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성이란 것은 부처 불佛자, 성품 성性자, 불성 이것은 우리 마음의 그 본래면목本來面目인 동시에 바로 우주의 생명입니다. 따라서 ‘모든 존재가 불성을 가지고 있다.’ 그 말은, ‘모든 존재가 바로 불성이다.’ 이 말하고 똑같은 것입니다. 그래서 일체중생이 다 불성을 가지고 있다는 그 말씀이, 부처님의 사자후 같은 결정설이고 확실한 단호한 그런 진리이고, 그리고 그 다음에 있는 가르침이 여래상주무유변역如來常住無有變易이라, 그 여래는 바로 부처님 아닙니까. 상주라, 항상 상常자 머물 주住자, 부처님이 항시 머물면서 무유벽역이라, 조금도 변동이 없단 말입니다.
대승불교와 소승불교는 상당히 차이가 있습니다. 소승불교는 더러는 상대적인 그런 분야를 얘기를 했습니다 만은 부처님의 대승불교는 바로 우주 자체를 하나의 부처님의 생명 덩어리로 봅니다. 여래상주 무유변역이라, 그 여래는 부처님인데, 부처님이 항시계시면서 무유변역이라, 조금도 변동이 없단 말입니다. 부처님이 오늘 계시다가 내일 안 계시고 그런 것이 아니 단말입니다. 과거나 현재나 미래나 언제나 부처님은 존재하는 생명자체이단 말입니다.
여러분들 아까 반야심경般若心經을 외이셨지요. 반야심경에 그 모든 법法이 공空해 버린 실상實相에서 본다고 생각할 때는, 그 모든 것이 공하다는 것이 반야심경에 여실히 나와 있습니다. 그 물질을 구성한 지수화풍地水火風 각 원소라든가 그런 것도 다 공한 것이고, 또는 우리 관념을 구성한 수상행식受想行識이라, 우리 감각으로 느낌이라든가 생각이라든가 의욕이라든가 분별시비하는 그런 판단이나 이런 것도 모두가 다 사실은 우리가 근본에서 본다고 생각할 때는 다 비어 있습니다. 이른바 오온개공五蘊皆空이란 말입니다. 오온개공은 현대 물리학보다 훨씬 철저한 우주물리학입니다.
모든 것이 공해 버린 그 자리는 불생불멸不生不滅이라, 모두가 공해 버렸거니, 그 남(生)도 없고 죽음(滅)도 없단 말입니다. 무엇이 있고, 이것이 있고 저것이 있고 상대적인 문제가 되어야 그래야 생사가 있고 남(生)도 있고 죽음(死)도 있고 그런 것이지, 모두가 공한 그 자리, 제법이 공한 그 자리는 생사가 없단 말입니다.
또는 더러운 것도 청결한 것도 없습니다.(不垢不淨), 보고 더럽필 수가 없단 말입니다. 물질이 되어야 그래야 인제 더럽고 더럽지 않고가 있을 것인데, 물질이 아닌 순수 생명이기 때문에 더럽고 또는 청결할 것이 없습니다. 또한 동시에 부증불감不增不減이라, 더하고 덜함도 없습니다. 우리가 염불하고 극락세계를 추구할 때는 이것저것 다 떠나서 순수하게 감성感性으로 하시면 됩니다.
그러나 적어도 부처님의 교리를 따질 때는 그때는 정말 명석한 철학적인 사색이 필요하단 말입니다. 사유가 필요합니다. 왜냐하면 가장 고도한 철학이란 말입니다. 칸트철학이나 니체철학도 미처 모르는 소식입니다. 여러분께서는 공부를 많이 하셔서 칸트의 물자체物自體(Ding an sich)란 개념도 아르시지요. 물자체라, 물질의 본래 무엇인가? 이것이 물자체인데, 칸트 말이, 그 물질이 본래는 이것은 형이상학적形而上學的인 문제이기 때문에 우리 중생의 육안으로는 볼 수가 없단 말입니다. 이른바 중생의 인식주관認識主觀으로는 볼 수가 없는 그 자리가 바로 물자체物自體란 말입니다.
따라서 우리 인간이 지금 본다는 것은 아까도 말씀 드린 봐와 같이 우리 인간 존재, 인간 정도의 업장業障을 가진 우리 인간의 눈으로 지금 보는 것이지 사실을 사실대로 보는 것이 아닙니다. 부처님 가르침은 사실의 실상實相을 보시는 것인데, 우리 중생들은 지금 가상假相을 봅니다. 허상虛想을 봅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 유한적인 존재란 것은 결국은 꿈이요 허깨비요 거품이요 그림자나 똑 같단 말입니다.
그러나 어떻든 아까 말씀드린 봐와 같이 이 현대 천재적인 물리학자가 물질이라는 것은 결국은 허망한 것이다. 우리가 측정할 라야 측정할 수가 없다. 시간성도 공간성도 없는 것이다. 이런 자리를 분명히 증명을 했습니다. 그렇다고 생각할 때에 그 허망 무상한 측정할 수가 없는 그 자리가 아니라 정말로 참말로 있는 것은 무엇인가?
참말로 있는 것이 아까 제가 열반경27에 있는 여래상주 무유변역이라, 부처님께서는 항시 존재하신단 말입니다. 부처 불佛자, 성품 성性자 불성佛性이란 뜻이나, 부처님이란 뜻이나 똑 같습니다. 불교가 하도 여러 가지 개념이 많으니까 우리가 혼동을 일으키기가 쉽습니다만 아까 말씀드린 봐와 같이 그 불성이라고 말 하나, 또는 법 법法자, 몸 신身자, 법신法身이라고 말하나 또는 부처님이라고 말하나 똑 같은 뜻입니다.
그래서 그와 같이 인연 따라 생겨난 것은 이것은 제법이 무상한 것이고, 또는 무상한 것이기 때문에 고유한 것은 어디에도 없기 때문에 나라고 할 것도 없고 내 소유라 할 것도 없단 말입니다. 우리가 분명히 나라는 것도 이것도 역시 진리에서 보면 허망한 것이구나, 내가 허망한데 하물며 나한테 붙어 있는 아,내 권속이고 내 재산이고 내 지위고 이런 것도 사실은 허망한 것이구나, 이렇게만 분명히 알아도 우리가 집착할 수가 없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그것을 확실히 아직은 아는 것은 아닙니다. 깊은 수행修行을 통해서 우리가 체험體驗해야 되는 것인데, 체험을 못한다 하더라도 우선 이론적으로 만이라도 아까 말씀드린 봐와 같이 따지고 따지고 보면 결국은 모두가 다 무상한 것이고, 또는 모두가 무상한 것이니까 나라고 할 것도 없고, 내 소유라 할 것도 없단 말입니다. 그러나 거기까지만 가 버리면 이것은 제법이 공이라는 이런 도리는 알아서 공 소식은 좀 안다 하더라도 영생불멸永生不滅한 극락세계極樂世界를 우리가 긍정하기는 어렵단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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