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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청화 큰스님 법문집/1. 마음의 고향

제 12 집 3.우주는 하나의 생명체이다

마음의 고향 제 12 집


* 불기2537년(서기1993년)10월24일 태안사 조실 청화(淸華) 대선사께서 광주 금륜회 주최 장성호 방생 법회에서 3천여명의 불자들을 향하여 생명의 본체를 설파하신 귀중한 법어입니다.


-. 우주는 하나의 생명체이다 [1]


방생법회는 바로 생명해방 법회입니다.

생명이라 하는 것을 쉽게 생각하면 우리 마음이 생명이 아닌가? 분명히 우리 마음이 생명입니다. 그러나 중생이 생각하듯이 우리 마음만 생명인 것은 아닙니다. 다른 동물도 똑같이 생명입니다. 또한 식물도 똑같은 생명입니다.

그 외에 무생물도 역시 생명인 것입니다. 다만 우리 중생들은 현상적인 상만 보기 때문에 그런 것만 생명이 있고 다른 것은 없다, 이러는 것이지 생명의 본 모습, 생명의 실상을 볼 수 있는 맑은 안목에서는 우리 사람 마음뿐만 아니라 다른 동물이나 식물이나 무생물이나 두두물물(頭頭物物) 모두가 다 생명입니다.

그런데 우리 중생들은 우주의 인과의 법칙 따라서 무슨 상(모양)이 생기면 즉 사람 몸 같은 모양, 나무 같은 모양, 해 같은 모양, 달 같은 모양, 그런 모양이 생기면 그 모양만 실상 실제인 것이고 다른 것은 없다고 생각을 합니다.

우리 인간도 한 번 생각해 보십시다.

인간 그러면 남자같이 생기고, 또는 여자같이 생기고, 잘나고 못나고 하는 그런 현상적인 상만 사실로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성자의 밝은 지혜로 볼 때는 사실 그런 상이 허망한 것입니다. 그런 상은 본래로 있지도 않은 것입니다. 그런 것을 우리 중생이 번뇌에 가리어서 없는 것을 있다고 봅니다.

부처님 불교 말씀으로 하면 정유리무(情有理無)라. 우리 중생의 망정에서 망상 번뇌로 해서 있다고 보는 것이지 참말로 성자의 청정한 안목에서 본다고 생각할 때는 이 사람이라는 상(相), 남자라는 상, 여자라는 상, 또는 나무라는 상, 현상적인 어떠한 것이나 사실 이것은 허망 무상한 것입니다.

고유한 것을 절대로 없습니다.

그러기에 여러분들이 대체로 아시는 색즉공(色卽空) 아니겠습니까? 색즉공이라 하는 우리 불교의 하나의 대강령(大綱領), 부처님 가르침의 핵심을 모른다고 생각할 때에는 불법을 모르는 것입니다.

부처님 지혜는 그냥 그렁저렁한 현상 지혜가 아니라 실상지혜(實相智慧)라, 실상 지혜는 바로 반야지혜(般若智慧)입니다.

반야 지혜가 부처님 지혜인 것이고 반야 지혜로 봐야 바로 보이는 것입니다.

우리 중생은 반야지혜로 보지 못하고서 상대 유한적인 인간의 업장으로 봅니다. 따라서 그런 업장이 있다고 생각할 때는 우리 생명은 그 업장에 구속되어 있습니다.

《생명해방(生命解放)》

불자님들 우리는 이와 같이 방생 불사를 한다, 방생 법회를 한다. 이렇게 생각하면 미꾸라지 몇 마리, 잉어 몇 마리 해방하는 것이 불사다.

이렇게만 생각을 마십시오.

그러한 어류들을 방생하는 이것은 하나의 방편적인 인연에 불과한 것이고, 물론 어류도 방생하기는 합니다만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 생명해방(生命解放) 생명 존중의 법회인 것입니다.

우리 생명은 성자 아닌 분들은 모두가 다 지금 구속되어 있습니다. 새장에 갇힌 새와 같이 우리에 갇힌 그런 짐승같이 우리 중생들은 지금 갇혀 있습니다.

갇혀 있는 그 사실마저 모르는 것이 우리 중생입니다. 탐욕심의 노예가 되고 분노하는 그 마음의 노예가 되고 또 어리석어서 이것이나 저것이나 바로 못 봅니다.

본래에서 본다고 생각할 때는 미운 것도 없고 또는 사랑할 것도 없는 것인데 우리 중생들이 바로 못 보고서 좋다, 궂다, 시비(是非)분별을 하는 것입니다. 우리 생명은 그러면 어떻게 생겼는가? 이 생명은 어떻게 생긴 것이 아닙니다. 생명은 본래 모양도 없고 이름도 없습니다.

우리 마음이 무슨 모양이 있습니까. 자취가 없습니다. 사람의 생명도 자취가 없고 개나 소나 돼지나 그러한 다른 동물의 생명도 자취가 없습니다.

나무나 풀이나 그런 생명도 자취가 없습니다. 나무 같은 상, 풀 같은 상만 우리 중생의 제한된 안목에서 보이는 것이지 그러한 나무나 풀도 역시 생명 자체는 조금도 자취가 없습니다.

하늘에 있는 달이나 해나 별이나 이러한 것도 역시 생명의 본모습은 자취가 없습니다. 따라서 자취가 없는 것은 사실 우리 인간적인 관념으로 해서는 있다고 볼 수가 없습니다.

물질로 해서는 사실은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근본 생명 자체는 우리 인간의 몸속의 신장에나 또는 뇌 속에만 있는 것은 절대로 아닙니다.

우리 몸 전체에 생명이 가득 넘쳐흐르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산이나 내(川)나 물이나 흙이나 모두가 다 생명이 거기에 충만해 있습니다. 이 공간도 마찬가지입니다.

따라서 생명이라 하는 우주의 실상 그 생명은 바로 우주에 끝도 갓도 없이 충만해 있습니다. 무량무변하게 충만해 있습니다. 따라서 우주라는 것은 사실 생명뿐인 것입니다.

그리고 그 생명은 모양이 없는 물질이 아닌 바로 생명이기 때문에 내 생명, 네 생명이 절대로 둘이 아닙니다. 김 아무개한테 있는 생명이나 박 아무개한테 있는 생명이나 똑같은 생명입니다.

그러나 우리 중생들은 그러한 본 생명의 실상, 본 모습을 모르기 때문에, 본 성질을 모르기 때문에 내 생명 다르고 네 생명 다르다 이렇게 생각합니다.

이런데서 우리가 업을 짓습니다.

부처님 가르침은 그러기에 무아(無我)라, 내가 없다는 말입니다. 우리 불자님들이 내가 없다는 소식을 모르면 부처님의 반야 지혜를 모르시는 것입니다.

보리(菩提)를 모르시는 것입니다. 분명히 내가 없는 것입니다.

내 모양이 이렇게 엄연히 존재하는 소중한 내 몸뚱이가 이와 같이 존재하는데 왜 나보고 없다고 하는 것인가?

인연 따라서 잠시간 거품 같은 모양을 낸 것입니다. 그림자가 있지가 않듯이 잠시간 그림자같이 모양을 낸 것이 이 몸뚱이입니다.

내 몸뿐만 아니라 삼천 대천 세계, 두두물물이 모두가 다 그림자같이 또는 물속에 비친 달 같이 그런 가짜의 상만 지금 내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금강경(金剛經)이나 다른 경전에도 우리 범부는 상에 걸려서 상만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고 성자는 모든 상, 이것은 그림자 같은 상이기 때문에 본래로 없고 생명만 존재한다. 이렇게 보는 것입니다.

네 생명, 내 생명 둘이 아니고 나무나 또는 다른 식물이나 자연계나 모두가 다 공기나 물이나 같은 생명입니다.

자연계나 모두가 다 공기나 물이나 같은 생명입니다. 우리 중생들은 그것을 모르니까 나무도 함부로 하고 풀도 함부로 하고 흙도 함부로 하고 토양도 오염시키고 물도 오염시키고 공기도 오염시킵니다.

그러나 생명의 실상을 안다고 생각할 때는 물도 나와 둘이 아니고 또는 흙도 나와 둘이 아니고 따라서 물도 오염시킬 수가 없고 그 토양도 우리가 함부로 오염을 시킬 수가 없습니다. 공기도 또한 생명입니다. 따라서 공기도 오염을 시킬 수가 없습니다.

따라서 생명을 해방시킨다는 것은 우선은 인간존재, 인연 따라서 이루어진 나라고 우리가 고집하는 인간존재의 그러한 구속을 해방시켜야 합니다.

앞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나라는 것이 어쩌다가 인연 따라서 이와 같이 모양이 된 것인데 우리 중생들이 근본 생명의 성품을 보지 못하니까

이 모양 이것이 내 것이다 이런단 말입니다.

모양을 제 아무리 살찌게 하고 모양을 잘 먹이고 옷을 잘 입히고 팔찌를 팔에다가 순금덩이로 하고 귀걸이를 하고 뭣을 하고 이렇게 한다 하더라도 모양 그것은 더 좋아지지도 않습니다.

우리 불자님들 깊이 생각하십시오.

우리 부처님 믿는 분들은 이것은 우리 생명을 해방시키는 작업, 해방시키는 공부가 이것이 가장 핵심적인 공부입니다. 개나 소나 돼지나 그러한 삼악도에 떨어진 중생들은 자기 생명을 해방시킬 줄을 모릅니다.

그러나 다행히 과거 전생에 다섯 가지 계행 정도는 지켜서 우리 인간으로 태어났습니다. 의식 활동을 하는 우리 인간은 스스로 판단도 할 줄 알고 스스로 반성을 할 줄 압니다.

따라서 우리 인간이나 인간 이상의 천상이나 그런 생명의 존재만이 생명을 해방시킬 수가 있습니다. 우리 인간이 다시 인간으로 태어나는 것이 쉽지가 않은 것입니다.

정말로 백천만겁난조우(百千萬劫難遭遇)라.

무수 만생 동안 돌고 돌다가, 지옥으로, 아귀로, 축생으로 돌고 돌다가 어쩌다가 다행히 인간으로 태어났습니다.


-. 우주는 하나의 생명체이다 [2]


《생명은 무한한 가능성》

우리가 인간으로 태어나서 할 일이 무엇인가?

자기 몸을 꾸미는 것도 아닌 것이고, 돈을 많이 버는 것도 아닌 것이고, 또는 높은 감투를 쓰는 것도 아닌 것이고 오직 인간의 목적은 우리 생명을 해방시키는 것입니다.

해방시키지 못하면 어찌되는 것인가?

해방시키지 못하면 인과필연(因果必然)으로 금생에도 자기 몸도 아프고 또는 남과 화합도 못하고 이른바 개인적인 이기심이라, 그렇게 해서 서로 불화하고 서로 갈등하고 반목하고 서로 싸우고 국제간에도 전쟁이 되곤 합니다.

이런 것이 모두가 다 생명이 실상을 몰라서 그러는 것입니다. 생명이라 하는 것은 앞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우주가 오직 하나의 생명입니다. 일미 평등한 평등무차별의 하나의 생명입니다.

그 생명은 물질이 아닙니다. 모양이 있는 것도 아닌 것이고 시간이 있는 것도 아닌 것이고 공간도 없습니다.

공간성이 없거니 어떠한 모양이 없거니 또 모양이 변하는 시간도 없습니다.

따라서 공입니다. 그래서 공인 것입니다.

왜 공인가 하면 인연 따라서 잠시간 그림자 같은 상을 내므로 그런 상은 원래 물질이 아니란 말입니다.

물질이 아니기 때문에 공간성이 없습니다. 공간성이 없기 때문에, 시간이라 하는 것은 물질이 있어가지고 물질이 변화하는 데서 과거다 현재다 미래다 하지만 모양이 없다고 생각할 때는 공간성도 없고 시간성도 없습니다.

따라서 공일 수밖에 없습니다. 제법이 공이라, 만법이 공이라, 내 몸뚱이도 공이고 일체 존재 모두가 공인 것을 우리 중생이 상에 집착해서 근본 성품을 모르기 때문에 있다고 합니다.

우리 중생의 병 가운데 가장 무거운 병이 무엇인가? 가장 핵심적인 근본 병이 무엇인가? 이것은 있다는 병입니다. 유루병이라, 있다는 병입니다.

금강경, 반야심경 도리는 모두가 다 있다는 병을 때려 부수는 것입니다.

나라 할 것도 없고 너라 할 것도 없고 또 내 생명이 짧다, 길다 할 것도 없고 또는 중생이 있다고 할 것도 없습니다.

우리 불자님들은 오늘은 방생을 해서 개인적으로 복을 좀 받아야 하겠다. 이렇게 오신 분도 계실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복은 이것은 창해일속(滄海一粟)이라, 때 묻지 않는 참다운 복에 비해서는 복이라 할 것도 없습니다.

근본적인 상을 없애는 우리가 참말로 참다운 생명해방의 복을 짓는다고 생각할 때에는 다른 것은 저절로 다 들어옵니다.

영생해탈의 죽지 않고 낳지 않고 생명의 자체 생명의 본질을 파악한다고 생각할 때에는 다른 것은 거기에 다 따라오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부처님 법은 어느 때나 약능요심(若能了心)하면 만법구비(萬法具備)라, 만약 그대가 마음을 깨달아 버리면 만법이 다 갖추어 있다.

이렇게 간단명료한 법문입니다. 오늘 이 청명한 가을 날씨입니다.

방생하는 법회도 소중하지만 우리 사부대중 그 환희(歡喜)에 넘치는 불자님들을 만난 공덕도 굉장히 큽니다.

우리가 인간으로 태어남도 정말로 소중한 것입니다. 맹귀우목(盲龜遇木)이라, 눈먼 거북이가 망망대해(茫茫大海)에서 나무토막을 만나서 그 구멍으로 하늘을 보는 것 같이 그와 같이 사람으로 태어나기가 어려운 것입니다.

어렵게 사람으로 태어났습니다. 사람으로 태어나서 할 것은 무엇인가 하면 앞서도 말씀드린 바와 같이 생명의 본질, 생병의 본바탕을 보는 것입니다.

생명이라 하는 것은 우리 마음입니다. 마음이요 중생이요 부처요 모두가 생명입니다. 심불급중생(心佛及衆生) 시삼무차별(是三無差別)이라, 우리 마음이나 중생이나 또는 부처나 모두가 다 하나의 생명입니다.

하나의 생명 이것은 무슨 원리나 또는 가치나 그런 것에 머물지 않고 하나의 인격이기 때문에 부처님 그럽니다.

따라서 천지 우주가 오직 동일한 생명이므로 나도 부처님이고 너도 부처님이고 또 개도 소도 돼지도 부처님입니다.

우리 불자님들이 아셔야 할 것은 이것이나 저것이나 미운 사람이나 고운 사람이나, 설사 어쩌다가 자기 동생을 죽였다, 자기 친구를 죽였다, 그 나쁜 놈도 역시 겉만, 상만 나쁜 것이지 본 성품은 똑같은 부처님입니다.

이렇게 알아야 참다운 불자인 것입니다. 이렇게 아는 것이 우리 공덕 가운데에 최상의 공덕인 것입니다. 이렇게 아는 것이 어버이 노릇도 가장 잘하는 것입니다.

자기 딸이나 자기 아들도 부처님같이 생각하는 이런 마음을 가져야 가장 모범적이고 부처님 법에 따르는 참다운 부모입니다.

자기가 스승이 되어서 학생들을 가르칠 때도 학생들을 부처님같이 보는 스승이라야 참다운 스승입니다.

불자님들!

우리 생명, 우리 마음은 모든 것이 다 갖춰져 있는 자리입니다. 우리 생명은 그렁저렁한 자리가 아니라, 앞서도 말씀드린 바와 같이 낳지 않고 죽지 않아서 영생불멸하고, 항시 청정하고, 끝도 갓도 없이 우주에 가득 차 있고, 또는 그 가운데는 자비나 지혜나 일체 공덕이 다 들어 있습니다.

행복도 다 들어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 생명 자체에 행복이 들어 있거니 다른 방면으로 행복을 구해도 행복이 있지가 않습니다.

물질로 구하고 남녀 이성으로 구하고 또는 먹을 것으로 구하고 또 금이나 은이나 그런 폐물로 구하고 그런 것에는 행복이 안 들어 있습니다.

모양이 없는 우리 마음한테만 행복이 들어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 마음을 참다웁게 깨달아 버려야 그래야 참다운 행복을 얻을 수가 있습니다.

우리 중생의 허물이 무엇인가 하면 앞서도 말씀 드린 바와 같이 모양 이것은 가짜인데 모양 이것은 허망한 것인데 허망한 것을 구하다가 우리 소중한 인생이 다 판나 버립니다.

좋은 집에 살면 그것이 얼마나 오래 살겠습니까? 우리 스님 네 가운데는 불사한다고 해서 큰 절을 짓고 해 놓으면 꼭 자기가 그 곳에서 평생 살려고 맘먹은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조그마한 오두막집에 있으나 어디에 있으나,큰 집에 살면 그만큼 사실은 공부에는 손해입니다.

부자면 부자가 된 만큼 손해입니다. 감투가 높으면 높은 만큼 손해입니다. 중생의 망상 가운데서 우리가 주의할 것은 다른 망상도 많이 있지만 사부견(士夫見)이라, 오늘 불자님들 사부견이라 하는 법문을 꼭 외우십시오. 선비 사(士)자, 지아비 부(夫)자, 사부견은 무엇인가 하면 자기가 무슨 일을 했으면 자기 능력으로 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사실은 자기의 고유한 능력은 있지도 않은 것입니다. 자기 몸뚱이고 고유한 자기가 아니거든 자기가 똑똑해서 자기가 무슨 기술이 있어서 자기가 뭘 많이 배워서 자기 능력으로 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사실 그것은 잘 못 본 것입니다. 인연이 합해서 인연으로 이루어진 것이지 어느 개인의 개별적인 자기 능력으로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가사 하나의 집을 지었다고 합시다. 여러 가지 만유의 일체 공덕(功德)이 거기에 다 들어 있습니다. 목수의 공(功), 산에 가서 나무를 벌채한 사람의 공, 운반한 사람의 공, 거기에 그 비용을 들인 사람의 공, 공양을 뒷바라지 해준 분의 공, 이래저래 그런 공들을 빼버리면 그때는 누가 혼자 했다고 하겠습니까? 따라서 인연이 합해서 무엇이 이루어진 것이지 어느 한 사람이 똑똑해서 이루어진 것은 절대로 아닙니다.

그러나 주관자는 있습니다. 따라서 대통령이 되어서 무슨 공덕이 좀 있다 하더라도 자기가 잘했다고 뽐낼 것도 아닙니다. 장관도 마찬가지입니다.

인연이 합해지면, 인연이 가합되면 잠시간 무엇이 이루어지고 인연이 화합이 안 되면 이루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그뿐인 것입니다.


-. 우주는 하나의 생명체이다 [3]


《생명자체는 영생한다》

금생에 우리가 태어난 것도 그것입니다. 인연 따라서 태어났다가 인연이 다 하면 갈 뿐입니다. 슬퍼할 것도, 좋아한 것도 없습니다. 인연 따라서 태어나서 인연 따라서 갑니다. 인연 따라서 가더라도 생명자체는 조금도 훼손이 없습니다.

허망한 몸뚱이 실상이 아닌 그림자 같은 몸뚱이만 조금 안 보이는 것이지 생명자체는 조금도 흠축이 없습니다. 흠절이 없습니다.

우리 자체 생명은 앞서도 말씀드린 바와 같이 모두를 다 갖추고 있습니다.

행복도 갖추고 있고 지혜도 갖추고 있고 또는 기쁨도 갖추고 있고 다 갖추고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밖에서 구하는 것은 허망한 일이고 공연히 생명만 피로하고 생명만 낭비하는 것입니다.

우리 불자님들 40살이면 벌써 한 세상의 절반 이상을 살았습니다. 50살이면 몇 년 남았겠습니까? 이렇게 짧은 세상 정말로 생명을 낭비를 마십시오.

생명 낭비라는 이것은 겉만 보고, 물질은 허망한 것인데 물질을 보고, 물질이 허망한 것이므로 감투도 허망하고 모두가 다 허망합니다.

자기 몸뚱이도 허망한 것인데 그런 것에 소중한 생명을 낭비하는 것은 큰 손실입니다.

오늘 영가천도(靈駕薦度)를 받는 영가들이시여!

건명곤명 동남동녀 각 영가들이시여!

부처님의 법은 상을 여의고서 참다운 실상으로 가는 가르침입니다. 영가 당신들이 과거 전생에 업을 지어서 사람으로 있다가 지금 저승에 가서 헤매고 있습니다. 저승길을 떠나기 위해서는 또 역시 허망한 상을, 나라는 상, 너라는 상, 중생이라는 상, 또는 생명이 짧다 길다 하는 그런 상, 이런 상들을 다 떠나야 합니다.

모든 상을 다 떠나야 영가들이시여, 극락세계에 왕생하시는 것입니다. 극락세계에 왕생 못하는 것은 공연히 상에 집착해서 상에 걸려서 못하는 것입니다. 생명 자체는 허공같이 걸림이 없는 것이고 바람같이 걸림이 없습니다.

그런 것이 생명인데 우리가 잘 몰라서 모양에 집착하기 때문에 그 모양 때문에 극락세계에 못 가는 것입니다.

상을 여의지 못하면 극락에 못 가는 것이고 상을 털어 버리면 그냥 이 자리가 바로 극락인 것입니다.

영가들이시여 조금도 유명계(幽冥界), 어두운 세계에서 헤매지 마시고 극락세계에 단번에 왕생하시기 바랍니다.

저 위도(蝟島) 해난 사고 때 희생당하신 영가들이시여, 영가들은 절대로 어느 누구도 원망을 마십시오.

잘 모르는 사람들은 인재다, 사람의 잘못이다, 천재다 또는 자연의 잘못이다,

또는 그 사람들 잘못이다. 이렇게 구구하게 말을 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어느 것만도 아닙니다.

이것도 역시 인연생으로 왔다가 인연생으로 가신 것입니다. 물에 가서 죽든 비행기 사고로 죽든 어디서 죽든 모두가 다 인연 따라서

인연이 다해서 가신 것입니다. 천재도, 인재도, 그대들 잘못도 거기에 다 들어 있습니다.

인연 따라서 왔다가 인연 따라서 갑니다. 어느 누구도 원망해서는 안 됩니다. 원망하면 갈 곳을 못 갑니다.

나라는 상, 너라는 상이 본래 없거니 어디에 누구를 원망하겠습니까.

영가들이시여, 헤매지 말고 오늘 이 법회의 천혼공덕(遷魂功德)으로 해서 부디 극락세계에 왕생하소서.

오늘 방생을 당하는 고기들이시여!

고기들 그대들은 과거 전생에 탐욕스러운 업을 많이 지었습니다. 또는 어리석은 업을 많이 지었습니다. 그러기에 어쩌다가 물고기가 됐습니다.

모두가 다 상에 집착하기 때문에 업을 짓는 것입니다.

상이라 하는 것은 인연생이기 때문에 본래로 없습니다.

그림자 같고 꿈같고 또는 바람 같아서 그런 것은 모양이 없습니다. 중생이 모양 때문에 업을 짓습니다. 모양이 자기한테 좋으면 탐심을 내고 자기한테 싫을 때는 진심을 냅니다. 그런 모양에 집착을 마시고 오늘 해방 당하면 고기로 해서 환희심을 내고 인연 따라서 살다가 고기란 생명이 끝나면 그때는 다시는 상을 내지 말고서 부디 극락세계로 왕생하소서.



나무석가모니불(南無釋迦牟尼佛)!


나무마하반야바라밀(南無摩訶般若波羅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