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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청화 큰스님 법문집/4. 금강륜

제28호 광륜사 정기법회

 

                         <제 28 호>

                20020505-광륜사 개원법회


 바야흐로 녹음방초綠陰芳草 승화시昇華時라, 녹음이 신선하고 율동하는 무슨 꽃보다도 더 아름다운 그러한 계절입니다.

 이런 때 여러불자님들을 만나뵙게 되어서 대단히 행복스럽게 생각하고 제 마음은 환희용약歡喜踊躍하고 있습니다.

 부처님법은 한계가 있는 법이 아닙니다. 그래서 그 모든 법계法界를 관찰하는 그런 경인 관무량수경觀無量壽經에 시방여래十方如來는 법계신法界身이라, 모든 부처님은 그 법계를 몸으로 한다. 이런 말씀이 계십니다.

 법계라 하는 것은 한계가 있는 세계가 아니라 바로 우주자체가 끝도 가도 없는 무량무변無量無邊한 그런 우주의 생명자체生命自體의 세계가 바로 법계입니다.

 따라서 그 법계는 부처님의 세계, 또는 불생불멸不生不滅한 영원의 세계가 바로 법계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 부처님 세계나 또는 극락세계極樂世界나 그런 이상적인 그런 최선의 세계는 우리가 사는 이 세계를 떠나서 저 공중에 그 외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세계도 포함해서 사실은 그 우주자체가 그대로 바로 이상세계理想世界고 극락세계極樂世界고 또는 연화장세계蓮華藏世界고 다 그러는 것입니다.

 우리 불자님들 깊이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우리 중생들은 그 억울하게도 자업자득自業自得이라, 자기가 지은 그런 번뇌煩惱에 가리어서 그런 그 우주가 바로 극락세계고 연화장세계인 것을 우리는 깨닫지를 못합니다. 그래서 자작범부自作凡夫라, 스스로 범부가 되고 스스로 세계를 오염汚染시키고 있단 말입니다.

 이 세상에서 제일 독한 것이 무엇인가. 이것은 우리 중생의 삼독심三毒心입니다.

뭐, 양재물이 독하고 비상이 독하고 하지만, 그런 것은 하나의 그 소부분에 불과한 것이고 그 우주를 근원적으로 오염시키는 것은 이것은 바로 삼독심입니다.

 탐욕심貪慾心을 내고 또는 불룩거리는 진심嗔心을 내고 또는 우주의 실상을 볼 수 없는 그런 무명심無明心, 이 세가지 이것이 우주에서 가장 지독한 독스러운 것입니다.

 욕계欲界가 생기고 또는 무색계無色界가 생기고 또는 지옥地獄이나 아귀餓鬼나 축생畜生이나 그런 것이 생기는 것도 그 원인이 어디가 있는고 하면 모두가 다 우리 중생들이 삼독심을 얼마나 많이 내는가, 삼독심을 얼마나 적게 내는가, 그런 차이에 따라서 가장 삼독심을 많이 낸 그런 존재가 지옥이 되는 것이고, 우리 인간은 지옥 아귀 축생 수라 인간... 그 열가지 법계가운데 가운데쯤이나 됩니다.

 우리 중생은 지금 아까 말씀드린 바와 같이 우리 본래면목本來面目은 바로 부처님, 부처님의 세계, 불교의 전문술어로 하면 그때는 진여불성眞如佛性이라 그럽니다.

 우리 중생이 진여불성을 깨닫고 진여불성과 하나가 되면 그때는 우리가 부처가 되고 성자聖者가 되는 것이고, 삼독심에 가리어서 깨닫지 못하면 우리 스스로가 아까 말씀드린 바와 같이 지옥地獄 아귀餓鬼 축생畜生 아수라阿修羅 인간人間 천상天上 성문聲聞 연각緣覺 보살菩薩 부처라, 이런 데에 뱅뱅 우리가 윤회한단 말입니다. 

 우리 중생이 사는 목적은 어디가 있는가. 그런 그 삼독심을 벗어나서 우리가 그러한 중생계衆生界를 윤회하는 윤회를 벗어나서 영원한 해탈解脫의 세계, 해탈의 세계가 바로 법계고 극락세계고 다 그러는 것입니다.

 우리 불자님들. 여기 이 광륜사光輪寺가 그냥 우연히 생겨난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무수한 인연因緣들이 화합이 돼서 이 광륜사가 생겨납니다. 광륜이란 것은 빛 광자 바퀴 륜자, 바로 진리眞理의 바퀴란 말입니다.

 우리가 경에 보면 사천왕四天王은 쇠로 만든 철륜鐵輪바퀴 또는 동으로 만든 그런 동륜銅輪이라, 또 은으로 만든 은륜銀輪이라, 또는 금으로 만든 금륜金輪이라, 4가지 사륜四輪을 굴리면서 이 4 천하天下을 다 다스린다고 합니다.

 그런데 가장 최상의 그 불바퀴가 진리의 바퀴가 바로 광륜光輪입니다.

 아까 말씀드린 바와 같이 광륜은 무수한 인연들이 합해서 광륜사가 되었습니다.

 지극정성의 신심공덕信心功德으로 그 시주施主하신 분들,

 아, 여기가 인제 장소도 좁고 비록 도봉산道峰山 어구에 해당됩니다만 이 터가 굉장히 귀중한 터입니다. 참 유서 깊은 터고 과거에도 그랬고 앞으로 두고두고 부처님의 정법을 빛낼 터입니다.

 헌데 그러한 그 광륜사의 앞으로 그 우리 불법을 위해서 정법을 한사코 수호할 그런 도량인 광륜사를 아까도 말씀드린 바와 같이 지극정성의 그 신심공덕으로 시주하고 희사하시고 그런 분들에 대해서 우리 사부대중들이 정말로 합장하고 찬탄과 또 치하의 그러한 공덕을 축도합니다. 대단히 감사합니다.  

 아까도 말씀드린 바와 같이 아, 우리 중생이 본래로 그 부처의 성품을 다 가지고 있고 또한 동시에 우주자체가 법계인데 왜 우리는 이렇게 오늘날 잘 못사는가. 혼란스럽고 항시 불안스러운 가운데 있지 않습니까.

 현재도 그렇고 또는 과거도 그렇고 또는 저 고대古代도 그렇고 앞으로도 역시 우리는 그 불안스러운 세계에서 살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그런 것은 아까도 얼핏 말씀드린 바와 같이 우리 스스로가 우리의 참 자기를 모른단 말입니다.

 지금 우리가 가령 김아무개하면, 아, 김 아무개가 이것이 인제 진짜 내가 아닌가, 이렇게 생각한단 말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나라는 것은 이것은 이른바 가짜입니다.

 불교말로 하면 망아妄我라, 망녕될 망자 나 아자 말입니다. 망아라.

 반야심경般若心經에서 말하는 전도몽상顚倒夢想이라, 뒤바뀌어서 거꾸로 보기 때문에 그 나라는 존재가 내 몸뚱이고 내가 금생에 받은 내 성이고 이름이고 한단 말입니다.

 그러나 그런 것은 사실은 부처님 법에서 비추어보면, 부처님 법까지 미처 안가고 보통 과학적인 상식으로만 본다 하더라도 그런 나는 있을 수가 없습니다.

 불자님들 깊이 생각을 하십시오. 우리가 평생 우리 몸뚱이 종 되지 않습니까. 우리 또 번뇌망상煩惱妄想의 종이 된단 말입니다. 노예가 되어서 우리가 끙끙 앓다가 가는 것이 우리 인생의 인생고해人生苦海아닙니까.

 헌데 우리가 그렇게 섬기고 아끼던 그 몸뚱이는 사실은 이것은 본래本來 있는 것이 아니란 말입니다. 

 우리가 불교를 공부하면서 없을 무자, 나 아자 무아無我라. 무아를 모르면 불교가 아니지 않습니까. 사실 무아란 말입니다. 내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잘못 봐서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지 아, 내 몸뚱이는 지수화풍地水火風 사대四大라, 산소나 수소나 탄소나 그런 것이 잠시간 인연의 화합으로 해서 내 몸뚱이가 되었고, 내 마음은 무엇인가. 내 마음은 탐심貪心과 진심嗔心이나 그런 우리가 생각하는 우리 생각 그것이 우리 마음이 되었단 말입니다.

 그런 것은 금강경金剛經에 있는 바와 같이 모두가 다 꿈이요 허깨비요 그림자요 다 그런 것입니다.  

 우리가 그림자가 있는 것 같지만 사실은 그림자가 없는 것 아닙니까. 꿈도 마찬가지 아닙니까. 우리가 생각하는 나라는 관념觀念, 또는 너라는 관념. 모두가 이런 것은 다 꿈이요 허깨비 같은 것입니다.

 우리 불자님들, 그 우리가 부처님 가르침을 상식적으로 소박하니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아까 말씀드린 바와 같이 우리가 생각하는 나라는 이것은 실지로는 있지가 않은 것인데 우리 중생이 잘못 봐서 있다고 착각錯覺을 하고 있는 것이고, 그 뿐만 아니라 우리 범부가 대상적으로 인식認識하는 객관세계, 산이요 또는 물이요 하늘이요 모두 그런 세계, 이런 것도 사실은 우리 중생이 생각하듯이 그와 같이 있는 것이 아니란 말입니다. 이것도 허망虛妄한 것입니다.

 허망하지 않다고 하면 금강경에서 부처님께서 일체유위법一切有爲法 여몽환포영如夢幻泡影이라, 모든 있는 존재는 다 꿈이요 허깨비요 그림자와 같다는 그런 말씀을 하셨겠습니까.

 부처님 말씀은 어느 때나 사실을 사실대로 말씀하십니다. 부처님 말씀은 진실을 진실 그대로 말씀하십니다. 부처님 말씀은 조금도 가감이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 중생은 아까 제가 말씀드린 바와 같이 삼독심에 가리어서 사실을 사실대로 보지를 못한단 말입니다.

 따라서 부처님 말씀은 없는 것을 있다고 보라는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무아無我기 때문에 진정으로 내가 없는 무아기 때문에 무아를 깨달으라는 것입니다.

 무아를 깨닫지 못하면 어떠는 것인가. 참말로 옳게 보지 못하기 때문에 우리 중생이 하는 것은 그 인생고해라. 끝도 가도 없는 우리가 지금 고해에서 헤맨단 말입니다.

 내 몸뚱이도 내 것이 아니거든 따지고 보면 내 권속眷屬도 나한테 소속된 내 소유가 아닙니다. 내 재산권도 그렇습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그 모든 재산도 내 것이 아니다. 그래버리면 이건 혼나겠지요.

 그러나 사실은 아까도 말씀드린 바와 같이 부처님 법으로 생각할 때는 나도 없거늘 내 소유가 어디가 있을 것인가. 있을 수가 없단 말입니다.  

 부처님 법대로 살면 사실은 세상이나 모든 것이 다 다툼이고 또는 불안한 것이고 또는 갈등 반목이 있을 수가 없습니다.

 부처님 법대로 못살면 그때는 틀림없이 인과필연因果必然으로 우리 스스로 죄를 짓고 또 그 과보果報로 해서 우리가 여러 가지로 고통을 받는단 말입니다.

 아, 저는 몇마디 말씀만 하고 그냥 내려갈라고 맘 먹었습니다만 그 여러분들 이렇게 많이 모였는데 저 노장이 법상法床에 올라가서 말 몇마디하고 내려가면 될 것인가, 하는 그런 생각이 제가 앞서기 때문에 조금 말씀을 좀 더 할랍니다.

 아까 말씀드린 바와 같이 부처님 법은 사실은 제일 쉽기도 하고 제일 확실하고 또는 우리를 최상最上의 행복幸福으로 인도하는 그런 법입니다.

 어째그러는가 하면 있는 것을 있다고 하고 없는 것을 없다고 말씀한단 말입니다. 우리 중생은 거꾸로 없는 것을 있다고 생각하고 참말로 있는 것은. 참말로 있는 것은 무엇인가. 이것은 참 진자 나 아자 참사람은 참말로 있단 말입니다.

 우리가 느끼는 이 대상적인 산이요 풀이요 또는 물이요 하는 것은 이런 것은 모두가 다 허깨비같은 것입니다. 뜬 구름같으나 참말로 있는 것은 무엇인가. 참말로 있는 것은 부처 불자 성품 성자 불성佛性이란 말입니다.

 그래서 간단히 말씀드리면 우리 중생은 눈에 보이는 현상계를 사실로 있다고 생각하고 성인들은 그러지 않고서 현상계는 허망한 것이고, 그 근원적인 실상인 그 부처님 세계, 그 불성의 세계, 아까 제가 말씀드린 바와 같이 법계의 세계 이런 세계가 참말로 있는 세계입니다.

 화엄경華嚴經이나 법화경法華經이나 능엄경楞嚴經이나 다 그렇게 말씀을 했어요. 연화장 세계라, 또는 극락세계라. 잘 모르는 사람들은 아까도 말씀드린 바와 같이 극락세계는 우리 마음떠나서 우리가 사는 이 공해公害도 많은 이런 세계 떠나서 저 성층권成層圈에나 올라가 가지고서 그런 공해없는 세계가 아닌가.

이것은 크게 착각입니다. 극락세계는 우리를 떠나서 어디가 별도로 있는 것이 아니어요. 이 세계 이대로 바로 극락세계고 아까 말씀드린 바와 같이 우주법계 바로 연화장 세계고 말입니다. 가장 이상세계입니다.

 죄는 어디가 있는고 하면 누누이 말씀드린 바와 같이 우리 스스로한테가 있습니다. 우리 스스로의 삼독심에 가 있습니다.

 나중에 인연따라서 아, 어떻게 공부해야 할 것인가, 그런 문제는 그때그때 후에 인연에 맡기고서, 오늘은 간단히 제 말씀을 줄여가야 되지 않겠습니까.

 부처님은 그냥 덮어놓고서 이것이 좋으니까 좀 고생스러워도 이것을 억지로 해라, 이런 말씀은 절대로 없습니다.

 부처님 말씀은 항시 이 우주의 도리道理에 딱 들어맞고 아까 말씀드린 바와 같이 부처님 말씀은 그 우주의 도리, 저 그리스, 그 서구인들 말씀으로 하면 이른바 로고스logos지요.

 우주의 도리, 우주의 법리, 그런 도리에 들어맞고 또는 동시에 우리한테 기쁨을 준단 말입니다.

 부처님 말씀은 그냥 고생스럽게 우리가 공부하라는 것이 아니라 기쁜 마음으로 기쁜 마음이 될 수밖에 없는 그런 가르침이 부처님 가르침입니다.

 또는 부처님 마음은 부처님 말씀은 또 우리한테 우리가 한시간 공부하면 한시간 공부한만치 우리한테 유익하단 말입니다.

 아, 부처님 공부 지지리 해봐도 돈 버는 데는 아무 소용이 없지 않는가, 이렇게 생각을 절대로 말으십시오. 지금 당장에 돈은 못번다하더라도 부처님 공부를 한시간 하면 한시간 한만치 틀림없이 그 사람 서원誓願이 정당한 한에는 틀림없이 그 보답이 있습니다.

 우주란 것은 인연법因緣法이기 때문에 중중무진重重無盡이라, 우주가 모두가 다 인연에 얽혀있어요. 따라서 어느 누구도 자기라는 존재와 별도로 따로 있는 그런 독불장군獨不將軍이 그런 것이 아닙니다. 모두가 다 관계가 있어요. 모두가 다.

 거지하고 나하고 관계도 있고 또는 개와 나와도 관계가 있고 말입니다. 또는 예수Jesus (Christ)님과 나와도 관계가 있고 또는 마호메트Muhammad와 나와도 관계가 있고 말입니다. 다 모두가 직접 간접의 차이는 좀 있다 하더라도 틀림없이 모두가 다 관계가 있습니다.

 나한테 와서 내 욕을 실컷하는 그 사람하고도 나하고는 다 관계가 있어요. 관계가 있을 뿐만 아니라 사실은 한 몸입니다. 한 몸입니다.

 요새 한 몸 또 한마음 모두 그러지 않습니까. 아주 그 유명한 한마음선원도 있지 않습니까. 다 훌륭한 말씀들입니다.

 사실 우리가 바로 본다고 생각할 때는 나나 너나 이것이나 저것이나 무생물無生物이나 생물生物이나 모두가 다 이것이 다 한 한몸이어요. 한 몸이고 한 생명입니다. 이 우주란 것은 모두가 통털어서 하나의 생명입니다.

 그 프랑스의 유명한 베르그송Bergson이란 그 철학자도 역시 불교와 상당히 근사하고 가까운 점이 있습니다만 이 분 말씀도 아, 우주란 것은 모두가 하나의 생명이다, 약동躍動하는 하나의 생명이다, 이렇게 갈파를 하셨어요. 사실 그렇습니다.

 나 따로 있고 너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지금 모두가 다 같이 관계성 때문에 관계성으로 해서 불교말로 하면 그때 인연으로 해서 다 붙어있단 말입니다.

 옆엣 사람과 또는 그 자기와의 관계가 산소나 수소나 그런 원소가 없는 데가 있습니까. 여러분들 다 알으시지 않습니까.

 우리가 지금 한 1000여명 우리 불자님들이 모셨지만 우리 모두가 그 원소차원에서는 지금 다 붙어있어요. 모두가 다. 우리 안목이 짧으니까 그 거시적인 우리 중생이 볼 수 있는 안목에선  내 몸따로 네 몸 따로 그렇게 있는 것이지, 산소나 수소나 그런 원소차원만 본다하더라도 나와 너와 모두가 다 지금 붙어있어요. 모두가 다. 

 그러나 더욱 더 진여불성이라, 천지우주의 근원적인 생명이 바로 불성인데 부처님의 성품인데 부처님의 성품자리는 다른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모두가 다 천지가 부처님뿐이란 말입니다.

 그래서 소승小乘과 대승大乘의 차이는 어디 있는고 하면 소승들은 아직은 근기根機가 낮으니까 갈라서 봅니다.

 열반경涅槃經에 부처님법문이 있어요. 삼수도하三獸渡河라. 세 짐승이 큰 냇을 건너간단 말입니다.

 토끼와 또는 말과 코끼리와 세 동물이 지금 냇을 건너가는데 토끼란 놈은 몸도 가볍고 그러니까 그 물에 떠서 물에 둥둥 떠서 건너갑니다. 물에 둥둥 떠서 건너가는 토끼가 물속을 알 수가 있습니까. 전혀 모르겠지요.

 그 다음에 그 망아지란 놈은 또 조금 덩치가 크고 좀 무거우니까 그때는 상당히 몸뚱이가 물에 잠겨서 건너간단 말입니다. 그러니까 망아지란 놈은 물 가운데 한 중간쯤은 자기가 체험하니까 알 수가 있겠지요.

 코끼리란 놈은 훨씬 키도 크고 덩치가 크니까 코끼리는 뚜벅뚜벅 결국은 강바닥에 자기 발이 다 닿습니다.

 그것은 그 열반경에서 부처님께서 아까 제가 말씀드린 바와 같이 소승들이나 또는 이치만 따지는 연각승緣覺乘이나 그런 것은 다 모두가 토끼나 그런 말에 비길 수가 있는 것이고, 코끼리는 결국은 보살菩薩의 이른바 육바라밀六波羅蜜이란 말입니다.

 보살들은 진리를 모르면 보살이라고 못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남한테 무슨 시주를 많이 한다고 그래서 보살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보살이란 것은 그 진리, 우리 불교말로 하면 여러분들이 잘 아시는 반야바라밀般若波羅蜜, 반야바라밀이 참다운 해탈의 지혜智慧입니다. 반야바라밀이 있으면 그때는 보살이고 아무리 다른 것이 좋아도 반야바라밀이 없으면 그때는 보살이 못됩니다.

 오늘 여러분들이 주의해야 하실 것은 다 아시고 계실 문제아니겠습니까마는 아까 제가 말씀드린 바와 같이 그 현상적인 것, 이 상대相對 차별적差別的인 것은 이런 것은 다 가짜고 그 근원적인 우주의 실상實相인, 요새 실존철학實存哲學을 또 말하지 않습니까. 우주의 실존적인 우주의 실상인 그 자리가 바로 참다운 이것이 이른바 부처님의 생명인 바로 불성자리란 말입니다.

 부처 불자 성품 성자 몇 1000번 외도 우리한테 더욱 보배스럽게 다가오는 그런 말씀입니다.

 그 불성을 모르면 그때는 아까 말씀드린 바와 같이 아, 차별적인 현상에만 우리가 얽매이다 가버린단 말입니다.

 그러면 생사生死를 초월超越도 못하고 아까 말씀드린 바와 같이 사바세계를 더욱 더 혼란스럽게 만들지요.

 이 정보화 사회란 것은 지금 정보의 홍수아닙니까. 그 가지각색의 정보가 하여튼 기계문명 따라서 더욱 더 지금 복잡합니다.

 만약 우리가 부처님 가르침같은 모두를 다 통합해서 하나의 진리로 포괄하는 부처님 가르침같은 진리가 없다고 했던들 어떻게 될 것인가.

           <중약>

 여러분들 가운데는 아직도 담배를 피우시는 분도 계시겠지요. 담배를 피우는 것이 자기한테 좋겠습니까 자기 아내한테 좋겠습니까 가족한테 좋겠습니까.

 그 하고 많은 가르침, 하고 많은 우리를 행복으로 인도하는 진리를 냅두고서 아, 진리에 그 배반되는 그런 짓을 하신단 말입니다.

 나는 내 가정을 위해서는 내 몸을 바치고 내 마음을 내 정성을 다한다. 이렇게 하면서도 그런단 말입니다. 말뿐이 아니지 않습니까.

 정말로 불자님들, 우리 버릇이란 것이 굉장히 무서운 것입니다. 참 무서운 것입니다.

 나쁜 버릇 붙여놓으면 자고로 제2의 천성天性아닙니까. 우리 천성이 돼 버려요. 그것이. 천성이 되면 그것이 업으로 굳어 버립니다.

 아, 우리가 잘못보기 때문에 잘못 알기 때문에 우리가 그 무명심無明心에서 업을 짓고 업을 지으면 또 필연적으로 그때는 우리가 그 과보로 해서 고통의 과보를 받지 않습니까.

 인생살이가 부처님 법대로 우주의 법대로 살면 아까 말씀드린 바와 같이 제일 쉽고 제일 재밌고 제일 우리한테 유익한 법입니다.

 그래서 그 광륜光輪이라, 빛 광자 바퀴 륜자 말입니다. 부처님의 진리로, 부처님의 진리로 자기마음을 다스리고 자기 이웃을 다스리는 그런 뜻이 이른바 광륜입니다.

 그 광륜이 여기 있고 저기 있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몸 전체 우리 마음 전체에 가서 광륜이 항시 빛나있습니다. 우리 몸뿐만 아니라 우주에는 부처님의 광륜 부처님의 광명光明으로 해서 충만해 있습니다.

 그러기에 부처님의 이름은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이라, 광명변조光明遍照라, 부처님의 이름이 광명변조여요. 밀교식密敎式으로 말하면 비로자나불인데 광명변조란 것은 그 부처님의 광명이 우주에 꽉 차있다는 뜻입니다.

 꽉 차있으니까 내 몸에도 있고 내 주변도 있고 모두 그러겠지요. 그 광명은 그냥 허튼 광명, 우리한테 눈부신 광명이 아닙니다.

 청정적광淸淨寂光이라, 눈부시지도 않고서 우리한테 행복幸福과 우리한테 아까도 말씀드린 바와 같이 그 안락安樂과 말입니다. 모든 그런 지극한 공덕功德을 다 갖추고 있어요.

 불교술어로 해서 지극한 공덕을 간추린 것이 이른바 열반사덕涅槃四德이라, 상락아정常樂我淨아닙니까. 상락아정, 항상 상자 즐거울 락자 나 아자 또는 맑을 정자 말입니다.

 적어도 부처님을 공부한다고 생각할 때에, 대승을 공부한다고 생각할 때는 그 상락아정쯤은 꼭 알으셔야 됩니다. 나의 공덕인 동시에 우주의 공덕이란 말입니다.

 항상 상자는 이것은 무엇인고 하면 우리 생명은 원래 죽음이 없어요. 우리는 내 몸뚱이를 참다운 자기 몸으로 생각하니까 몸뚱이사 업력기관業力機關인지라 인연이 다하면 그때는 가버릴 수밖에는 없지요. 그러나 우리 마음자리 우리 마음자리는 불생不生이 불멸不滅입니다. 원래 나지도 않고 죽지도 않아요. 그것은 나지도 않고 죽지도 않는 것은 바로 영생永生합니다.

 예수님이라든가 어느 특정 종교만 믿는 분이 영생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중생의 그 생명자체가 본래로 다 누구나 영생해요.

 불생불멸不生不滅이라, 나지 않고 죽지 않고 불구부정不垢不淨이라, 생명자체는 모양이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그때는 더럽일야 더럽일 수가 없단 말입니다.

그것이 우리 생명의 참다운 모습입니다. 우리 생명의 이른바 참 나입니다. 참 나는 죽을래야 죽을 수도 없고 또는 본래청정本來淸淨하거니 새삼스럽게 오염을 시킬수도 없고 그래서 항상 청정하고 또는 그 가운데는 모든 공덕을 다 갖추고 있어요.

 아까 말씀드린 바와 같이 우리한테 갖추고 있는 모든 공덕이 부처님 경전에서 말씀하신 그런 표현으로 하면 상락아정입니다. 영생한다고 그래서 항상 상자, 상이란 말입니다.

 최상의 그런 행복을 다 갖추고 있다고 그래서 즐거울 락자, 락이란 말입니다.

 또는 참 나라는 것은, 거짓 나는 사실은 별 힘이 없습니다. 인연이 다하면 그때는 죽어지는 것이고 우리가 무슨 놈의 힘이 있습니까.

 아, 주사하나 가지고도 우리 생명은 죽을러면 죽을 수가 있지 않습니까.

 우리 중생을 몸뚱아리 차원에서 본다고 생각할 때는 우리 몸뚱아리는 참 취약하기 짝이 없습니다. 참 약하단 말입니다. 소만도 못하고 다른 것만도 못하지요. 우리가 생리적으로 봐서는.

 그러나 우리한테 갖추고 있는 공덕은 아까도 말씀드린 바와 같이 상락아정常樂我淨이라, 그 모든 공덕을 다 갖추고 있어요. 그 어리석게도 아까 말씀드린 바와 같이 지독한 삼독심三毒心 때문에 우리가 다 가리어서 그것이 발휘가 못됩니다.

 불자님들, 부처님 가르침은 아까 말씀드린 바와 같이 진실한 가르침이고 사실을 사실대로 말씀하신 가르침입니다. 부처님 가르침은 또 가장 따르기가 쉽습니다.

 다만 그 억울한 것이 어쩌다가 우리가 전생前生에 또 업을 지어서 금생今生에 그 업의 종자種子가 남아가지고서 나쁜 버릇을 붙인단 말입니다.

 아, 술 먹는 것도 술도 그것도 우리한테 아무런 이익이 없습니다. 머리를 물들이는 것도 우리한테 뭣이 이익이 있습니까.

 우리 불자님들, 불교를 믿을 때는 불교의 진리를 믿는 것 아닙니까. 따라서 근본적으로 대 결단을 내려서 믿으셔야지 믿는둥 마는둥 하면 그것은 참 그야말로 불교를 믿는 신자의 태도가 아니지요.

 아까 말씀드린 바와 같이 천지우주는 바로 그 생명자체기 때문에 그때는 불성이라고 하는 것이고 또는 법성이라고 하고 말입니다.

 또는 생명자체기 때문에 바로 부처님이라고 우리가 하는 것이고 또 보다 더 의미를 부여해서 하면 그때는 무량광불無量光佛이라, 한도 끝도 없는 이른바 생명의 그런 빛이란 말입니다.

 그것이 광명변조光明遍照라. 우리가 항시 제일 쉽게 외기도 하고 부르기도 하고 또는 공덕도 많은 것이 나무아미타불南無阿彌陀佛아닙니까.

 사람들은 나무아미타불 외는 데도 또 여러 가지로 조건을 많이 붙여요. 그러나 조건을 붙일 필요가 없습니다. 왜 그런고 하면 나무아미타불은 이것은 바로 우주의 이름인 동시에 바로 나의 참 이름이란 말입니다.

불자님들 깊이 새겨두시기 바랍니다. 나무아미타불은 저 밖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참 나의 이름인 동시에 바로 우주의 참 이름입니다.

 그래서 그 나무아미타불, 부처님의 광명이 한도 끝도 없기 때문에 그런 차원에서는 무량광불이라. 한도 끝도 없는 부처의 광명이란 말입니다.

 또는 부처님은 아까도 말씀드린 바와 같이 생사를 초월해 있는 영원의 생명입니다. 그래서 그런 차원에서 본다고 생각할 때는 무량수불無量壽佛이라, 무량수 수자는 목숨 수자입니다. 한도 끝도 없는 생명이란 말입니다.

 그런 자리가 이것이 내 생명의 본래의 자리입니다. 죽을래야 죽을 수가 없어요. 우리 생명은.

 그 업으로 태어난 우리 몸뚱이만, 응당 업으로 태어나서 하나의 그야말로 참 허망한 것이니까 세월이 다다르면 그것이 없어져야되겠지요. 우리 몸뚱이 아까워서 우리가 붙잡을 필요가 아무것도 없습니다. 평생 몸뚱이 우리가 노예가 돼봐도 따라갈 수도 없는 것이고 나중에는 아무것도 안남아버려요.

 저 같은 사람도 올해 나이가 무던히 많이 먹었거니 조금 있으면 다 화장해서 뿌려버리면 그때는 몸뚱이도 그만 아닙니까. 아까울 것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러나 제 생명은 비록 공부는 비록 못했다하더라도 그래도 제 생명은 죽을래야 죽을 수가 없어요. 여러분 다 그렇습니다. 생명자체는 원래 영생永生단 말입니다. 그러기에 반야심경般若心經에서 말씀한 불생不生이 불멸不滅이라. 간단한 문제아닙니까. 나지 않고 죽지 않는 영원한 생명이 바로 우리 생명자리입니다.

 그래서 아까 말씀드린 바와 같이 우리 중생은 상에만 걸리는 것인데 상에 걸려서는 이것은 우리 마음이 더욱 더 분열되고 불안스럽고 남하고 화해和解도 못하고 가족도 마찬가지입니다. 따라서 어느 사회든지 간에 우리가 상을 떠나야 한단 말입니다.

 나라는 상 너라는 상 중생상, 상을 떠나는 것이 인제 불교의 수행修行입니다. 상을 떠나면 그때는 무엇이 나오는가. 상을 떠나면 그때는 참다운 이른바 본체本體라, 부처님이라. 금강경에 있는 바와 같이 약견제상비상若見諸相非相 즉견여래卽見如來라. 모든 상을 떠나면 그때는 부처가 나온다, 여래如來가 나온단 말입니다.

 우리 본래면목이 상이 없는 바로 부처기 때문에 우리가 상에 가리어 있다가 그 나라는 상 너라는 상 밉다는 상 좋다는 상 그런 상을 떠나면 그때는 우리가 바로 그야말로 여여如如한 뚜렷한 부처가 된단 말입니다. 그것이 우리 인생의 최상의 목적입니다.

 동서東西 모든 성인들 말씀도 다 그래요. 공자孔子님 말씀이나 예수님 말씀이나 또 노자老子님 말씀이나 다 그렇습니다. 모두가 상을 떠나서 표현은 좀 다르다하더라도 근본 우리의 생명의 그 본체를 우리가 증명하는 그런 가르침이 모든 무수한 성자들의 가르침입니다.

 그래서 육조혜능六祖慧能스님말씀도 이 상을 안 떠나면 그때는 중생이고, 상을 떠나면 그때는 그야말로 참 부처고 참다운 수행자란 말입니다.

 여러분들께서 꼭 하여튼 우리 생활이 가치로울 수 있기 위해서는 우리 가족이 더 화합하기 위해서는 내 몸도 더 건강하기 위해서는...

 아, 저같은 사람도 상을 많이 부렸으면 진작 죽어버렸겠지요. 그래도 상을 떠날라고 애쓰니까 부처님 덕택으로 지금까지 살아있습니다. 누구나 다 그렇습니다.

 몸과 마음은 둘이 아니라놔서 우리가 부처님가르침에 따르면 따를수록 우리 몸도 훨씬 쾌적하고 또 우리 수명壽命도 이어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 고기도 좀 덜 먹고 말입니다. 그 깨끗이 지내면 그 손해損害가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돼지고기나 소고기나 그런 것은... 사실은 지금 현대는 또 생리학도 다 증명하고 우리 영양학도 다 증명합니다마는 그런 것은 사실은 우리한테 도움이 안돼요. 그것이.

 더구나 부처님의 자비慈悲로운 문중門中에서는 사실은 용납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생각해보십시오. 돼지나 소나 닭이나 다 우리와 한 몸이고 또 전생에 우리가 기르는 소 한 마리가 전생에 또 우리 어버이일수도 있는 것이고 말입니다.

 그런 고기를 우리가 어떻게 먹을 것입니까. 산 동물고기는 우리 피를 오염시키고 우리 세포를 오염을 시킵니다. 우리가 자진해서 짐짓코 오염을 시킬 필요가 어디가 있는 것입니까.

 우리 불자님들, 부처님께서 무엇무엇 하지 말라, 계행戒行을 지켜라. 그러면 지켜야 한단 말입니다. 부처님께서는 필요없는 말씀은 절대로 안하십니다. 지켜야 그래야 우리 몸도 가볍고 마음도 가볍고 세상도 평화롭게  됩니다.

 부처님 되어가는 길이 여러 가지 길이 많이 있습니다. 길이 많이 있으나 용수보살龍樹菩薩, 용수보살은 제2의 석가釋迦라는 분이어요. 용수보살이 우리한테 이왕이수易往易修라, 쉬울 이자 닦을 수자 닦기도 쉽고 또는 쉬울 이자 또는 갈 왕자 말입니다. 해탈解脫도 훨씬 쉬운 가르침이 바로 부처님을 내 생명의 근본이고 동시에 우주의 생명으로 우주의 근본생명根本生命으로 우리가 확신한단 말입니다.

가령 우리가 나무아미타불南無阿彌陀佛을 외고 또 지장보살地藏菩薩을 왼다하더라도 덮어놓고 하는 것도 공덕이 됩니다. 그러나 기왕이면 우리 마음이란 것이 원래 부처님이기 때문에 마음으로 느끼고 하면 훨씬 더 공덕이 크단 말입니다.

 그와 동시에 이 우주란 것은 모든 존재가 다 장차 부처가 되어가는 그런 과정過程이어요. 달이나 해나 지구地球나 다 마찬가지입니다. 더 저쪽 은하세계銀河世界나 말입니다. 그런 세계가 모두가 다 원래 불성佛性으로 원래 부처님성품으로 돼 있기 때문에 모두가 지금 다 부처가 되어갑니다.

 그래놔서 그런 부처가 되어가는 그런 과정에 있어놔서 다시 불교적인 말로 하면 모두가 다 우주가 하나의 풀이나 모두가 다 부처님의 그 성불을 지향한 서원誓願이 거기에 스며있단 말입니다.

 돌멩이 하나도 다 모두를 다 성불의 길로 인도하는 그런 가르침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그와같이 부처님의 근본서원根本誓願, 부처님의 근본서원을 우리가 믿는단 말입니다.

 근본서원은 여러분들이 항시 사홍서원四弘誓願을 하시지 않습니까. 사홍서원 이것이 모든 부처님이 세우신 서원입니다. 이런 서원을 우리가 믿어야 돼요.

우리가 모르고 지낸다하더라도 우주에는 부처님의 서원이 항시 충만해 있습니다.

 따라서 나는 지금 몰라도 내가 지금 부처님의 서원에 편승便乘해서 성불의 길을 가고 있구나, 그래요. 그것이. 나쁜 짓을 조금 했다하더라도 결국은 종당에는 다 부처가 될 것이니까.

 따라서 우주에는 부처님 서원이 충만해 있다는 그 말씀이 불교술어로 하면 본원本願이라, 근본 본자 원할 원자, 본원이란 말입니다.

 따라서 염불念佛을 한다하더라도 나는 지금 몰라도 지금 우주에는 부처님이 모든 존재를 다 근본 근본성불의 길로 인도하시는구나, 이렇게 생각하시면서 염불을 하면 염불공덕念佛功德이 훨씬 큽니다.

 알으시겠지요. 아까 말씀드린바와 같이 부처님 공부는 절대로 어려운 공부가 아닙니다. 나한테 본래다 갖추고 있는 것, 모든 중생을 다 가장 최상最上의 행복幸福으로 인도하는 것 말입니다.

 그런 가운데서 또 기왕이면 누구나 제일 쉽게 하는 것, 제2의 석가인 용수보살이 우리한테 보장해주신 가르침입니다. 그것이 이른바 염불念佛 공부工夫란 말입니다.

 화두話頭 공부나 우리가 주문呪文을 외는 것이나 경을 외는 것이나 다 훌륭한 공부입니다.

그런 가운데서 자나 깨나 앉으나 서나 노는 입에 염불이라, 누울 때나 앉을 때나 일을 할 때나 항시 우리가 염불을 할 수가 있지 않습니까.

 이렇게 하셔서 금생에 최상의 길, 최상의 길은 성불成佛의 길인데, 최상의 길, 최상으로 행복 되는 길, 참다운 나를 찾는 그런 길, 참 자기를 찾는 그런 길이 부처님 공부입니다.

 꼭 금생에 허튼 일을 절대로 말으시고 얼마나 소중한 인생입니까.

 무엇 때문에 우리가 돈 들고 우리 위생에도 재미없고. 그런 것을 말으십시오.

 그 구두같은 것도 길쭉하게 되어놓으면 그것이  거추장스럽고 말입니다. 그것이 우리한테 무슨 필요가 있습니까. 더 멋지게 보입니까.

 지금 사람들은 참 그런 심미안審美眼도 없어요. 그것은 예술적으로 봤을 때는 아무 가치가 없습니다. 그런 가치 없는 유행에 따르지 말으시고 말입니다.

 정말로 부처님 가르침은 생명의 가르침입니다. 그렇게 하셔서 최상의 행복을 누리시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오늘 부처님 말씀에 가름합니다.    나무석가모니불!

 나무석가모니불!

 나무시아본사석가모니불!   

  *20020505-광륜사 개원법회-청화대종사설법

   *20020505-불교TV촬영 및 방영

   *20020505-정안 이성도 촬영

   *20051105-본정 김영동 DVD작업

   *20070715-지혜림 이주미 녹취워드작업

   *20070722-본정 김영동 정리  

  *본 법문은 동영상 자막작업용으로 큰스님 구어체 그대로 정리한 것입니다.*             

      <본문과 관련된 큰스님 친필법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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