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에 내가 염불을 하는데 기왕이면 나도 염불선을 하고 싶다. 그런 분들이 계시지 않습니까? 물론 그러시겠지요. 저 같은 사람도 이제 일반 염불과 염불선과 어떤 차이가 있는가? 그런 문제 가지고 고민도 하고 그랬습니다. 여러분들께서도 염불하신 분들은 기왕이면 염불뿐만 아니라 염불선을 한번 해보았으면 되겠다. 그렇게 생각하신분도 계시겠지요.
그러나 염불선의 체계 문제에 대해서도 여러 가지 말이 많이 있습니다. 그냥 염불도 꼭 자기 식으로 소리를 나무아미타불 자기 식으로 자기 의견대로만 해야 한다는 그런 분도 있고, 여러 가지가 많이 있지 않습니까. 그러나 염불은 꼭 고유하니 어떤 음정에 따라서 그렇게만 하라는 것은 아닙니다. 소리 내도 좋고 안내도 좋고 다 좋은 것입니다. 계행 지키면서 염불하면 더욱 좋고, 계행을 지키지 못하면 못한 대로 염불해도 좋고 말입니다.
자나 깨나 앉으나 서나, 또는 소리를 내나 안내나 염불하는 것은 어느 때나 좋습니다. 장사할 때나 밥 먹을 때나 어느 때나, 밥 먹을 때는 소리를 낼 수가 없지 않습니까. 염불念佛이라는 것은 생각 염念자, 부처 불佛자 부처를 생각하고, 부처를 생각하는 것은 아, 소리를 안내고 할 수 있는 문제 아닙니까. 따라서 염불이란 것은 소리를 내나 안내나 어디서나 좋은 것입니다.
그리고 빨리 해도 무방한 것이고 말입니다. 그러므로 어느 누구 식으로 하라는 것은 아닙니다. 극락세계에 가서 보면, 극락세계에서 꼭 어떤 식으로 하란 법은 절대로 없습니다. 극락세계란 것은 그야말로 모두가 다 광명정토光明淨土라, 우리 사람 같이 이와 같이 이런 존재가 있는 것이 아니란 말입니다. 오직 모두가 광명세계란 말입니다. 몸도 광명 몸입니다.
극락세계 중생은 무극허무지신無極虛無之身이라, 그 물질이 아닌 광명으로만 된 무량의 몸이란 말입니다. 물질 아닌 몸이니까, 극락세계 중생은 개체個體인 동시에 바로 전체全體입니다. 자기 몸과 우주와 절대로 둘이 아닙니다. 오직 하나의 몸이란 말입니다.
우리 불자님들! 사실은 극락세계 중생뿐만 아니라, 우리 중생도 우리 존재도 우리가 똑바로만 본다고 생각할 때는, 제법의 공 자리를 느끼고, 제법 공 자리 이것은 그냥 우리가 사실을 사실대로 보는 것이 제법 공입니다. 따라서 제법의 공자리를 느끼고 불생불멸한 그런 도리에서 본다고 생각할 때는, 우리 이대로 이 몸도 역시 개체인 동시에 전체입니다. 개체와 전체는 절대로 따로따로 분리된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인과법因果法을 알면 그냥 짐작할 수 있는 문제 아닙니까. 이른바 중중무진重重無盡이라, 중중무진이란 것은 모두가 다 한 고리로 얽혀 있다는 말입니다. 우주 전체가 하나의 몸인 것을, 우리 중생은 전체를 못 보니까 나 따로 너 따로 이렇게 생각한단 말입니다.
인연법이 가장 중요한 것은 모두가 다 본래로, 우리가 새삼스럽게 느끼는 것이 아니라 본래로 하나의 몸인 것을 압니다. 우리 중생은 그 바탕을 보지를 못하니까. 성품을 보지를 못하고 우리 중생이 상만 보니까 나 따로 너 따로 란 말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바로 볼 수만 있다면, 바로 불수만 있으면 저절로 참다운 대비大悲가 나온단 말입니다. 참다운 자비慈悲가 나온단 말입니다. 참다운 무주상행無住相行을 하지 말라 해도 안할 수가 없습니다. 나와 남이 둘이 아닌데 남한테 베풀면서 나라는 상을 내겠습니까. 따라서 그 근원적인 문제가 굉장히 중요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염불念佛을 한다 하더라도 일반 보통 염불과 염불선의 차이가 무엇인고 하면, 염불선念佛禪이란 것은 근원적인 문제, 본체를 여의지 않고서 염불하면 그것이 염불선이 됩니다.
절대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억지로 생각하지 않더라도, 우리가 마음으로 그와 같이 내가 아직은 정말로 깨닫지를 못해서, 내가 증명證明을 못해서 천지와 나와 둘이 아니다는 소식은 모른다 하더라도, 천지 우주는 본래로 불생불멸이고 참다운 진여불성 자리가 바로 내 자성이기 때문에 그런 자리가 참 자기다. 이렇게 해서 그 진여불성 자리를 안 여의고 염불하게 되면 그것이 바로 염불 참선이 됩니다.
그러나 부처님이 저 밖에, 내 밖에 저기 계신다. 이렇게 생각하면서 하는 염불은 염불선이 못됩니다. 보통 염불은 됩니다. 그러나 그와 같이 염불 참선이 못 된다 하더라도, 또 염불을 열심히 하다 보면 마음이 모아진단 말입니다. 마음이 모아지면 본래가 둘이 아닌지라, 결국 그때는 본래적인 우주의 본 바탕인 진여 불성과 하나로 계합된단 말입니다. 우주의 본체와 하나가 되어 버립니다.
지금은 여러 가지로 혼란한 시대아닙니까. 그 산업사회란 것이 그 무서운 사회 아닙니까. 그 산업사회라는 것이 많이 생산하고 많이 소비고, 또 그 물질이란 것은 한계가 있는 것인데 사람 욕심은 한계가 없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자연적으로 무시무시한 경쟁사회가 안될 수가 없단 말입니다. 그러다 보면, 사람 사람끼리 화해할 수도 없고, 그야말로 참 별스러운 사회적 폐단도 나오고 또 환경 파괴가 나오고 그러겠지요.
모두가 다 바른 진리를 모르는데서 오는 무명심에서 오는 필연적인 폐해입니다. 따라서 현대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가 무엇이가 하면, 모든 존재의 근원에다 우리 마음을 두어야 한단 말입니다. 생명의 본체에다 마음을 두어야 합니다. 생명의 본체 이것이 불성이고 법신이고 또 이것은 진여라, 진여불성이라, 그 부처님께서 마르고 닳도록 말씀하신 법신ㆍ진여ㆍ불성 또는 실상ㆍ실재, 또는 주인공, 이런 말씀이 모두가 다 하나의 도리입니다. 거기에 마음을 두어야 참다운 대승불교가 됩니다. 그 자리가 바로 열반이고 바로 극락입니다.
그래서 바로 본다고 생각할 때에는 불생불멸한, 불생불멸不生不滅한 우리가 진리를 바로 본다고 생각할 때는 그 이대로 사바세계 이대로 극락세계란 말입니다. 또는 우리 몸이 이대로 나무아미타불입니다.
왜 그런고 하면 그 전체 우주의 생명과 내 생명과 이렇게 뿔뿔이 분열되어 있지 않습니다. 하나의 생명인 것을 우리 본바탕을 보지 못하고서 이렇게 상만 본단 말입니다. 들 떠 있는 상만 보기 때문에 몽환포영 같은 꿈이요 그림자요 거품이요 그림자요 우리 중생은 지금 그것만 봅니다. 우리 중생이 인식 능력이 그것 밖에는 없습니다. 업장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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