이라고 보는데 그 원인이 있다. 아함경을 소승경전으로 단정하는 전통적 학설은 중국의 유명한 천태 지의(天台智顗)가 주장한 ‘오시(五時)의 교판(敎判)’이다. 이 오시의 교판이라고 하는 것은 부처님이 일대에 거쳐 설한 교법(敎法)을 시대와 내용별로 분류한 것이다. 이러한 분류의 발상은 법화경 신해품(信解品)에서 설하는 ‘가난한 아들의 비유’에서 부처님 일대의 교법을 다섯 시기로 나눈 것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다섯 시기, 즉 오시(五時)란 다음과 같다.


(1) 화엄(華嚴)의 시기

보리수(菩提樹) 아래서 대각(大覺)을 성취한 석존(釋尊)은 그 나무 아래에서 삼칠일(三七日) 동안 깨달은 그대로의 높은 경지의 가르침을 설했다. 그것이 화엄경의 내용이다. 때문에 이 기간 (21동안)을 화엄시(華嚴時)라고 한다.


(2) 녹원(鹿苑)의 시기

그러나 이 화엄경의 내용은 지혜가 없고 우둔한 세상 사람들에게는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그래서 그 다음 단계에서 부처님은 이 우둔하고 무지한 세상 사람을 위해 그들이 알기 쉬운 낮은 경지의 교법을 설하였다. 12년간 녹야원(鹿野苑)에서 설해진 내용을 위에서 든 네 가지 아함경(阿含經)이 담고 있다. 이 시기를 녹원시(鹿苑時)라고 한다.


(3) 방등(方等)의 시기

녹야원의 시기에서 설해진 경지는 낮으나 구체적인 교법으로 우둔하고 무지한 세상 사람들을 깨우친 다음 점차 정도를 높여 유마경(維摩經)과 승만경(勝鬘經)과 같은 대승경전을 설하였다. 이 기간은 약 8년간이었으며, 이 시기를 천태 지의는 방등시(方等時)라고 했는데, 방(方)이란 넓다[廣]의 뜻이며, 등(等)은 평등의 뜻으로서 대승(大乘)의 다른 표현이다. 따라서 방등시는 대승의 시기라고 할 수 있다.


(4) 반야(般若)의 시기

다음으로 22년간에 걸쳐 반야경(般若經)을 설했다.


(5) 법화(法華)와 열반(涅槃)의 시기

최후의 8년간 법화경을 설하고, 그 다음에 하루 밤과 낮 동안에 열반경(涅槃經)을 설하여 ‘법신(法身)은 상주(常住)하며 모든 중생은 다 성불(成佛)한다’고 하는 불교의 이상을 밝혔으므로 이 시기를 열반시(涅槃時) 또는 법화열반시(法華涅槃時)라고 한다.


고려 체관(諦觀)의 [천태사교의(天台四敎儀)] 첫 머리에 이같은 천태 지의의 오시설(五時說)을 가리켜 ‘천태지자(天台智者) 대사는 오시팔교(五時八敎)로써 동쪽에 전해진 부처님 일대의 성교(聖敎)를 남김없이 판석(判釋)하였다’고 찬탄하고 있다. 그러나 천태 지의의 오시설이 가리키고 있듯이 아함경이 중국과 우리나라에서 무지하고 우둔한 사람을 대상으로 한 낮은 경지의 교법이라고 해서 무시 당한 것은 오늘의 대부분의 불교학자들이 부처님이 설한 원초적(原初的) 모습을 하고 있는 경전으로서 아함경을 중요시하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최근 우리나라의 불교계에서는 아함경을 근본불교 즉 부처님께서 설한 경전 가운데서 불교의 원초적인 모습을 담고 있는 경전으로서 중요시하고 있는데 이것은 서양의 학자들, 리스 데이빗(T.W. Rhys Davids)이나 올덴베르그(H. Oldernberg) 등에게서 자극을 받은 바 있고, 또 남전장경(南傳藏經)을 접하게 되면서였다. 남전장경은 북쪽으로 전해진 한역경전(漢譯經典)인 북전경전(北傳經典)과 달리 실론 등 남쪽에 전해진 경전으로서 파리어(巴利語)로 기술되어 있으므로 파리장경(巴利藏經) 또는 파리삼장(巴利三藏)이라고 한다. 이 파리삼장 중 율과 논을 제외한 부분은 5부로 되어 있으므로 파리오부(巴利五部)라고 하는데, 앞에서 말했듯이 빤차-니까야라고 통들어 말한다.


이 오부로 되어 있는 팔리오부를 한역경전 아함경과 대비하면 다음과 같다.


(1) 장부경전(長部經典 Digha-nikaya) 34경은 한역의 장아함경(長阿含經)에 해당하며 수용하고 있는 경의 수도 거의 비슷하고 내용도 거의 일치한다.

(2) 중부경전(中部經典 Majjhima-nikaya) 152경은 한역의 중아함경(中阿含經)에 해당하며 이것도 역시 수용하고 있는 경의 수와 경의 내용이 거의 일치하고 있다.

(3) 상응부경전(相應部經典 Samyutta-nikaya) 7762경은 잡아함경(雜阿含經)에 해당하는 경이지만, 얼핏보기에 같은 경전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명칭도 다르고 경의 수도 다르다. 그러나 경의 수가 다른 것은 후대에 와서 불어났을 가능성이 있고, 중요한 내용과 경이 거의 일치하고 있으며, 잡아함경을 ‘상응아함(相應阿含)’이라고 부르는 점으로 보아 별개의 경전으로 간주하기보다는 같은 경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4) 증지부경전(增支部經典 Anguttara-nikaya) 9557경은 우선 그 명칭이 증일아함경(增一阿含經)과 같은 뜻이다. 그리고 경을 편찬하는 태도가 같다. 1에서 시작하여 차례로 경의 수를 중가하여 11에 이르는 편집방식에 따라 여러 경을 분류하고 있는 것이 같다. 다만 증지부경전의 경 수가 현저히 많은 것은 셈하는 방식의 특수성 때문일 것이라고 보고 있다.

(5) 소부경전(小部經典 Khuddaka-nikaya) 15분(分)은 파리삼장 중 가장 늦게 편성된 경으로서 한역 사아함(四阿含)에 해당하는 경은 없다. 소부경전이 이루어졌을 때는 이미 한역의 사아함이 다 번역된 다음이어서 그의 추가에 대한 관심이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한역의 사분율(四分律)이나 오분율(五分律) 여기 저기에서 소부경전에 수록된 내용을 볼 수가 있어 소부경전에 해당하는 경전이 한역경전 속에 들어 있음을 알 수 있다.


2. 부처님의 체취를 느끼게 하는 경


위에서 살펴본 바로는 한역사아함(漢譯四阿含)은 2,479경을 수록하고 있고, 파리삼장은 소부경전을 제외하고 무려 17,505경을 수록하고 있다. 이같이 방대한 경전은 제일결집(第一結集)에서 이루어졌다고 하는 것이 통설이다. 그러나 불과 7개월간의 결집기간에서 이같이 방대한 경전군(經典群)이 성립되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하는 것 또한 통설이다. 따라서 제일결집에서 이루어진 이 근본경전은 그 이후 여러 차례에 걸쳐 증가되고 부가(附加)되었으리라고 보는 것이 타당시되고 있으며 한역 사아함의 경우, 최후로 한역된 잡아함경의 한역년대 435년을 기준으로 했을 때, 약 1백년을 거슬러 올라간 335년 그 이전에 아함경의 증가(增加)는 이루어졌으리라고 본다.


제일결집 이후 수백년에 걸쳐 양이 많아지고 내용에 변화가 있었음을 추정함에도 불구하고 이 경전이 부처님이 설한 교법의 원형(原形)에 가깝고, 또 그 참 모습을 찾는데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은 이 경이 교단의 발전에 따라 파생한 여러 부파(部派)와 관계가 있고, 그것은 훨씬 먼 기원전으로 거슬러 올라 현존(現存)의 경전이 성립되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파리삼장(巴利三藏)은 상좌부(上座部)에 속하고 한역의 잡아함경은 설일체유부(說一切有部)에 속하며 증일아함경은 대중부계통이라고 한다. 그리고 이들 부파들이 한역의 사아함이나 파리삼장을 토대로 해서 율법(律法)의 결집을 하고 있는 것을 감안하면 소부경전을 제외한 파리삼장이나 아함경은 부파불교 이전에 이미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또 다음과 같은 차례로 이루어졌음도 알 수 있다. 그 차례대로 살펴보면, 이들 중에 잡아함경과 상응부경전은 가장 소박한 경전들을 모은 것이다. 이 때의 상응(相應)이라고 하는 말은 ‘결합(結合)하다’ ‘묶다’의 뜻을 가진 Samyutta의 번역으로서 같은 종류에 속하는 교설의 경을 모았다는 뜻이다. 그러나 한역의 잡아함경에서 잡(雜)이라고 하는 것은 아주 작은 것들이 모여 있다는 뜻으로 쓰고 있다. 따라서 여기 실린 경전들은 아주 짧고 간결하며 지극히 구체적이고 교훈적이다. 뒤에 결집된 많은 경은 법상(法相)이라고 하는 경전의 체계화와 분별(分別)이라고 해서 논리화(論理化)하고 있으나 이 경전군(經典群)은 하지 않고 있고, 따라서 이 경전을 읽고 있으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눈 앞에 부처님의 모습을 그리게 되는 체취를 맡게 된다. 여기에 모든 경전의 모체(母體)가 되는 까닭이 있으며 불교의 근본경전으로서의 면목이 있다 할 것이다. 잡아함경 · 상응부경전은 인연(因緣)이라든가 오온(五蘊) · 육처(六處)라고 하는 술어(術語)와 사리불(舍利弗) · 아난(阿難) · 바기사(婆耆沙) 등의 인명(人名)과 제석(帝釋) · 범천(梵天) · 악마(惡魔) 등의 항목을 세우고 그에 해당하는 내용을 짧막한 경에 담아 설하고 있다.


잡아함경 · 상응부경전이 원형적(原形的)인 것이라고 하면 중아함경과 그에 해당하는 중부경전은 경의 크기가 약간 커진 경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서 말한 중(中)은 크기가 약간 커져서 아주 짧은 잡아함경이나 상응부경전보다는 커서 중간에 위치한다는 뜻이다. 이 경전군에서 주목할 것은 부처님의 말씀만이 아니고 제자들의 말도 많이 싣고 있는 점이다. 예를 들면 중부경전의 제분별경(諦分別經)과 이와 동본(同本)인 중아함경의 분별성제경(分別聖諦經)을 들 수 있다. 이들 경은 부처님이 설한 사성제(四聖諦)를 약설하고 다음에 사리불(舍利弗)이 사성제에 대해서 상세하게 분석해서 설명하고 있고 그것이 경의 주체가 되어 있다.


그리고 보다 많이 불어나고 길어진 것이 장부경전이며 장아함경이다. 이 경전군의 첫째 분단에서는 불전(佛傳) 내지는 불타관(佛陀觀)을 설하고 있고, 둘째 분단에서는 불타관 및 법상(法相), 즉 교의(敎義)의 강목(綱目)의 체계화에 관하여 설하고 있으며, 셋째 분단에서는 외도(外道)에 관해서 설하고 있고, 장부경전에는 없으나 장아함경의 네 번째 분단에서는 기세경(起世經)이 설해지고 있다. 이러한 장아함경의 편집태도는 그 때, 부처님의 전기와 불타관과 법상(法相)의 체계화와 외도의 사상에 대한 관심이 높았음을 알 수 있고, 이같은 단계적인 아함경의 발전은 그 때마다 그에 상응하는 시대적 요구가 있었음을 쉽게 상상할 수가 있다.


3. 인간(人間)에 대한 음미(吟味)


그러한 요구 가운데 이미 대승에 대한 욕구가 있었음도 볼 수가 있다. 즉 한역의 증일아함경(增一阿含經)에서 자주 그것을 접하게 되는데 1권에서 ‘세존(世尊)의 가르침은 각각 다르다. 보살은 뜻을 내어 대승으로 나아가고 여래(如來)는 여러 가지로 그 구별을 설한다’하였으며 또 18권에서는 ‘사리불아, 마땅히 알아라. 여래에게는 네 가지 불가사의한 일이 있다. 소승이 능히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하였으며, 이것이 이 경은 대중부에 속한다고 보는 근거이기도 하다.


경의 결집에 있어서 주어지는 요청은 그 경의 내용을 수용하는데 영향을 준다. 아함경의 원형이라고 할 수 있는 잡아함경․상응부경전도 그 뒤에 성립되는 다른 아함부 경전과 다름 없이 그러한 요청을 받아들인 것으로 간주되어 틀리지 않을 것이다. 대체로 그 구성과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째, 부처님의 설법 중에서 존재의 법칙에 관한 설법을 모은 부분이 있다. 한역에서는 잡인송(雜因誦)이라 했고 상응부에서는 인연품(因緣品)이라고 한다.

둘째, 상응부에서는 온품(蘊品), 잡아함에서는 오온품(五蘊品)이라고 하는 부분으로서 인간(人間)에 대한 음미(吟味)를 내용으로 하는 설법을 모았다. 이 때, 온(蘊)이란 인간을 구성하고 있는 물질적 요소 즉 지(地) · 수(水) · 화(火) · 풍(風)과 정신적 요소인 식(識)을 말한다.

셋째, 인간의 감관(感管)과 그 대상의 인식에 관한 설법을 내용으로 한 부분으로서 잡아함은 육입처송(六入處誦), 상응부는 육처품(六處品). 육처(六處)는 안(眼) · 이(耳) · 비(鼻) · 설(舌) · 신(身) · 의(意)의 여섯 가지 감관(感管)과 그 대상인 색(色) · 성(聲) · 향(香) · 미(味) · 촉(觸) · 법(法)의 여섯 가지에 통하는 말이며, 육입처(六入處)의 입(入)은 섭입(涉入)의 뜻으로서 여섯 가지 감관과 그 대상이 서로 관계하여 인식이 성립되는 것을 의미한다.

넷째는 실천방법에 관한 설법을 모은 부분으로서 상응부는 대품(大品), 잡아함은 도송(道誦). 상응부가 이 부분을 대품이라고 한 것은 실천의 길을 가장 중요시한다는 뜻이다.

다섯째는 앞의 네 부류가 설법의 내용을 중심으로 해서 모아진 것과는 달리 시(詩)의 형식을 한 것들을 모은 것이다. 잡아함은 송게송(頌偈誦), 상응부는 유게품(有偈品)이다. 게(偈)란 가사(歌詞) · 시(詩)를 뜻한다.


4. 민중문학(民衆文學)으로서의 경


아함부경전만이 아니고 많은 경전을 문학적인 입장을 주어서 흔히 불전문학(佛典文學)이라고 부른다. 혹은 경 전체를 불전문학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리고 경이 결집된 이후 구송(口誦)에 의해서 전해졌고, 문자(文字)로 기술된 뒤에도 계속 구송되었기 때문에 구송문학(口誦文學)이라고도 한다. 대부분의 경이 그렇지만 설법은 중요한 부분에서는 거듭 설해지고 혹은 게송(偈頌)으로 그 가르침을 재확인하는 형식을 많이 취하고 있다. 잡아함경의 송게송(頌偈誦)과 상응부의 유게품(有偈品)은 시의 형식을 가진 최초의 경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파리오부(巴利五部)의 소부경전(小部經典)에 유명한 법구경(法句經)을 비롯하여 자설경(自說經) · 경집(經集) · 장로게경(長老偈經) · 장로니게경(長老尼偈經) 등이 있고, 이러한 경들 역시 향기 높고 원초적(原初的)인 점에서는 잡아함의 ‘송게송’과 상응부의 유게품과 같다. 그리고 이것들이 원작의 모습을 찾아가는데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그것은 게송(偈頌) 즉 운문(韻文)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긴 문장으로 되어 있는 산문(散文)에 비해서 구송(口誦)하기 쉬울 뿐 아니라 변화가 적을 것이므로 옛 형태를 보존하는데 적합하기 때문이다.


게송(偈頌)이란 말의 원어는 우다나(Udana 優陀那)이다. 한역자가 게(偈)라고 한역한 이 말을 불교학자들이 영어로 표현할 때는 “breathing out"라고 한다. 영감(靈感)을 토로(吐露)하거나 가슴 가득히 들이 쉰 숨을 토해 내는 것을 표현하는 말이다. 이것은 부처님이 우다나를 ‘환희지(歡喜地)로 인하여 이루어진 게송에 관한 82경(經)은 우다나라고 알아야 한다’고 해석한 것을 잘 나타내고 있다.


환희지(歡喜地)란 환희를 얻는 지위이다. 보살이 깨달음의 최초의 단계에 도달해서 얻는 지위이며, 이 지위는 보살의 지위 중 최초의 단계이다. 이 때의 보살이란 단순히 구도자(求道者), 불도(佛道)를 수행하는 사람이라고 이해하면 족하다. 불도를 찾는 중생이면 다 보살이다. 어떻게 중생은 이 환희지에 도달할 수가 있는가. 부처님의 가르침을 듣고 깨달음으로써 가능하다. 그러므로 부처님의 가르침을 듣고 가슴 가득히 차 오른 깨달음의 환희를 우다나로 토로한다. 따라서 시를 수용하고 있는 경은 처음에 부처님의 가르침을 설하고, 그 중요한 부분은 거듭 설하고 다음에 게송이 이어지는 독특한 문학형식을 갖고 있다. 그래서 상응부의 유게품(有偈品)과 같이 게송이 있는 경을 한역자들은 부처님의 설법을 거듭 노래한 경우를 들어 중송(重頌)이라고 한역하고, 또 부처님의 설법에 응답(應答)하거나 그에 상응한 노래라고 하는 뜻을 나타내기 위해 응송(應頌)이라고 한역하였다. 이같이 산문과 운문(韻文)이 함께 하는 경을 범어로는 기야(祇夜 geyya)라고 통틀어 부른다.


산문에 이어 불리어진 게송이건 게송만으로 이루어진 경이건, 시가 등장하므로 해서 경에 변화가 주어지는 점을 또한 주목할 필요가 있다. 앞에서 구송(口誦) 시대에 암송(暗誦)하기 쉬운 시형식(詩形式)의 게송은 부처님의 설법의 옛 형태를 그대로 보존하는데 도움이 되었다고 했으나, 그와 동시에 쉽게 증폭(增幅)되는 가능성 또한 지니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잡아함경 45권․상응부경전 8권에 의하면 부처님의 제자 가운데 바기사(婆耆沙)라고 하는 시인이 있었다. 그는 어느 날, 부처님에게 ‘세존이시여, 저에게 시상(詩想)이 일고 있습니다’하였다. 부처님은 미소하며 ‘바기사여, 음송(吟誦)함이 좋으리라’하였다. 이 두 스승과 제자 사이에 오간 대화에서 경에 시가 삽입될 충분한 가능성을 볼 수가 있다.


부처님 당시의 시인들은 오늘의 시인과 같이 글로써 시를 쓰는 것이 아니었다. 오늘의 시인들은 고대의 시인과는 달리 상당한 기간 시상(詩想)을 성숙시키고 용어를 선택하여 작품을 완성하며 누구가 지었다고 하는 기록이 붙는다. 그러나 아함경 시대의 시인들은 읊으면 그만이었다. 누가 지었다고 하는 것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작품이 좋으면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면서 퍼져나갔다. 때문에 이러한 시들은 무명씨(無名氏)의 작품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고 그들이 지은 시는 바기사와 같이 특별하게 알려진 것이 아니면 민중이 작자이고 그대로 민중의 시라고 해도 좋을 것들이었다. 일상생활이나 구도자로서의 수행 도중에 발생한 시는 민중 속을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면서 변화하기도 하고 양을 증감해 가면서 불리어졌으므로 이것은 오늘의 시와 같이 한 개인의 산물이 아니라 공동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때문에 불전문학에 있어서의 시는 부처님의 설법을 접하고 얻은 깨달음의 환희가 가슴에 차올라 토로된 것을 민중이 수용하고 민중이 변화시키고 증감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점 가장 오래 된 민중문학의 작품이라고 할 것이다. 이것이 가능했던 것은 아함경을 비롯한 불전문학이 구송(口誦)으로 전승(傳承)되었기 때문임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


다른 측면에서, 즉 아함경의 내용을 중심으로 해서 문학형식을 말한다고 하면 첫째 악마가 나타나 부처님에게 이야기를 하는 악마설화(惡魔說話)가 있다. 이것은 하나의 심리묘사의 문학형식이다. 이러한 문학형식은 초기경전(初期經典)에 가장 많이 보이는 형식이며 인간의 불안․공포․의혹(疑惑) 등이 사람의 마음에 작용할 때, 그것을 묘사하기 위해 악마의 설화가 동원되었다. 그리고 다음은 범천설화(梵天說話)가 있다. 범천이 나타나 부처님에게 이야기하는 이 설화는 앞의 악마설화에 대응하는 것으로서 부처님의 의도(意圖)나 발상(發想)에 관한 묘사를 할 때, 범천설화의 문학형식을 취하고 있다. 이 밖에 비구에 대하여 악마가 하는 이야기를 계기로 비구에 상응하는 설화를 동원한 문학형식이 있다.


이 밖에도 여러 가지 경이 묘사하고 있는 문학형식은 다양하다. 그러나 어떠한 문학형식을 취한 경이든 부처님의 설법을 전하는 양식과 분위기는 달라도 부처님의 가르침을 정연(整然)한 이로(理路)를 가지고 이미지화(化)하고 친근감을 갖고 접할 수 있도록 소박한 메세지를 전하고 있음을 아함경의 경전군(經典群)에서 볼 수 있다.



출처 :  직접 서술 법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