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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청화 큰스님 법문집/1. 다시 읽는 큰스님 법문

아미타불이 여러분의 참 이름입니다. 902

아미타불이 여러분의 참 이름입니다. 902

 

마음이 뭉치고 뭉쳐 딱 열려버려 열린 마음으로 보면 우주가 조금도 변함없는 찬란한 부처로 보인단 말입니다. 법당에 모신 저런 부처만이 부처가 아니고 몇 천 년 전 가신 석가모니불만 부처가 아닌 것입니다. 각 도인만이 부처가 아니고 본질을 바로 보면 전부 다 부처란 말입니다. 똥 묻은 막대기까지도 그때는 부처입니다.

 

이와 같이 광대무변한 마음 가지고 덤벼들어야 참선을 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참선한 사람은 아는 것이 오직 천지 우주가 부처뿐이다. 마음을 잡고 참선을 해야 참선이 되는 것이지 나요 너요 미운 사람 고운사람 이런 것이 있으면 그때는 참선이 못 되는 것입니다. 그때는 선()하고 거리가 멉니다.

 

선오후수(先悟後修)라 바른 정견이 돼야 선()이 나오는 것이지 바른 정견이 못 되면 선이 안 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참선을 하는 모양은 하겠으나 그것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바른 정견이란 똥 마른 막대기나 구더기나 피라미나 모든 것을 바로 보면 부처라는 것을 느껴야 합니다.

 

현대적인 과학적인 지식만 배운 사람들은 머리가 굳어버려서 나는 나 너는 너 자꾸 분열만 합니다. 이런 머리로 해서는 잘 안 되니까 마음을 모으고 모아서 모이면 차근차근 열려서 그때는 아! 그럴 법도 하구나 하고 확 열리면 가장 온전한 마음 부처의 마음이 됩니다.

 

우리 중생의 마음은 가짜 마음입니다. 중생이 온전한 마음이 못 되면 불교에서 말하는 윤회를 하는 것입니다. 몇 만 생을 되풀이 합니다. 남의 생명을 함부로 여겨 죽이면 분명히 지옥에 갑니다. 지옥 그것은 거짓말로 방편으로 세워놓은 것이 아닙니다. 욕심이 너무 많으면 아귀가 되는 것이고 식을 분별 못하는 어리석은 이는 개나 소 같은 짐승이 됩니다.

 

온전한 부처와 같은 마음, 천지 우주가 하나 되는 온전한 마음이 못 되면 생명은 몇만 생을 윤회합니다. 현재 눈에 보이는 공부만 하니까 눈에 안 보이는 것을 부인해 버린단 말입니다. 어째서 그러는가, 개념적인 지식만을 배우니까 눈에 안 보이는 것은 믿기에 마음이 내키지 않아서 그마만치 마음이 굳어 있습니다. 젊은이들은 고운 순수한 정신을 무한의 공덕이 있는 영원 속에다 무한히 전개되는 무한의 지혜가 있는 자비가 있는 무한의 세계에다 해방을 시켜야 합니다. 이 마음의 무한경계 무한의 공덕을 갖춘 부처의 경계에 해방시키는 것이 참선인 것입니다.

 

내 힘은 이것뿐이다 생각 하면서 사는 것과 내 마음에다 무한의 힘을 이와 같이 당당히 느끼고 사는 그때는 천 냥의 차이가 있습니다. 믿음이라는 것에는 위대한 힘이 있는 것입니다. 공부가 꼴등이라 해도 힘은 분명 무한대가 있습니다. 자기에게 있는 무한의 힘 천재의 힘을 딱 믿고서 덤벼야 하나의 선이고 참선입니다.

 

이와 같은 마음 자세를 가지고 참선을 해야 하고 그다음에는 몸자세, 몸자세는 이렇게 단정히 앉는 자세가 참선하는 자세 아닙니까. 물론 서서도 하고 누워서도 하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만 그런 서서하고 누워서 하던 걸어가면서 하더라도 우리 마음만 부처님 자리에 머물러 있으면 사실은 다 선인 것입니다.

 

허나 그런 가운데 이런 좌선은 가장 능률이 오르는 본 모습입니다. 인간의 자세 가운데에서 이와 같이 앉은 정삼각형의 모습 같이 안정된 모습이 없습니다. 도형에서 정삼각형이 가장 안정된 모습이 아닙니까. 소위 가부좌가 가장 안정된 모습입니다. 또한 동시에 불교에서 보면 일체여래지인(一切如來智印)이라, 여래지인 지()는 지혜라 인은 도장 인[]자입니다. 일체 부처님의 상징이 도형으로는 정삼각형의 모습인 것입니다.

 

네모난 모습 원 같은 모습이 많이 있으나 일체 여래의 지혜인 부처님의 지혜는 삼각형의 모습입니다. 따라서 이런 모습이 우리 인간성의 본 바탕인 불성이 가장 발동하기 쉬운 것입니다. 우리한테 있는 천재가 발동하기 가장 쉽단 말입니다. 여러분도 책상에 앉을 때 구부려 앉으신 것과 단정한 모습으로 앉는 것에는 굉장한 차이가 있습니다. 비단 책 읽는 일 뿐만이 아니라, 이렇게 단정히 앉아야 만이 우리 피가 막힘이 없이 상하로 순환하는 것입니다.

 

돈오(頓悟)를 하는 것이 마음을 여는 것입니다. 우리는 나에게 막히고 너에게 막혀있습니다. 그런 구속된 폐쇄된 마음 마음을 활짝 열어서 본래 부처라 천지 우주는 물질이 아무것도 없이 오직 마음뿐이다. 그런 심성이 이렇게 저렇게 움직여서 물질이 된 것이지 본래 물질은 아무것도 없는 것입니다. 병의 뿌리가 없듯이 물질의 뿌리도 없습니다.

 

다만 거품이 모여서 된 것이 우리 몸과 같습니다. 그래서 공취(空聚)라 즉 공이 모여서 된 것이다. 우리 몸은 텅 빈 공 기운이 모였습니다. 다만 중생이 잘 못 보기 때문에 내 몸, 내 살 하면서 거기에 착합니다.

 

우리가 한번 죽은 뒤에를 생각해 봅시다. 죽은 뒤에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내 눈도 내 코도 내 예쁜 손도 죽은 뒤엔 아무것도 없습니다. 없는 것을 위해 너무 애를 쓸 필요는 없습니다. 우리가 있는 것은 영생하는 것은 오직 마음뿐입니다. 마음을 단장해야지 몸은 결국 썩고 마는 것입니다. 나중에는 흔적도 없단 말입니다. 흔적도 없는 것에다가 신경을 쓸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다만 우리는 최소한의 것에서 만족해야 하는 것입니다. 현명한 사람은 항상 죽음을 생각합니다. 죽은 뒤에는 우리가 지은 업장만 남습니다. 불성에 더덕더덕 낀 업식(業識)만 남습니다. 업식을 가지고서 업식 따라 욕심이 너무 많으면 아귀로 가는 것이고 또는 남을 미워하고 살생 많이 하면 지옥 가는 것이고 잘해야 사람으로 온단 말입니다.

 

우리의 주인공은 오직 마음뿐인 것입니다. 불심에다가 단장도 하고 장엄도 하고 비록 금생에 성불을 못해서 훤하지 못해 증오(證悟)를 못한다 하더라도 훤한 가운데서 걸음걸음 가는 증오(證悟), 자기 자성불(自性佛) 자기 불성 자리에 가까워지는 것이 우리 인간대사인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무상 대도의 행복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꼭 이 자리에서 마음을 열어서 돈오를 하셔서 그렇게 안 보인다 하더라도 모두가 부처뿐이로구나, 물질 이것은 허깨비로구나, 이렇게 느끼셔야 합니다. 허깨비, 거품, 그림자, 메아리 이것이 물질인 것입니다.

 

오늘 법회에 모인 공덕으로 우리 대중은 해오(解悟)를 하신 분들입니다. 문제는 오직 증오(證悟)만 남았습니다. 증오를 꼭 하셔서 명년(明年) 우리 해제 때는 반드시 구해탈하는 선정해탈(禪定解脫), 지혜해탈(智慧解脫), 명실상부한 사부대중이 되리라 믿습니다.

 

제가 불자님도 기회 있을 때 마다 여기 오셔서 공부하시고 집에 계실 때도 염불하시고 염불도 본체를 안 잊으면 참선인 것입니다. 본체 불성을 안 잊으면 주문을 하나 염불을 하나 참선인 것입니다. 둘이 아닙니다. 그렇게 공부를 하여서 한 걸음 한 걸음 불성에 가깝게 가시길 간절히 바라면서 오늘 말씀 마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