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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타행자의 편지/미타행자의 편지

금타(金陀)스님

 

금타스님(1898-1948)은 잊혀져가는 스님입니다.

저의 은사스님께서도 뵌 적이 없다고 합니다. 당신께서 장성에서 50리 길을 걸어서 백양사 운문암에 올라가셨을 적에는 이미 열반하신 직후였고 남아있는 대중스님들의 여법한 수행생활에 감복하여 출가하시였다고 합니다.


금타스님은 일제의 식민통치와 해방의 혼돈 속에서 자신을 철저히 감추고 불같이 철저히 살다 가신분입니다 식민통치시절 뛰어난 사람의 처신이 어렵고 갈등이 심했다는 것은 동시대의 경허스님과 수월스님의 삶에서도 잘 알 수가 있습니다. 금타스님의 친척이 되는 노보살님 증언으로는 키는 그리 크지 않았고 얼굴에 약간 얽은 자국이 있고 어릴 적부터 그렇게 천재 기질이 있었다고 합니다. 당신께서는 마을로 내려와서는 일부러 때를 묻히고 산에 올라가서는 철저하게 사신 것입니다 그래서 마을에서 본 사람들은 손가락질을 했고 운문암에서 같이 정진한 사람들은 깨달으신 분으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금타스님의 남아있는 자취는 당신의 글을 모아 큰스님께서 편집한 「금강심론」뿐입니다. 금강심론은 강원시절부터 읽고 또 읽고 하던 글입니다 어려운 글은 사전 찾아가면서 메모해 두었던 것을 제주 자성원 시절 컴퓨터를 배워서 천일기도하면서 정리 「일인전(一人傳)에 일인도(一人度)」 라는 법공양책을 만들었습니다. 먼젓번 법공양에서 *누락 되였던 부분을 다시 이번에 이곳 고내리에 와서 다시 정리 카페, 블러그 「금강심론 읽기」에 글을 올리고 있습니다.


내용적으로는 모든 경전을 회통하였기에 어떤 분은 금강심론을 읽으면 모든 경전을 읽은 것과 같다고도 합니다.

비천한 알음알이로 금강심론을 정리하면서 그 분의 박학다식(博學多識)함에  감탄할 뿐입니다 그러나 박학다식이 그냥 이론으로만이 아니라 철저한 수행의 바탕으로 깨달음의 경지에서 나온 글임을 확신 할 수 있었습니다.


금강심론 글 속에는 금타스님의 *경계도 느낄 수 있고 *자신감도 느낄 수 있습니다. 또한 *진정으로 전하고 싶은 말도 느낄 수 있습니다

큰스님께서도 저에게 말씀하시기를 금강심론 한권이면 혼자 공부할 수 있다 특히 해탈16지는 대단히 중요한 것이니 해탈16지를 의지해서 공부하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금강심론 한 구절 한 구절 그냥 흘릴 말은 없습니다.  다 읽기가 불편하시면 1장 반야바라밀다심경 독해 또는 2장 보리방편문만 읽어도 공부에 충분한 나침판이 될 것입니다.

또한 이 자리를 빌려 「금강심론」을 정리하는데 교정, 입력하여 주신 여러분들께 머리 숙여 감사드립니다. 


                                                   나무아미타불


* 누락부분은

금강심론 p84 제11절 「삼륜단공송」 부터 p128 제7장 「만덕송과 십여시」까지입니다 이하 금강심론 페이지

* 당신의 경계는

1) p72 석공관 설명가운데 「前後 境界를 不可向人說이며」

2) p319 수릉엄삼매도결 끝부분 「뿐만 아니라 聖者의 法號나 又는 經題와 어떠한 三昧名이라도 一聞에 便了하니라」입니다

* 당신의 자신감은

 p125 「현기」 가운데 이「一人傳에 一人度」만으로써 法爾的으로 菩薩聖衆인 一千八百八十萬人 外에 爲先 緣覺과 聲聞의 二乘聖衆인 三千八百八十萬人을  度함. 입니다

* 당신께서 후학에게 전하는 말은

 제4장 석존일대의 경개 설명가운데 p118 「苦果의 集因인 迷惑을 끊어 衆生의 四苦(生․老․病․死)를 離한 自性佛에 歸依할지라」입니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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