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면으로 보나 고생 바다를 떠나는 길은 부처님 가르침 밖에 없습니다. 부처님 가르침은 석가모니 가르침이기 이전에 바로 우주의 도리입니다. 석가모니가 나오시고 안 나오시고 상관없이 우주의 연기법緣起法은 항시 존재했던 것입니다.
따라서 연기법으로 볼 때에 천지 우주는 다 허망 무상하고 오직 존재하는 것은 진여불성이다. 이렇게 먼저 알으셔야 합니다. 이것은 바로 과학적인 도리인 동시에 철학적인 원리입니다. 연기법 이것은 어느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바로 우주의 공덕이기 때문에 가사 하이젠베르그의 불확정성의 원리라든가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라든가 그런 것도 모두가다 연기법 속에 들어 있습니다.
다만 그것은 근본 본질을 깨닫지 못했기 때문에 확실한 것은 못됩니다마는
아무튼 현대과학은 특히 정밀물리학은 부처님 가르침을 차근차근 점차로 증명해 갑니다. 따라서 싫든 좋든 간에 무슨 종교나 무슨 철학이나 세월이 흐르면 그때는 필연적으로 부처님 가르침으로 들어오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 시냇물 저 시냇물이 종당終當에는 다 바다로 가듯이 부처님 가르침은 바다와 똑같습니다. 다른 철학, 다른 종교, 다른 이데올로기 이런 것은 모두가 바다로 흘러내려 오는 시냇물과 똑같습니다.
이것은 어쩔 수가 없는 천지의 도리입니다. 다행히도 우리 불자님들은 정말로 백천만겁난조우百千萬劫難遭遇로 과거 무수생 동안에 닦아 내려온 그런 공덕으로 오늘날 부처님 가르침을 만나신 것입니다. 우리 눈을 찌르고 본다 하더라도, 거짓말 같으면 눈을 찔러서 소경을 만든다하더라 그것은 조금도 주저 없이 확신을 가지고서 말할 수 있는 것이 앞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어느 종교나 어느 과학이나 모두가다 가면 갈수록 점차로 부처님 가르침으로 들어오지 않을 수 없습니다.
불자님들 그와 같이 바른 가치관 바른 불타관佛陀觀을 먼저 확립을 시키십시오. 아무리 못되게 살았다 하더라도 내 마음은 석가모니와 더불어서 조금도 흠절이 없는 그러한 무한공덕을 갖추고 있습니다. 자비도 원만 지혜도 원만 우리 자비를 좀 베푼다고 해서 자비심이 줄어지지가 않습니다. 우리 지혜를 너무 많이 쓴다고 해서 우리 몸이 피로하지도 않는 것입니다.
가사 우리가 먹는 음식도 이 욕계 중생이 몇 칼로리를 먹어야 한다. 지방질을 얼마나 먹어야 한다. 그러는 것이지 색계 이상 올라가면 사실은 음식도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생명 자체의 생활이란 말입니다. 음식 그런 것에 대해서도 너무 관심을 두지 말으십시요. 설사 진여불성이라 하는 우리 생명 자리에다 우리 생명을 온전히 하나가 되게 시리 하는 그런 공부를 한다고 생각할 때는 음식 같은 것은 별로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화두나 염불이나 기도나 모두가 그런 공부가 아니겠습니까. 우리가 기도를 한다 하더라도 부처님은 저기가 계신다. 우리가 기도를 모시면 나한테 와서 돕는다. 그런 것은 세간적인 기도법입니다. 부처님 법은 그런 기도법이 아닙니다. 부처와 나와 둘이 아니고, 천지가 나와 더불어서 둘이 아니다. 이렇게 생각하고 하셔야 참다운 가피를 받습니다.
아무튼 우리가 음식이나 그런 것도 마땅히 검소하게 자실수록 우리 몸은 훨썩 좋은 것입니다. 꼭 명심해 두십시오. 고기를 꼭 먹어야만이 살이 되고 피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 생명은 생명 자체 스스로 지탱하는 것입니다.
저 월남 트리캉승, 그분은 반체제 운동을 하신 스님인데 옥중에서 100일 동안 물만 먹고서 조석 염불 아침에 2시간 밤에 2시간, 4시간씩 조석 염불을 그렇게 하면서도 백일 동안 물만 먹고 지냈습니다. 그리고 지금 살아 있습니다.
그것은 극단적인 예로 우리가 극단적인 고행을 할 필요는 없습니다마는 아무튼 우리 몸이라 하는 것도 역시 일체가 마음이기 때문에 우리 몸도 역시 마음의 반영인 것입니다. 우리가 지은 업장 따라서 이와 같은 몸을 받았습니다. 따라서 우리 마음이 청정하면 우리 몸도 그냥 즉시 반사작용으로 우리 몸도 청정해 옵니다.
병도 꼭 약을 먹어야 만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우선은 필요에 따라서 약을 좀 먹어도 무방하겠지마는 사실은 우리 마음이 우리 몸의 병을 꼭 낫을 수 있습니다. 인도의 이른바 신지학神智學 이런 것은 심리요법 정신요법으로 우리 병을 낫는단 말입니다. 그런 법도 모두가 인간성의 무량무변한 공덕을 역설하고 발효한데서 되는 것입니다. 정말로 부처와 나와 더불어서 일체가 호리 차이가 없는 하나입니다.
* 무주란 씨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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