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칠전 틈을 내여서 태안사를 다녀왔습니다.
통일신라시대에 창건한 태안사는 저에게는 마음의 고향입니다. 2십여 년 7월의 따가운 햇볕을 피해 개울 따라 하늘이 안 보이는 3K의 긴 숲의 터널 걸어 올라가 세속의 거친 망상이 다 정리하고 삭발염의(削髮染衣)한 출가본사입니다.
1. 마을에서 태안사로 올라가는 길은 아직도 비포장이고 개울은 아직도 여여하고 반가웠습니다. 이 돌무더기도 변함없이 자리를 지켜주고 있네요.
2. 연못에서 바라본 태안사 정경 연못도 아직 여여하고 다만 수많은 잉어는 간 곳이 없고 멀리 재가 불자님들이 안거를 보내던 정중선원은 보이질 않네요. 아마 정중선원이 벽돌 2층집이라 전통사찰에 어울리지 않아 철거한 모양입니다.
3. 일주문. 동리산태안사 글씨가 문외한이지만 명필임을 알 수가 있지요.
4. 부도군 작으면서도 정감이가지요. 태안사가 옛 부터 큰 절이었는데, 고려시대 때 송광사가 커지면서 송광사에 눌렸다고 합니다. 늘 부도탑을 보면서 느끼는 감정은 옛 어른스님들의 그리움입니다.
* 고려초 태안사를 중창한 광자대사(廣慈大師) 부도탑(광종원년950년)
5. 대웅전 법당 6.25때 태안사는 다 불타고 큰스님시절 불사한 법당입니다 제가 행자 시작하는 날부터 이 법당불사를 시작했습니다.
6. 멀리서 본 후원 큰방 이 곳이 행자의 주 무대니 감회가 깊습니다.
7. 보제루 목어 예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아마 사물은 다 불타고 목어 하나만 건진 것 같습니다.
8. 보제루 이곳에서 큰스님께서 법문하시던 곳인데 마당을 가득 채우던 사람들은 모두 간 곳이 없고 아 잠시 예전의 큰스님의 사자후를 생각합니다.
9. 마당의 수각.
10. 큰방 공식이름 해회당.
11. 태안사시절 구 선방 선방이라 불렸습니다. 큰스님께서 이곳에서 3년 결사를 하시였다고 합니다. 들리는 말에는 일제 강점기 선원에 아주 훌륭한 조실스님이 계시였다고 합니다.
12. 적인선사조륜청정탑(寂忍禪師照輪淸淨塔) 신라 구산선문의 하나인 태안사를 창건한 적인선사 해철스님의 사리를 모셔 논 부도 탑입니다. 조성한 이의 지극한 정성이 깃들었기에 천년이 지난 지금도 여여히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13. 예전 큰스님 토굴입구 석간수
큰스님의 태안사시절 동안거를 혼자 토굴에서 지내시는데, 백일 동안 총 드신 음식물이 보리미수가루 차 수저로 몇 수저 동짓날 동지 팥죽 한 그릇 이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아침에 꼭 이 석간수를 마시려 나오시었는데 사부대중들은 멀리서 큰스님을 뵙고 안심했다고 합니다. 아 깊은 삼매가 아니면 흉내도 못내는 것입니다.
14. 예전 큰스님 토굴 올라가는 길
15. 아 이곳에서 늘 선정에 드시면서 중생을 제도하시던 토굴
16. 세월이 흘러 태안사도 중창불사를 하여 건물들이 많이 들어섰고 선원은 아직도 운영하고 있습니다.
태안사 참 좋은 절입니다.
* 태안사(泰安寺)는 전라남도 문화재자료 제23호로 신라 경덕왕 원년(724)에 동리산파를 일으켜 세웠던 혜철스님이 세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처음에는 대안사로 불렸으며 한국 불교의 구산선문 중 하나인 동리산파의 본산지이다. 선암사·송광사·화엄사·쌍계사 등을 거느려 꽤 오랫동안 영화를 누렸던 사찰로 혜철선사와 도선국사가 득도한 정양 수도의 도량이다. 고려시대에 들어와서 광자선사가 32칸으로 넓혀지었으나 고려 중기에 송광사가 조계종의 본산지로 지위를 굳혀 따로 분리되었고, 조선시대에는 효령대군이 머물며 왕가의 온당으로 삼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