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영원한 고향은 극락세계極樂世界입니다.
그러나 일반 분들은 극락세계하면 그 우리가 사바세계에서 고생을 많이 하니까 인생고해이니까 우리한테 우리를 위안시키기 위해서 아주 안락스러운 극락세계를 말씀했다. 이렇게만 쉽게 생각한 분도 있습니다.
우리 인생고해를 달래기 위한 하나의 그런 방편설方便說이다. 이렇게 말씀한 분도 있습니다. 또는 근래에 우리 불자님들 까지도 극락세계하면 눈에 보이는 세계가 아니기 때문에 굉장히 생소하고, 또는 그 자리를 우리가 믿어야 할 것인가? 극락세계를 위해서 우리가 어떻게 노력을 해야 될 것인가 하는 그런 문제에 관해서 의심을 많이 품습니다.
그러나 극락세계는 이것은 우리가 몇 만생을 되풀이 한다 하더라도 꼭 도달해야 될 우리의 근원적인 영생의 고향입니다. 따라서 우리 인간은 바꿔서 말하면 극락세계에 가기 위해서 지금 우리가 여행을 하고 있단 말입니다. 비단 우리 불교뿐만 아니라 다른 종교도 마찬가지입니다. 극락세계라 하는 영원의 세계를 가기위해서 걸음걸음 지금 여행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어째서 극락세계를 꼭 가야 되는 것인가?
우리 인간 존재가 우리 인간이라는 것이 본래가 극락세계에 가게시리 되어 있단 말입니다. 본래 성품이 아까 말씀드린 부처 불佛자, 성품 성性자 불성佛性이기 때문에 불성으로 우리 마음이 이루어지고 모든 우주宇宙의 일체만유一切萬有가 불성으로 부처 불자, 성품 성자 부처의 성품으로, 부처의 성품인 그 생명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우리가 그 불성과 합치가 되는 불성과 오로지 하나가 되는 그런 자리가 아니고서는 우리 마음은 항시 불안스럽습니다.
그런 느낌을 얻을 수가 있는 것이고 그렇게 되어야 극락세계에 도달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눈에 보이는 세계가 아니기 때문에 비단 일반 사람뿐만 아니라 우리 불자님들 가운데서도 또는 우리 스님네 가운데서도 아, 극락세계는 하나의 우리 인간을 달래기 위한 그런 방편법문方便法門인 것이지 어디가 극락세계가 있을 것인가?
그러나 극락세계는 분명히 명명백백明明白白히 존재하는 실상實相의 세계입니다. 우리 인간의 눈으로 보이는 것은 이것은 가상假相의 세계인 것이고 사실은 극락세계가 이것이 참다운 실상의 세계인 것입니다.
오리무중五里霧中이라, 십리의 반 틈이 오리五里 아니겠습니까. 무중霧中은 안개 무霧자, 가운데 중中자, 아, 안개가 조그만 끼어도 그럴 것인데 오리나 십리나 안개가 끼어 놓으면 정말로 앞도 안보이고 뒤도 안보이고 답답하겠지요.
우리 범부凡夫 생활이라는 것은 그와 똑 같습니다. 자기 과거에 대해서도 우리가 알 수가 없는 것이고 아, 죽어서는 어디로 갈 것인가? 그것도 우리 범부는 모릅니다. 사실은 과거도 모르고 미래도 모른단 말입니다. 그러니 마음이 불안하지 안할 수가 없습니다.
성자가 되어야 비로소 뒤에도 보고 앞에도 보고 훤히 내다 볼 수 있단 말입니다. 이른바 견성오도見性悟道라! 자기 본래의 성품을 봐야 비로소 아는 거란 말입니다. 이렇게 말씀드리면 아, 견성오도는 뭐~ 공부하는 스님네나 그렇게 갈 것이지 일반 우리 불자들이사 뭐~ 어떻게 말씀만 좀 따라가다 마는 것이지 어떻게 우리가 견성오도를 할 것인가? 그렇게 또 생각한 분도 계실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안일하게 쉽게 생각을 마르셔야 됩니다. 견성오도를 못하면 이거 어떻게 될 것인가? 또 내내야 육도윤회六道輪廻라! 지옥地獄이나 아귀餓鬼나 축생畜生이나 아수라阿修羅나 인간人間이나 또는 천상天上으로 이런대로 뱅뱅 돈단 말입니다. 과거에 위대한 철인哲人들 가운데서 그 윤회설輪回說, 우리가 지은바 그런 업보業報에 따라서 사람으로 축생으로 또는 지옥으로 뱅뱅 도는 윤회설을 말씀한 분들이 굉장히 많습니다.
참다운 도인道人들은 말씀을 안 할 수가 없습니다. 왜 그런고 하면 과거나 현재를 뻔히 내다본 분들은 분명히 보이는 것이니까 그 윤회설을 긍정하고 또는 역설하지 안 할 수가 없습니다. 현재 비록 우리가 인간의 몸을 받아 있다 하더라도 과거 전생을 우리가 숙명통宿命通으로 해서 본다고 생각할 때는 아, 더러는 귀신鬼神도 되고, 더러는 축생畜生도 되고, 또는 지옥地獄도 다 갔단 말입니다.
우리 본래 성품은 다 부처이건마는 불성이건마는 우리가 무명심無明心 때문에 무지 때문에 무지無知에 가리어서 함부로 말도하고 함부로 행동도 하고 생각도 그 무지로운 생각으로만 그처버리면 아, 결국 개犬가 되었다 소牛가 되었다 좀 잘 살아서 인제 아, 사람人으로 태어났다 그런단 말입니다. 인과因果라는 것은 조금도 이것은 흠절이 없습니다. 꼭 그대로 받는단 말입니다.
우리는 지금 금생에 나와서 여러 가지로 인생 험악한 사회에서 그때그때 고생도 많이 하고 있습니다만 이런 것이 모두가 다 어느 누구의 허물도 아닌 것이고 우리 스스로 지어서 그대로 받습니다. 우리 몸뚱이라든가 우리 말하는 음성이라든가 이런 것도 모두가 다 과거세 어떻게 살았든가? 과거세 자기 업業의 과보果報로 해서 금생에 받는 것입니다. 이런 것은 어길 수가 없습니다.
또 내생도 마찬가지로 금생에 내가 어떻게 살았는가?
우리가 나뿐 생각 한 생각하면은, 불경佛經에 이런 말씀이 있어요. 일념오백세一念五百歲라! 한 생각을 하며는 한생각의 그런 이른바 그 기운이 오백세 동안이나 흘러간다는 것입니다. 남 미워하면 미워하는 그 마음이 한 생 두 생 거듭해서 오백세 동안이나 흘러간단 말입니다. 남을 지나치게 너무나 좋아해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계념무량겁繫念無量劫이라! 우리가 두고두고 ‘저놈 미운 놈이다’ ‘저놈 미운 놈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미운 놈이다 그 마음이 우리 생리에도 그냥 바로 반영이 옵니다. 따라서 우리가 스스로 짓고 스스로 받는 것이 우리 인생이 아니겠습니까마는 아까 제가 말씀드린 봐와 같이 비록 우리가 금생에 만나서 서로 정말로 참 반가운 고향 사람들이지만은 또 우리는 조금만 더 있으면 또 반드시 헤어지지 않으면 안 될 그런 숙명적宿命的인 우리가 무상無常의 물결위에 타고 있단 말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제 그러면서 그야말로 참 영원한 고향이라 하는 극락세계가 없다고 생각할 때는 사실 인생을 살 가치가 없습니다. 어차피 죽어 갈 것이고 죽은 뒤에 오는 것이 아, 천상도 없고 극락도 없이 아, 그대로 그냥 자연적으로 뱅뱅 도는 그런 윤회만 있다고 생각할 때에 개나 소나 돼지나 사람이나 천상이나 그런 정도만 있다고 생각할 때는 우리가 살 가치가 없단 말입니다. 영원불멸永遠不滅의 그런 극락세계極樂世界가 분명히 실존적으로 존재한단 말입니다. 실제로 존재합니다.
우리가 사는 것은 가상에 불과한 것이고 극락세계만이 실지로 존재하는 영원의 고향이고 참다운 이것은 실상의 세계입니다. 그러면 극락세계를 어떻게 가야 할 것인가? 부처님 가르침은 참 신묘神妙 불사의不思議 합니다. 부처님 가르침은 그냥 아, 목적을 제시해 놓고서 아,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그런 방법을 무시한 가르침이 아닙니다.
그 극락세계에 가기 위한 그런 여러 가지의 법문이 이른바 팔만사천법문八萬四千法門이란 말입니다. 참선參禪하는 것이나, 또는 주문呪文을 외이는 것이나, 염불念佛하는 것이나, 모두가 다 극락세계에 가기위한 그런 법문입니다. 극락세계는 아까도 말씀드린 봐와 같이 우리 마음을, 우리 마음이 열려야 갑니다. 우리 마음이 깨달은 단계 어렵지만은 견성오도見性悟道하는 그런 단계가 되어야 극락세계에 비로소 우리가 도달한단 말입니다.
'4. 청화 큰스님 법문집 > 1. 다시 읽는 큰스님 법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미타불이 여러분의 참 이름입니다. 405 (0) | 2019.03.04 |
---|---|
아미타불이 여러분의 참 이름입니다. 404 (0) | 2019.02.25 |
아미타불이 여러분의 참 이름입니다. 402 (0) | 2019.02.11 |
아미타불이 여러분의 참 이름입니다. 401 (0) | 2019.02.04 |
아미타불이 여러분의 참 이름입니다. 400 (0) | 2019.01.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