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께서 가장 많이 역설 하셨고, 한국의 도인들도 그대로 해서 그대로 우리한테 역설을 많이 했고, 또 부르기도 좋고 또 개념상 의미도 크고 나무아미타불을 부르는 것이 관세음보살이나 지장보살이나 문수보살이나 다 그 속에 다 포함되어 있습니다. 혹시 누락되고 빠져있으면 모르건이와 그렇게만 불러도 된단 말입니다. 그 옹색하게 미륵존여래라 무엇이다 그렇게 부를 필요가 없단 말입니다.
그러니까 사람들이 가만히 보면 꼭 자기식대로 하려고 그래요. 아, 부처님식대로 하고 정통 있는 도인들 식대로 하면 훨썩 쉬울 것인데, 그 화두공안도 그래요. 대혜종고大慧宗杲스님이 나올 때 까지는 그러니까 대혜종고 스님은 북송北宋 때 분이니까, 북송 때 까지는 화두공안이란 말씀이 없습니다.
그 양반이 재주가 좀 있어놓으니까 자기 식으로 참선은 곡 화두공안을 들어야 된다. 이렇게 해서 화두공안을 체계를 세워놓으니까, 또 그 파가 상당히 세력을 중국에서 떨치니까 꼭 그 파에서 하는 화두공안만 들어야 만이 참선이 된다고 생각을 한단 말입니다. 부처님께서 하신 말씀도 아니고 그 후에 임제臨濟나 모다 백장百丈이나 그런 스님들께서 하신 말씀도 아닌 것이고, 그 똑똑하고 재주 있는 사람들이 보통 꼭 자기 식을 만들라고 그래요. 그런데 그런 버릇이 지금도 있단 말입니다.
우리는 그런 말씀에 현혹 될 필요가 없이 아까 말씀드린 봐와 같이 가장 부처님께서 말씀을 많이 하고, 또 도인들이 가장 우리한테 권고를 많이 하고, 또는 부르기도 좋고 의미도 다 거기에 포괄되어 있고 말입니다. 또한 동시에 제가 허두에서 말씀드린 극락세계, 극락세계의 교주가 또 아미타불이란 말입니다.
극락세계의 교주인 동시에 우주의 교주 또한 동시에 우리 마음의 본 주인공主人公이란 말입니다. 우리 마음의 본 주인공과 극락세계의 교주와 전 우주의 주인공 자리는 똑같습니다. 왜 그런고 하면 그 진여불성 자리는 물질이 아니기 때문에 공간성과 시간성이 없습니다. 다 하나의 진리란 말입니다.
모양이 있어야 그것이 크다 작다 모다 그러는 것이지 모양이 없는 생명자체, 우리 마음이 분명히 있지만 안 보이지 않습니까. 그와 똑 같이 부처님 그 법신 자리도 모양이 없지만 우주의 본바탕으로 해서 우주에 어느 때나 과거나 현재나 미래나 충만해 있단 말입니다. 그래서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을 간절히 간절히 외시기 바랍니다.
소리를 내서 할 때는 ‘나무’를 보테서 ‘나무아미타불’ 그렇게 하시면 하기가 쉽고, 또 소리 없이 그냥 아까 말씀드린 봐와 같이 화두시 해서 말입니다. 참선하는 하나의 그야말로 공안으로 생각할 때는 아미타불만 하시면 되십니다.
그러니까 아미타불은 아까도 말씀드린 봐 내 마음의 그런 근본 생명인 동시에 바로 우주의 생명인 것이고 우리가 종당에 필경에 돌아갈 그런 고향인 극락세계의 교주란 말입니다. 십념왕생十念往生이라! 우리가 죽을 때에 설사 우리가 업장을 많이 지었다 하더라도 간절한 마음으로 열 번만 나무아미타불을 불러도 극락세계에 태어난다는 그런 법문이 또 있습니다.
그것은 무엇인고 하면 우리 마음이라는 것이 본래로 부처이기 때문에 정말로 진실한 마음으로 우리가 부처님 명호를 외이면 진실한 마음으로 외인다고 생각할 때는 그 순간에 우리 마음은 비약飛躍이 됩니다. 초월超越한단 말입니다. 우리 마음이 불성이 아니면 모르건이와, 우리 불자님들께서 가장 중요한 가장 중요한 문제를 제가 한 번 더 말씀 드립니다.
우리 마음과 부처와는 똑 같습니다. 우리 마음도 모양도 없고 이름도 없지 않습니까. 우리 마음은 지금 분명히 살아 있으니까 이제 생명이 있는 것인데 이 마음도 역시 모양도 없고 이름도 없단 말입니다. 분명히 있지만은 모양도 없고 이름도 없고, 또는 부처님도 역시 석가모니 부처님은 모양을 나투신 부처님이신 것이지, 참다운 부처님은 법신불 이른바 불성인데 그 부처님도 역시 모양도 없고 이름도 없단 말입니다.
우리가 나다 내가 김아무게다 박아무게다 이렇게 하는 것은 우리 마음을 잘 몰라서 그럽니다. 비록 김아무게한테 있는 마음이나 또는 박아무게한테 있는 그런 마음이나 원래 똑 같이 모양이 없기 때문에 그 마음은 그 법신 부처님 불성과 똑 같이 우주에 충만해 있습니다.
모양이 있고 물질이 되어야 이제 한계가 있고 아, 크다 작다 이와 같이 우리가 이제 구분해서 말 할 수가 있는 것인데 모양이 없는 것은 구분해 말할 수가 없단 말입니다. 어느 누구의 마음이든지 간에 아까 말씀드린 봐와 같이 우주에 충만해 있고 동시에 그것이 바로 불성이기 때문에 만 공덕이 갖추고 있습니다.
능력能力도 자비慈悲도 지혜智慧도 아까 말씀드린 봐와 같이 폐 균을 이길 수 있는 힘도, 또는 나병의 균을 이길 수 있는 그런 힘도 다 갖추고 있단 말입니다. 하물며 하찮은 돈 좀 버는 것이라든가 감투를 쓰는 것이라든가 그런 것은 문제될 것이 없지요.
그러나 그런데다 우리 마음을 잘 못 써버리면 그때는 우리가 인제 정말로 가야될 우리 고향 길을 더디게 가게 되는 것이고 또는 눈에 보이는 그런 재물이라든가 또는 명예라든가 그런 것에 우리 마음이 집착이 되어 버리면 그때는 우리가 정작 해야 될 일을 못하는 것이고 인제 우리 업만 짓는 그런 것에다 우리 생명을 낭비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먹고 살고 또 명예롭게 살고 재물도 있어야 되고 다 그렇습니다. 그래서 다 그런 것도 소중하나 설사 명예를 구하고 돈을 구하고 그렇다 하더라도 기본적인 마음 자세는 항시 부처님 가르침대로 성자의 가르침대로 우리가 다 따라야 한단 말입니다. 그러다가 어느 결정적인 단계에 이르러서는 몽땅 모두가 다 부처님 가르침만 따르는 쪽으로 우리 생명의 길을 그 쪽으로 돌려야 됩니다. 그쪽으로 회향回向해야 합니다.
오래동안 들다보면 불거이거不擧而擧라, 화두를 안 들어도 그때는 저절로 화두가 들어진단 말입니다. 공부가 그렇게 익어져야 되는 것입니다. 익어져야 그래야 이제 액운厄運을 이긴단 말입니다. 병고病苦도 이기고 그때는 액운을 이깁니다. 왜 그런고 하면 우리 마음이라는 것이 본래 불성이기 때문에 만능의 자리란 말입니다. 만능의 자리기 때문에 재주나 운수나 그런 것이 사실은 별문제가 아닌 것입니다.
그래서 나무아미타불南無阿彌陀佛로, 나무아미타불로 인제 다 귀의歸依해서 말입니다 그 쪽으로 하시면 집안 식구도 다 그런 쪽으로 같이 온 가족이 합심合心해서 하나의 그런 부처님 명호名號로.... 기독교인 집안에서는 하나님 부르고 다른 님 부르고 할 일이 없지 않습니까. 기독교가 지금 20억 수가 믿고 있는 것은 그 신앙이 단순 소박하단 말입니다.
불교는 너무나 다양해서 복잡하니까 이럴까 저럴까 다 헤맨단 말입니다.
부처님께서 가장 말씀을 많이 했고, 또 극락세계의 교주이고, 또 내 마음의 내 본 주인공자리 이름이고, 전체 우주의 이름인 것이고, 그러한 나무아미타불南無阿彌陀佛! 아미타불로 해서 통일을 그렇게 해 나가십시다. 그것이 굉장히 우리한테 참 중요합니다. 우리가 아까 그 여러분들이 입정하실 때에 보리방편문菩提方便門도 그런 도리어요.
우주의 순수 생명자리인 법신불, 또는 법신불에 들어있는 만공덕 자비나 또는 지혜나 행복이나 능력이나 만공덕 자리가 보신인 것이고, 또는 그 자리를 근거로 해서 이루어지는 이 현상계 천체 만물이 모두가 다 화신인 것이고, 그 법신 보신 화신을 합한 것이 아미타불이란 말입니다.
금생에 얼마나 바쁘고 할 일도 많습니까. 그러니까 가장 아까 제가 말씀드린 봐와 같이 우리네 그 도인들이라든가 또 불경에서 가장 말씀을 많이 했고 부르기도 좋고, 최상의 이름입니다. 최상의 개념입니다. 꼭 기억하셔서 차를 운전할 때라든가 어느 때나 빠짐없이 어느 때나 그 중단되지 않게시리 말입니다.
그렇게 되어야 아까 말씀드린 봐와 같이 불념이념不念而念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 염불念佛이 그대로 지속持續되는 것이고, 또는 순간 찰나에 교통사고를 당하실 것인데 항시 속으로 염불을 하고 있으면 염불소리 때문에 그 신장神將들이 자기한테서 못 떠난단 말입니다. 여러분들 몽수경夢授經 더러 읽고 그러시죠. 가장 쉬운 몽수경에도 있습니다만 천라신지라신天羅神地羅神이라!
우리가 염불을 하면 이 공간에 있는 신이나 또는 땅에 있는 신들이 우리를 못 떠난단 말입니다. 염불소리를 듣고서 우리를 지킨단 말입니다. 우주라는 것은 정말로 신비로 가득차 있습니다. 우리가 하기에 매여 있단 말입니다. 부처님 명호를 외이는 생활이라는 것은 아들한테나 딸한테나 어버이한테나 또는 자기 친척한테나 친구한테나 어느 누구한테나 가장 좋은 선물입니다.
그 아미타불이 나한테만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주인공인 동시에 너의 주인공이 되는 것이고 또는 바로 우주의 주인공이고 우리가 돌아가야 할 우리 극락세계의 주인공 바로 부처님이란 말입니다. 우리가 금생에 염불을 많이 하고 극락세계에 갈 때는 성중래영聖衆來迎이라! 아미타불과 그 보살들이 우리를 마중 나온단 말입니다.
우주라는 것은 신비에 충만해 있습니다. 우리 인간의 눈으로 해서 안 보인다고 그래서 부정할 아무런 우리로서는 권리가 없습니다. 다 도인들이나 또는 그야말로 부처님께서 해 놓으신 것이니까 말입니다. 생각 생각에 염불念佛 많이 하셔서 금생에도 행복幸福하시고 또는 우리가 금생에 인연이 다하면 그냥 아무것도 없어지는 그런 것이 아닙니다. 그 잘 못살아 놓으면 지옥이나 아귀로 뚝 떨어지는 것인데, 죽음은 기약이 없습니다. 내일 갈지 모래 갈지 어느 누구도 모릅니다. 나이 많다고 해서 꼭 빨리 가고 나이 젊다고 그래서 늣게 가고 하는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어차피 허망한 이 몸뚱이 무상한 몸뚱이는 가고 마는 것인데 간 다음에 어떻게 될 것인가? 훤히 우리 갈 길을 알아야 됩니다. 제아무리 안개가 오리 아니라 몇 백리 안개가 끼었다 하더라도 우리 갈 길은 극락세계란 말입니다. 훤한 극락세계입니다. 극락세계는 바로 광명세계光明世界입니다. 빛으로 빛나는 세계란 말입니다.
현대 물리학도 지금 저 미세한 단계에서는 모두가 다 방사 광선이란 말입니다. 전자나 양자나 그런 것은 모두가 다 하나의 방사 광명입니다. 우주라는 것은 따지고 보면 부처님의 광명으로 지금 가득차 있어요. 모두가 다. 우리 인간들이 나라는, 아까 그 망령된 나, 나라는 것에 얽매여 있으니까 그것이 안보일 뿐이란 말입니다.
명명백백이 존재하는 우주는 참 광명세계인데 우리 인간 중생들이 그 자기라 하는 잘 못 본 그런 망령된 망아 때문에 자기 몸뚱이에게 집착하고 자기 관념에 집착하고 그런 망령된 생각 때문에 우리가 인제 그만치 본래 갖추고 있는 극락세계 광명세계를 우리가 못보고 있는 것입니다. 나무아미타불을 정말로 빠짐없이 또는 끊임없이 그렇게 하시기 참 바랍니다.
신앙信仰이라는 것은 간단한 가운데 아까 말씀드린 봐와 같이 지속을 시키는 끈기로 해서 마음이 하나로 딱 통일 되고 우리 마음이 산란스러우니까 우리 본래 주인공을 우리가 체험을 못하는 것인데 우리 마음이 일념一念이 되어서 정말로 통일이 딱 되면 그때는 삼매三昧라! 삼매에 들어간단 말입니다.
우리 불자님들 삼매란 말도 꼭 외워두시기 바랍니다. 삼매에 들어야 됩니다. 삼매란 것은 무엇인고 하면 산란스런 마음이 딱 다잡아서 우리 마음이 오로지 하나의 경계에 머무르는 것이 삼매란 말입니다. 삼매에 들어가야 그래야 우리의 본래면목 자리를 우리가 체험을 합니다. 삼매에 못 들어가면 말로는 제법 아는 소리를 하지만 그때는 체험을 못합니다. 체험하기 위해서는 꼭 삼매에 들고, 삼매에 들기 위해서는 자기가 하는 공부 화두면 화두, 염불이면 염불, 주문이면 주문을 오로지 오로지 일념으로 외운단 말입니다.
그래야 삼매에 들고 삼매에 들어야 우리 본래 불성자리를 체험을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셔서 정말로 원래 갖추고 있는 행복을 스스로 만유감이 없이 빠짐없이 스스로 수용을 하시기를 간절히 빌어서 마지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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