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7. 염불(念佛)은 무엇인가? 염불은 생각 념(念)자, 부처 불(佛)자 문자 그대로 우리가 부처를 생각하는 것입니다. 부처가 무엇인가? 부처가 어디 밖에 따로 있는 것인가? 제가 누누이 말씀드린 바와 같이 천지우주가 바로 부처란 말입니다. 우주의 생명이 바로 부처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처란 말 가운데는 모두가 다 들어 있습니다. 그렇게 볼 때는 화두도 일체가 다 들어 있는 생명 자체이고, 부처도 모두가 다 들어 있는 생명 자체이고, 이렇게 생각할 때는 표현만 다른 것이지 결국은 둘이 아닙니다. 둘이 아닌데 사람들이 굳이 둘이라고 생각을 한단 말입니다.
둘이 아니기 때문에 운서주굉(雲捿狲宏 : 1536 - 1615) 스님이나 서산(西山 : 1520 - 1604) 스님이나 보조(普照 : 1158 - 1210) 스님이나 다 같다고 말씀했습니다. 다만 근기에 따라서 그때그때 우리가 참선을 하면 되는 것이고, 또는 화두도 했다가 염불도 했다가 해도 그때는 -이렇게 이해하고 확신을 할 때는- 무방합니다. 같다고 생각하면 그때는 무방합니다. 그러나 같지 않다고 생각하면 그때는 문제가 되겠지요. 그럼 부처는 무엇인가?
부처는 지금까지 누누이 말씀드린 바와 같이 바로 생명의 본체, 바로 우주의 생명인데, 그러면 우주의 생명은 어떻게 생긴 것인가? 우리 중생이 볼 수가 없는 것입니다. 부처라는 것은 본래적으로 자취가 있는 것도 아닌 것이고 모양이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이름도 없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 중생이 볼 수가 없습니다. 다만 생명으로 해서 모든 생명의 본질이 되어 있을 뿐입니다. 그러나 다만 그 자리는 그냥 생명이 아니라 모든 능력을 갖춘 하나의 광명(光明)입니다. 광명도 태양같이 그런 눈부신 광명이 아니라 물질이 아닌 생명의 광명입니다.
우리는 이 광명이라는 것을 깊이깊이 생각을 하셔야 하는 것입니다. 사실은 지금 물질도 바로 광명인 것입니다. 전자(電子)나 양성자(陽性子)나 중성자(中性子)나 모두가 다 방사광선(放射光線)입니다. 또 지금 물질을 분석 하고 분석하고 해서 가장 작게 한 것이 이른바 광자(光子)라, 빛 광(光)자 광자란 말입니다. 물질을 분석하고 분석해서 더 분석할 수 없는 가장 미세한, 물질인가 아닌가도 모를 정도 말입니다. 이른바 공간성도 없는 그런 것이 광자(光子)인데, 왜 광자가 되었는가? 바로 그것이 빛이니까 광자라고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지금 물리학적으로 본다 하더라도 우주는 지금 광명(光明)이 꽉 차 있는 것입니다. 지금 물리학자는 아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이 보고 안보고 상관없이 가장 정밀한 물리학적으로 본다고 생각할 때에 우주는 지금 내 몸 가운데나 흙 가운데나 똥 가운데나 금(金) 가운데나 모두가 다 그야말로 광명이 지금 꽉 차 있는 것입니다. 그 광자 이것은 진동(振動)도 없고, 또 이것은 공간성(空間性)이 없습니다. 질량도 영입니다. 질량이 영이고 진동이 없으니 물질인가 물질이 아닌가 알 수 없는 정도입니다.
화엄경(華嚴經)을 보나 법화경(法華經)을 보나 여러분들이 잘 봐 보십시오.
그 광명이란 말씀이 얼마나 많은가. 부처님의 입에서 나오는 광명이 삼천대선세계를 돌아서 우주를 다 비추고서 나중에는 그냥 부처님의 정수리로 쑥 들어간다, 이런 법문이 있습니다. 부처님의 광명이 1만 8천세계를 다 비춘다. 이것이 바로 우주를 다 비춘다는 뜻입니다. 우리 생명의 근본은 바로 우리 인간이 알 수 없는 부처님의 진여불성의 광명인 것입니다.
그냥 아무렇게나 있는 것이 아니라 만공덕(萬功德)을 갖춘 빛입니다. 그런 것이기 때문에 거기서 원자력(原子力)이 나오고 여러 가지 것이 다 나온단 말입니다. 수소폭탄이 나오는 그런 것이라든지 또 그 무시무시한 힘들이 모두가 다 그 가운데서 나오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닦고 닦아서 우리 스스로가 마음의 근본 자리인 부처가 된다고 생각할 때에 숙명통(宿命通)이라, 과거를 다 훤히 보고, 또 천안통(天眼通)이라, 미래를 다 훤히 보고, 타심통(他心通)이라, 남의 마음을 다 훤히 보고, 또 신여의통(身如意通)이라, 자기 몸을 자기 마음대로 할 수가 있고, 또 천이통(天耳通)이라, 우주의 음성을 다 알고 다 해석할 수가 있고, 또 누진통(漏盡通)이라, 모든 번뇌를 따 끊어 버리고 영생해탈(永生解脫)의 길로 들어갈 수 있는 그런 신통을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삼명육통(三明六通) 이것은 우리 자성공덕(自性功德)입니다. 아함경(阿含經)과 같은 근본 경전을 보십시오. 이런 구절이 수십 수백 군데 있습니다.
* 8월의 하늘수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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