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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독!경전,법문자료/4. 인광대사의 가언록

6.정성(誠)과 광명(明)은 모든 종교 수행의 공통분모 (2)

印光 大師 嘉言錄 6

 

정성(誠)과 광명(明)은 모든 종교 수행의 공통분모 (2)

 

 

글: 보적(寶積) 김지수 옮김

 

 

가령 자기 마음에 본래 존재하는 진실한 지혜가 무명(無明)의 물욕(物欲)에 뒤덮여 가려진다면, 뜻이 정성스럽지 못하고 마음이 바르지 못하게 되오.

 

이때 만약 물욕을 쳐서 없앤다면, 바로 '지혜의 바람이 업장의 구름을 깨끗이 쓸어 없애버리고, 마음의 달이 홀로 둥그렇게 하늘 가운데 낭랑하다(慧風掃蕩障雲盡 心月孤圓朗中天)'는 시의 경지가 될 것이오.

 

이처럼 성인은 사람들에게 광범한 것으로부터 절실한 것에 이르고, 소원한 데서부터 친밀한 데에 이르는 단계적인 순서를 보여 주셨소.

 

만약 천하 사물의 이치를 모두 궁구해서 내 마음이 이러한 것들을 다 지식으로 명료하게 안 다음에야 비로소 '성의'라고 할 수 있다면, 오직 많은 책을 두루 읽어 박학다식한 사람(걸어 다니는 사전)만 '성의'에 해당할 것이오. 또 만약 천하를 두루 유람한 사람이라야 뜻을 정성스럽게 하고 마음을 바르게 하여 명덕을 밝힐 수 있다면 세상을 두루 다니며 견문을 얻을 수 없는 사람들은 설령 순수하고 돈후한 천상(天上)의 자질과 인품을 타고 났다고 할지라도 그 대열에 전혀 낄 수 없게 될 것이오. 하물며 타고난 성품이 순후하지도 못한 보통 중생들이야 말할 것이 있겠소! 이러한 이치가 도대체 어디에 있단 말이오?

 

그런데 이치를 깊이 궁구하지 않은 선비들이나 무식한 사람들은 도리와 천성(天性)을 들으면, 대부분 이를 성인의 경지로 높이 밀어 올리고 자신은 평범하고 우매하다고 자처하면서, 스스로 분발하거나 노력하려고 하지를 않고 인습(因襲)에 끌려 마지못해 따라가는 정도라오.

 

그렇지만 만약 이들에게 과거 현재 미래 삼세(三世)의 인과법칙을 알려주면 사람이 어떻겠소? 선하거나 악하거나 간에 자기 마음과 언행에 따라서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나듯이 그 보답을 받는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면, 누구라도 악의 과실이 두려워 악의 인연을 끊고 선한 인연을 닦아 선한 과보를 바랄 것이오.

 

무릇 선악이란 크게 몸의 행동(身), 입에서 나오는 말(口), 마음 속의 생각(意) 이 세가지를 벗어나지 않소. 이미 이러한 인과를 알았다면, 스스로 몸과 입을 잘 보호하고 방어하며, 마음을 닦고 생각을 씻어낼 수 있소.

 

비록 캄캄한 방안이나 깊숙한 구석에 혼자 있다고 할지라도, 항상 천상 하느님(帝天)을 대면하듯이 공경하며, 감히 사악하고 비열한 마음이 싹터 죄와 허물을 저지르는 일이 없게 될 것이오.

 

이것이 바로 크게 깨달은 세존(世尊)께서 상중하 근기의 모든 중생에게 두루 진리를 궁구하고 뜻을 정성스럽게 하며 마음을 바르게 하고 몸을 닦도록 가르치신 대도(大道)요, 정법(正法)이오.

 

그러나 미치광이들은 그 구속(부담)을 두려워하여 인과응보를 가상(假相)의 집착이라고 생각하며, 어리석은 자는 자기의 추하고 부끄러운 것을 방어하려고 인과응보가 아득하거나 허망하다고 말하는구려. 이러한 두 부류 사람을 제외하면 누가 자연의 인과응보 법칙을 믿고 받아들이지 않겠소?

 

그래서 몽동 선사[夢東禪師 : 일명 철오 선사(徹悟禪師). 청(淸)나라 건륭(乾隆: 1736-1795 재위, 가경(嘉慶:1795-1820 재위) 연간에 법문(法門)제일의 스님. 본래 선가(禪家)의 거장이었는데, 세상을 구제하려는 광대한 서원(誓願)으로 염불정토종(念佛淨土宗)을 힘써 전파함. 만년에 북경 부근 자복사(資福寺)에 은거하면서 염불(念佛) 기풍을 크게 진작시켜, 최근까지 황하 이북 제일의 염불도량이라는 법맥(法脈)을 유지함.「徹悟禪師語錄」이 전해짐.]는 일찍이, "마음과 성품을 즐겨 말하는 자는 결코 인과를 버리거나 이탈하지는 않으며, 또 거꾸로 인과법칙을 깊이 믿고 행하는 사람은 끝내는 인간의 본래 선한 심성을 크게 밝힐 것이다." 라고 설법하셨소.

 

이는 이치로 보나 대세로 보나 반드시 그러할 수밖에는 없소. 무릇 범부의 지위로부터 성인이나 부처의 공과(功課)를 원만히 증득(證得)하기에 이르기 까지 모두 인과응보의 법칙에서 벗어나지 않음을 꼭 알아야 하오.

 

이러한 인과를 믿지 않는 자는 스스로 그 선한 원인과 선한 결과를 포기함으로써, 항상 악한 원인만 짓고 악의 과보를 받을 것이오. 그러면서 티끌처럼 수많은 무량겁이 다 지나도 삼악도(三惡道 : 지옥, 축생, 아귀)만을 계속 윤회할 뿐, 그 윤회의 수레바퀴에서 벗어날 길이 없게 되오.

 

슬프오! 성현들의 천만 마디 말씀이 모두 사람들에게 자기 마음을 반성하고 잡념망상을 극복하도록 가르치지 않음이 없소. 성현은 우리 마음에 본래 갖추고 있는 명덕(明德)이 악의 수렁텅이에 빠져서 매몰되지 않고, 우리가 친히 그것을 받아서 쓸 수 있도록 인도할 따름이오.

 

다만 사람들이 인과응보의 원리를 모르는 까닭에 늘상 뜻과 감정을 제멋대로 방종하니, 설령 평생토록 글을 읽는다고 할지라도 단지 자구와 문장만 배울 뿐이라오. 이들은 성현의 위대함을 희망하고 본받을 목표가 없는 것이며, 그로 말미암아 눈앞에서 일생을 허송세월하고 말 것이오. 어찌 안타깝지 않겠소?

 

그러나 보통 사람들이 이에 따라 심성을 함양 · 수행하도록 만들려면 모름지기 일정한 모범이 있어야 비로소 유익하게 되오. 사서오경(四書五經)과 같은 고전이 모두 그러한 모범이지만, 그러한 모범은 문자가 너무 방대하고 또한 여러 서적에 널리 흩어져 있소.

그래서 체계있게 분류 · 편집하지 않으면 법도로 삼기가 자못 어렵고, 또한 글을 많이 공부하지 않은 사람들은 더더욱 전형적인 모범으로 받들어 행할 방법이 없소. 그러한 모범으로 삼을 만한 대표적인 글로「요범사훈(了凡四訓)」과「태상감응편(太上感應篇)」이 있소.

 

원료범 선생이 자식을 훈계하기 위해서 지은 네 편의 「요범사훈」은 문장과 사리(事理)가 모두 유창하여 우리 마음의 눈[心眼]을 확 틔워 주오. 그래서 이 글을 읽다 보면 저절로 기뻐서 흥이 나고 마음에 법열(法悅)이 솟아 오르게 되지요. 그리하여 아주 빨리 이것을 법(法)으로 삼으려는 소망이 절로 생기나니, 이는 진실로 세상을 선하게 맑혀 주는 훌륭한 모범이오.

 

「태상감응편(太上感應篇)」은 길함을 맞이하고 흉함을 피하며, 선에게 복을 주고 악에게 화를 내리는 지극한 진리를 핵심요체만 간추려 모아, 하늘을 밀쳐 올리고 땅을 움직이며 눈을 비비게 하고 마음을 놀라게 하는 문장이오.

 

무엇이 선이고 무엇이 악이며, 선을 행하면 어떤 선한 보답을 받고 악을 행하면 어떤 악한 보답을 얻는지. 그 근원을 모두 파헤쳐 명약관화(明若觀火)하게 밝히고 있소. 무릇 어리석은 사람이 선을 행하지 않고 제멋대로 악을 저지르는 것은 대개 사리사욕의 이기심에 따라 움직이기 때문이오.

 

그런데 지금 사리사욕으로 도리어 큰 이익을 잃고 커다란 재앙만 얻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누가 감히 선행을 실천하여 화가 소멸되고 복이 모여 들기를 바라지 않겠소?

이렇게 본다면 「태상감응편(太上感應篇)」이 인간에게 끼치는 이익은 정말 막대하오.

그래서 옛날 대선비[大儒]들은 이 글에 따라 묵묵히 수양하는 자가 많았소. 청(淸)나라 때 장주(長洲)의 팽응지(彭凝祉)는 어려서부터 이 글을 봉행하여 마침내 진사(進士) 시험에 장원(壯元) 급제하고 전찬(殿撰 : 翰林院修撰)에 임명되는 영예를 안았소.

 

그는 관직이 상서(尙書 : 六曹의 장관)에 오른 뒤에도 여전히 매일 이 글을 봉독하면서 손수 붓으로 써서 다른 사람들에게도 증정하곤 하였는데, "장원이나 재상이 되는 자는 반드시 이 글을 읽는다."는 표제를 달았다오.

 

그리고 이 표제를 해석해주기를, "이 글을 읽으면 곧 반드시 장원이나 재상이 된다는 말이 아니라, 장원이나 재상이 되려는 자는 결코 이 글을 읽지 않을 수 없다는 의미이다."고 부연했소.

 

그가 발휘한 정신은 정말 지극히 철저했는데, 과연 인애와 지혜도 각기 그 사람의 성질에 따라서 드러나기 마련인가 보오.

 

이 글은 궁극에는 신선(神仙)이 되는 데 멈추오. 만약 대보리심(大菩提心 : 大道正覺을 추구하는 마음)을 가지고 이를 실행한다면 충분히 평범을 초월하여 성현의 경지에 들어가(超凡入聖) 생사를 해탈하고, 3대 미혹(迷惑 : 번뇌. 첫째 邪見과 탐진치의 見思惑, 둘째 보살이 중생교화시 봉착하는 塵沙惑, 셋째 根本無明惑)을 끊어 법신(法身 : 영구불변의 진리의 몸)을 증득하며, 복과 지혜를 원만히 겸비하여 불도(佛道)를 성취 할 것이니, 하물며 구구하게 신선이 되어 인간이나 천상의 조그만 과보를 누리는 데 비하겠소?

 

화와 복은 오직 사람 스스로 불러들이는 것이고, 선과 악에는 각각 보답과 감응이 따른다는 인과법칙을 안다면, 누가 감히 죄악을 저질러 화를 초래하려고 들겠소? 이러한 기풍이 한번 진작되어 선행에 선의 보답이 내려 진다면, 예절과 양보가 흥성하고 총칼의 전쟁혼란이 영원히 종식되며, 백성이 안락하고 천하가 태평스러워질 것이오.

 

원컨대, 재력(財力)이나 지력(智力)이 있는 사람들은 더러 이러한 글들을 널리 유통시키거나 강의하여 현신설법(現身說法)함으로써, 타고난 본성을 아직 잃어버리지 않은 자들은 더욱 순수하고 천진해지며, 타고난 본성을 이미 상실한 자는 한시바삐 그 처음 천성을 회복할 수 있도록 이끌어 주고 건져주길 바라오. 그렇게 한다면, 그 공덕을 어찌 말로 다할 수 있겠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