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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독!경전,법문자료/3. 수행자료

구생행문요출(求生行門要出)

  구생행문요출(求生行門要出)


 구생행문이란 무엇인가. 염불에는 다섯 문이 있고 수행에는 네 가지 법이 있으니, 이승의 깨끗한 업이 익으려 하면 극락의 붉은 연꽃이 벌써 난다는 것이다.

 대개 날카롭고 둔한 근기를 관찰하여 돈점(頓漸)의 교법을 널리 설명하였다. 그러나 처음에는 제 역량(力量)을 따라 수행하고 제 공부를 헤아려야 한다.

 한가한 때를 타고 고요한 곳을 잡아, 혹은 구품(九品)의 법칙을 따르고 혹은 삼배(三輩; 수행과 소질을 상중하로 나눈 것)의 법규에 의하며, 좋은 인연이 있으면 단체를 만들고 훌륭한 벗이 없으면 외로이 닦되, 반드시 동지를 구하라.

 

 불경을 깊이 연구하고 사람들과 실없이 세상일을 이야기하지 말며, 다만 속인의 일들을 끊고 티끌 인연을 물리치며, 실없는 일을 말하지 말고 때가 아니면 나아가지 말라.

 베옷 입고 나물밥 먹으며, 계율을 지니고 재(齋)를 가지며, 행과 원을 서방(西方)의 일에 회향하고 오로지 저오를 위해 이치를 닦으라. 이 법에 의하면 결정코 왕생할 것이다. 염부제의 정진이 많지 않을 때라도 한량없는 겁을 극락에서 소요하리라. 그러므로 원(願)만 있고 행이 없으면 그 원은 반드시 헛될 것이요, 행만 있고 원이 없으면 그 행은 반드시 외로울 것이다. 행과 원이 서로 걸맞고 복과 지혜가 서로 도와야, 반드시 왕생하여 거룩한 도를 빨리 얻을 것이다.

 천친론(天親論)에

 “사수법(四修法)을 관행(觀行)하고 삼심(三心)과 오념(五念)의 행을 써야 빨리 왕생할 수 있다.”

 하였다. 그 넷이란, 첫째는 공경수(恭敬修)이니 부처님과 성중(聖衆)들을 공경하고 예배하므로 공경수라 한다. 목숨을 마치기를 기약하고 그 서원을 중단하지 않으면 그것이 곧 상시수(常時修)이다.

 준감로소(准甘露疏)에,

 

 “공경수에 다시 다섯 가지가 있다. 첫째는 인연이 있는 성인을 공경하는 것으로서, 다니거나 서거나 앉거나 눕거나 또 더러운 용변 등에 있어서도 서방을 보호하는 것이다. 둘째는 인연이 있는 불상과 교법을 공경하는 것으로서, 미타불의 형상을 모시고 그 가르침을 지니는 것이다. 셋째는 인연이 있는 스승과 벗을 공경하는 것으로서, 친근한 이를 공경하는 것이다. 넷째는 같이 배우는 이를 공경하는 것으로서, 깨끗한 업을 함께 닦는 이들이 서로 권하여 이롭게 하는 것이다. 다섯째는 삼보(三寶)를 항상 공경하는 것이니, 그것은 훌륭한 인연을 내기 때문이다.”

 이렇게 공경하는 수행에 마음을 매고 생각을 쏟으면 아미타불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문수반야(文殊般若)에서는 이렇게 말하였다. 즉,

 “일행삼매(一行三昧)를 밝히려면, 고요한 곳에 혼자 있으면서 온갖 어지러운 뜻을 없애버리고, 한 부처님께 마음을 매어야 한다. 그러나 그 형상은 관하지 말고 오로지 이름만 부르면, 염불하는 동안에 아미타불과 일체의 부처님을 볼 수 있을 것이다.” 하였다.


 물음 “왜 모양은 관하지 말고 오로지 이름만 부르라 합니까.”

 답 “중생들은 업장이 두텁기 때문에 관을 성취하기 어렵다. 그러므로 성인은 그들을 가엾이 여겨 오로지 이름만 부르게 하신 것이니, 이름을 부르기는 쉽기 때문에 계속하면 왕생할 수 있는 것이다.”


 물음 “한 부처님의 이름만 부르는데 어떻게 여러 부처님이 나타나십니까. 그것은 사정(邪正)이 서로 섞이고 일다(一多)가 친히 나타나는 것이 아닙니까.”

 답 “모든 부처님의 큰 자비심은 평등하고 미타불의 원력은 깊기 때문이다.”


 물음 “모든 부처님은 다 같이 삼신(三身)을 증득하여 지혜의 결과가 원만하므로 그 감응도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느 방위에라도 예배하고 생각하면서 한 부처님만 부르면 왕생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왜 서방만을 찬송하고 오로지 예배하며 생각해야 하는 것입니까. 거기에는 어떤 이치가 있습니까?”

 

 답 “모든 부처님의 증득한 이치는 평등하여 오직 하나이다. 그러나 행과 원을 따라와서 거들어 주심에는 인연이 없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 아미타불은 본래 깊고 무거운 서원을 세워 ‘원컨대 이 광명과 이름으로써, 방편으로 시방세계에 몸을 나타내리니, 다만 중생들로 하여금 진심으로 구하고 생각하되, 크게는 몸을 버리고 작게는 열 소리나 한 소리에 이르기까지……’라 하였다. 이 부처님의 원력으로 쉽게 왕생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석가 부처님이나 모든 부처님이 서방을 향하라고 권하여 구별한 것뿐이요, 다른 부처님을 부르고 생각하면 업장과 죄를 없애지 못한다는 말은 아니다.

 재계(齋戒)하고 미타불과 관음․세지(勢至)의 두 보살을 관하고 생각하면, 그 몸은 정토에 나 연화대에 앉으리라.

 

 십륙관경(十六觀經)에는 이렇게 말하였다. 즉 그 경의 수지법문(修持法門)에 간략히 말하기를,

 ‘재계하여 몸을 조촐히 한 뒤에 맑은 마음과 깨끗한 생각으로 서방을 향해 편안히 앉아, 눈을 감고 잠자코 관하되 <아미타불의 순금의 색신은 서방의 칠보(七寶)로 된 못 가운데 있는 큰 연꽃 위에 앉아 계시는데, 키는 십륙 척이요 두 눈썹 사이의 조금 위에 오른쪽으로 감긴 흰 털이 있어서 광명은 번쩍이며, 그 몸은 자금색(紫金色)이다>

 이렇게 그 흰 털에 마음을 두고 생각을 쏟아, 함부로 털끝만큼의 다른 생각을 내지 말고, 눈을 감거나 눈을 뜨거나 항상 보이게 한다. 그것은 생각 생각에 잊지 않으려 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오래 계속하면, 생각하는 마음이 성숙하여 자연히 감응되어 부처님의 전신을 보게 될 것이다.

 이 법이 최상이니, 이른바 마음으로 부처님을 생각할 때에 <이 마음이 곧 부처다>하면, 그것은 입으로 염불하는 것보다 낫다.

 

 다음에는 관세음보살을 관하고 생각하되 <몸은 자금색이요 손에는 흰 연꽃을 들었으며, 그 천관(天冠) 가운데에는 서 있는 한 분의 화불(化佛)이 있다>하고, 다음에는 대세지 보살을 관하고 생각하되, <몸은 자금색이요 그 천관과 살상투 위에는 보배 병이 하나 있다>하며, 다음에는 <제 몸이 서방의 극락세계에 나서, 연꽃 속에서 가부좌하고 앉았는데, 연꽃이 오무라졌다 펴졌다 하며 부처님과 보살이 허공에 가득하다>고 생각한다.’

 하였다. 또 달마 스님은,

 ‘염불이란 무엇인가. 생각함이란 기억하는 것으로서, 계행을 기억해 지니고 정근하기를 잊지 않는 것이며, 부처란 깨달음으로써 몸과 마음을 살펴 악이 일어나지 않게 하는 것이다.’

 하고, 또,

 ‘입에 있으면 외운다 하고 마음에 있으면 생각한다 하나니, 한갓 외우기만 하고 생각하기를 버리면 도에 무슨 이익이 있겠는가’ 하였다.”


 이상의 구생법문은 모두 대참문(大懺文)에 있는 것으로서 간추려 낼 필요가 없겠지마는, 문장의 힘이 약하고 식견이 옅은 사람들은 그 광대한 법문에서 종지를 얻지 못하겠기에, 지금 구생의 요령만을 간략히 추려내어, 업을 깨끗이 하려는 사람들에게 보이는 것이니, 몇 번이고 되풀이해 읽고 조급히 서두르지 말아야 할 것이다.

 대저 염불하는 이는 삼업이 청정해야 한다. 삼업이란 이른바 몸과 입과 뜻의 업이다. 몸을 단정히 하고 바로 앉아 부처님을 뵈옵듯 하는 것을 몸의 업을 깨끗이 하는 것이라 하고, 입에는 잡된 말이 없어 온갖 희롱과 웃음을 끊는 것을 입의 업을 깨끗이 하는 것이라 하며, 뜻에는 망상을 끊고 온갖 반연을 쉬는 것을 뜻의 업을 깨끗이 하는 것이라 한다.

 

 이렇게 날마다 때마다 항상 깨끗이 한 뒤에, 부처님의 이름을 생각하면 왕생할 자격이 조금 있겠지마는 만일 이상에 어긋나면 틀림없이 왕생하기 어려울 것이다.

 목우자 가로되,

 “요즈음 간간이 보리의 마음에서 물러나 덕이 없는 이들은 오로지 부처님의 계율을 의지하지 않고 삼업을 단속하지 않아 방종하고 게으르며, 남을 업신여기고 시비를 따지는 것으로 근본을 삼아 <어떤 일에도 장애됨이 없다>고 하는 이들이 바로 이런 무리들이다.”


 원컨대 이 공덕이 일체 중생들에게 두루 미치어, 장차 극락세계에 나서 아미타 부처님을 같이 뵈옵고, 모두 불도를 이루어지이다.

 또 원컨대 이것을 보고 듣고 따라서 기뻐하는 이들도, 다같이 정토에 왕생하여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