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월스님은 충남 홍성에서 태어나셨는데 아버지․어머니가 모두 세 살 안에 돌아가셔서 외삼촌 집에 의지하여 살았습니다.
모두가 가난했던 조선 말기에 내 가족들도 못 먹여 살리는 형편이었으므로 외삼촌은 남의 눈도 있고 하여 생질을 데려다 놓았지만, 부담도 되고 힘도 들어 머슴처럼 부렸습니다. 20세가 넘어가면서 스님은 동네 사람들이 남녀 할 것 없이 모두 결혼을 하여 아이를 업고 다니는 것을 보고 생각했습니다.
‘이렇게 사느니 산골로 들어가 중노릇을 하며 살리라.’
결심을 한 그는 서산 천장사(天藏寺)로 출가하여 성원(性圓)스님의 제자가 되었지만, 배우지 못한데다 머리까지 둔하여 불경을 배워도 쉽게 이해하지를 못했습니다.
성원스님이 예불문을 일러주면서 ‘따라 읽어라’고 하면 따라 읽었지만, ‘혼자서 읽어보라’고 하면 한 구절도 못 외우는 것이었습니다. 몇 번을 그렇게 해보다가 은사 성원스님은 글을 가르치는 것을 포기하고 땔나무를 해오는 부목(負木), 밥을 짓는 공양주(供養主) 등의 소임을 3년 동안 맡겼습니다.
그런데 기적 같은 일이 벌어졌습니다. 수월스님이 불공할 때 올릴 마지를 지어 법당으로 갔을 때, 마침 부전스님(불공을 주관하는 스님)이 신묘장구대다라니를 송(頌)하고 있었습니다.
“나모라 다나다라 야야 나막알약 바로기제 새바라야 모지 사다바야 … 나모라 다나다라 야야 나막알약 바로기제 새바라야 사바하.”
스님은 이를 한 번 듣고 모두 외울 수 있었습니다. 그토록 머리가 좋지 않다고 구박을 받았는데, 총 442글자의 신묘장구대다라니가 저절로 외워진 것입니다. 이후 스님은 나무를 하러 가거나 밥을 짓거나 마냥 신묘장구대다라니를 흥얼거리며 다녔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은사 성원스님이 법당에서 불공을 드리다가 마지 오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당연히 제시간에 와야 할 마지는 한참이 지나도 오지 않고 밥 타는 냄새만 절 안에 진동하는 것이었습니다. 이상하게 여겨 부엌으로 찾아간 성원스님은 전혀 예상 밖의 광경을 목격하게 되었습니다.
수월스님이 신묘장구대다라니를 외우면서 계속 아궁이에 장작을 넣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밥이 까맣게 탄 것이 문제가 아니라, 솥이 벌겋게 달아 곧 불이 날 지경이었습니다. 그야말로 무아지경 속에서 대다라니를 외우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를 본 성원스님은 수월스님에게 방을 하나 내어 주면서 말했습니다.
“오늘부터 너에게 이 방을 줄 터이니, 마음껏 대다라니를 외워 보아라. 배가 고프면 나와서 밥을 먹고 잠이 오면 마음대로 자거라. 나무하고 밥 짓는 일은 내가 알아서 처리할 테니….”
수월스님은 ‘감사하다’는 말 한마디를 남기고, 가마니 하나를 들고 방으로 들어가서 문짝에 달았습니다. 빛이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도록 한 것입니다.
그리고 신묘장구대다라니를 외우기 시작했습니다. 방 밖으로는 밤낮없이 대다라니를 외우는 소리가 울려 나왔을 뿐, 물 한 모금 마시러 나오는 일도 없고 화장실 가는 일도 없었습니다. 그리고는 8일째 새벽, 성원스님이 예불을 마치고 방에 들어가려는데 그 소리가 딱 그쳤습니다. 그때 수월스님이 방을 뛰쳐나오며 소리쳤습니다.
“스님, 스님! 이겼어요, 이겼어요.”
“뭐라고 했느냐?”
“스님, 제가 이겼어요. 잠 귀신이 ‘너한테 붙어 있다가는 본전 못 찾겠다’고 하면서 멀리 가버렸어요. 잠 귀신이 도망갔어요. 스님, 제가 이겼어요.”
은사스님은 수월스님이 기도를 하다가 미친 것이라 생각하고 호된 꾸중을 하였습니다. 그러자 수월스님이 질문을 던졌습니다.
“관세음보살이 합장을 하고 서 있는 뜻이 무엇입니까?”
“나는 그걸 모른다.”
“어딜 가야 답을 들을 수 있습니까?”
“동학사에 가면 경허(鏡虛) 사숙님이 계신다. 그 스님께 여쭈어 보아라.”
“가도 됩니까?”
“도시락은 내가 싸줄 테니 짚신은 네가 삼아라.”
수월스님은 서산의 천장암에서 동학사까지 걸어가 경허스님의 방문을 열고는 여쭈었습니다.
“관세음보살께서 합장을 하고 서 있는 뜻이 무엇입니까?”
경허스님이 답을 해주시는데 뜻이 서로 상통하였고, 거기에서 수월스님은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이렇게 수월스님은 천수삼매(千手三昧)를 증득하여 무명(無明)을 깨뜨리고 깨달음을 얻었을 뿐 아니라, 불망념지(不忘念智)를 증득하게 되었습니다.
이전까지는 글을 몰라서 경전을 읽지도 못하고 신도들의 축원도 쓰지 못하였지만, 불망념지를 이룬 후부터는 어떤 경전을 놓고 뜻을 물어도 막힘이 없게 되었으며, 수백 명의 축원자 이름도 귀로 한 번 들으면 불공을 드릴 때 하나도 빠짐없이 외웠다고 합니다.
그리고 천수삼매를 얻은 뒤에도 참선정진을 꾸준히 계속하였는데, ‘잠을 쫓았다’는 그 말씀대로 일평생 잠을 자지 않았다고 합니다.
말년에는 백두산 간도 지방 등에서 오고가는 길손들에게 짚신과 음식을 제공하며 보살행을 실천했던 수월스님! 오늘날까지 자비보살이요 숨은 도인으로 추앙받고 있는 수월스님의 도력은 신묘장구대다라니 기도에서 비롯되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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