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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청화 큰스님 서적/6. 정통선의 향훈

'참나' 존엄(尊嚴) 깨우쳐야 바른 人生

'참나' 존엄(尊嚴) 깨우쳐야 바른 人生


부처님 오신 날 '바른 삶' 말하는 선승 청화스님

부처님 오신 날을 맞아 우리 시대의 우뚝한 선승(禪僧) 청화(淸華)스님(71)을 만난다. 불문에 든지 46년을 산중선방에서 수행에만 힘쓰며 통불교(通佛敎)의 큰 뜻을 설파해 한국불교의 주봉(主峰)을 세운 청화스님, 그는 눕지 않고 앉아서 좌선하는 장좌불와(長坐不臥)의 수행법과 묵언수도에 정진하며 46년간 줄곧 하루 한 끼 만을 고수한 채 참선수행을 해와 청빈한 선법 수행체계를 이룬 독보적 존재로 알려져 있다.

부처님 오신 날을 하루 앞두고 청화스님을 찾아가 어떻게 사는 삶이 바른 삶인지 말씀을 들어본다.

                             - 편집자 주 -



만유(萬有) 참모습 못 보고 탐욕(貪慾) 집착하면

결국 파멸의 구렁



<기자> 큰스님이 성륜사(聖輪寺)에 계신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왔습니다. 올해로 2573년째 부처님  오신 날을 또 맞습니다. 광주매일(光州每日) 독자들에게 부처님의 말씀을 좀 나누어 주십시오.


진정한 개혁「너와 나」 하나 될 때 가능,

사회 청정락토(淸淨樂土)로 가꾸면 악(惡) 단절돼 


<큰스님> 부처님의 가르침은 본래 나와 남이 없고 천지와 더불어 하나의 생명인 부처님이 되는 길이니 서로 다투고 겨룰 상대가 없으며 탐욕과 분노가 일어날 까닭이 없습니다. 석가모니 부처님이 오셨기에 인간은 비로소 억겁으로 쌓인 무명과 번뇌를 벗고 참다운 인간이 되는 길을 알게 됐습니다. 진리라는 것을 발견했지요. 부처님이 몸소 실행하신 것처럼 불교의 본질은 무엇보다도 스스로의 깨달음에 있습니다. 인생의 본래 모습인 '참 나' 를 깨닫게 되면 누구나 삶의 본질인 불성에 이를 수 있답니다.


<기자> 요즘 세상이 아주 숨 가쁘게 돌아가고 있습니다. '변화' 와 '개혁'이라는 말은 이제 유행어가 되다시피 했습니다. 큰스님께서는 요즘 세상을 어떻게 보고 계십니까?


<큰스님> 부정부패는 어느 시대에나 있었지요. 특히 최근에는 더욱 심했지요. '개혁' 은 어느 시대에나 강도의 차이는 있지만 있어왔고 꼭 필요한 것입니다. 그러나 진정한 개혁이 되기 위해서는 개혁안에 '희망'이 들어 있어야 합니다. 개혁주체와 대상을 둘로 나누어 한쪽이 다른 쪽을 파멸해 버리는 이분법적 방식으로 가면 안 되겠지요.


누구에게나 다 허물은 있는 것이며 개혁이 필요한 세상자체가 허물인 것입니다. 개인이나 특정집단은 다 그 속에 있는 존재들에 불과합니다.


단죄를 할 때에도 겸허하게 해야 하며 모두를 함께 반성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세상이 맑아지고 깨끗해지는 쪽으로 가야지요. 부정부패의 허물을 들춰내서 벌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와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이 사회자체를 청청하게 낙토로 가꾸어서 사람들이 희망을 가지고 더불어 잘 살 수 있게 만들어야지요.


<기자> 큰스님께서는 눕지 않고 앉아서 잠을 자며 좌선하는 '장좌불와(長坐不臥)' 의 수행법과 46년간을 줄곧 하루 한 끼 공양(식사)만을 고수한 채 철저한 고행의 참선수행을 해 오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큰스님께서 이 같은 참선수련을 통해 추구하시는 궁극적인 길은 무엇입니까?


<큰스님> 참선은 모든 현상적인 것을 떠나 본질적인 성품으로 가는 방법을 이릅니다. 이 세상은 둘이 아니고 하나이듯 세상의 진리는 오직 하나만 있습니다. 이 진리는 궁극적, 보편적, 본질적인 것이니 생명의 본질을 이룬다 하겠지요. 부처님께서도 말씀하셨지만 이 세상의 진리라는 것이 부처나 예수 공자와 같은 성인들이 나타나서 만들어 낸 것이 아닙니다. 그분들은 세상에 원래 있는 진리를 발견해서 중생에게 가르침을 주신 것이지요.


부처님 말씀에 '천상천하유아독존' 과 '일체중생개유불성'이라는 가르침이 있습니다. 천상천하유아독존이란, 인간이 지닌 '자주성' 즉 스스로 세상을 깨달아 해쳐가는 본성을 일컫는 말입니다. 일체중생개유불성은, 모든 중생은 본래 진면목으로 불성(佛性)을 지니고 있다는 뜻입니다.


결론지어 보자면 불성을 본성으로 가진 인간이 스스로 깨달음을 얻을 때 이 세계의 본질 즉 진리에 이를 수 있다고 하는 뜻입니다. 이 과정에서 스스로 진리를 깨우쳐가는 수행이 바로 참선입니다.


<기자> 최근 우리 사회는 물질적 풍요는 어느 정도 누리지만 심한 정신적 빈곤을 겪고 있는 듯합니다. 갖가지 사회악이 사회 구석구석에 베어들어 있습니다. 이 정신적, 사상적 혼란의 시대에 한국불교가 기여할 수 있다면 어떤 것이겠습니까.


<큰스님> 우리나라의 실상이 주변 강대국들 틈바구니에 끼어서 매우 어려운 시대를 살아가는 때문인 것 같습니다. 우리의 정신도 마찬가지입니다. 나와 자연을 가르는 서구적 이분법과 물질관이 정신사적 토대가 다른 우리나라에 무분별하게 들어와서 제자리를 못 찾기 때문이 아닐까요. 그러나 최근 서구에서는 자기네의 한계상황을 벗기 위해 오히려 동양사상이나 불교사상, 선, 기철학 이런 것들을 원용합니다. 이분법적, 분석적 사고방식의 한계가 드러난 것이죠.


미국(美國)의 카프라 같은 이는 신(新) 과학 운동을 통해 현대물리학과 불교적 세계관의 합일 등을 주장하곤 합니다. 우리나라 불교는 우리 민족사와 함께 하며 섞이고 하나 된 긴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풍부한 정신적 재부를 이루고 있는 셈이지요. 물질만능의 탐착에 빠져있는 현대인들에게 '참나' 가 누구인지, '자아' 가 무엇인지 가치지향적인 인생관과 진리에 이르는 길을 제시해 줄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기자> 큰스님께서는 모든 종파를 초월해서 하나로 나가자는 우리의 전통적인 통불교를 주장해 오신 것으로 아는데요.


<큰스님> 중도실상에 입각하면 회통이 됩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자체가 원통무애한 모든 것을 종합지향한 것으로 마땅히 종파성을 지양한 원통불교를 이끌어내야 합니다. 예부터 정통조사라고 하는 분들은 다 치우침이 없었습니다.


재가불자는 어렵고 출가불자도 쉬운 일이 아니겠지만 앞으로 불성의 체험에다 역점을 두어 정진한다면 원통불교도 이루어질 것입니다. 특히 불성을 체험하려면 철저한 계율이 뒤따라야 합니다.


더 나아가 하느님이든 알라신이든 부처님이든 관계없이 진리의 알맹이만을 통합한다면 불교인들이 갈망하는 통불교(通佛敎) 뿐만이 아니라 타종교와의 벽도 무너뜨려 통종교(通宗敎)까지도 이루어 낼 수 있다고 믿습니다. 그것이 어려운 작업이고 상당한 시간을 요한다고 하더라도 불교는 마땅히 원통적으로 나가야 합니다. 회통이 안 되면 불교는 설 땅이 없을 것입니다.


<기자> 부처님 오신 날을 맞아서 저희들같이 산문 밖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생명의 본원인 부처님을 깨닫기 위해, 우리들의 주어진 삶을 어떻게 살아야 보다 가치 있는 삶이 되겠습니까.


<큰스님> 우선, 찰나에도 부처님을 떠나지 않는 생활을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부처님을 모든 생명의 본원으로 파악하는 것과 생명의 본원에 배치되지 않는 삶을 사는 것이 중요하지요.


부처님을 떠나지 않는 삶이란 일찍이 여러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온갖 나뿐 짓을 그치고 모든 좋은 일을 봉행하라'는 가르침에 따라 사는 것을 의미합니다.


옛말에 '우주의 대도(大道)로 들어가는 길은 따로 문이 없다(大道無門)' 고 했듯이 성불을 위한 수행방법에는 헤아릴 수 없는 많은 길이 있는데 각자 자기 근기에 맞는 방법이 최선의 법문이 됩니다.


인간이 보다 더 인간다워질 수 있는 길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먼저 정견을 확립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봅니다. 즉 나와 남이 둘이 아니고 우주의 삼라만상이 평등무차별한 하나의 존재이며 유정은 물론 무정에까지 모두가 부처임을 인식한다면 정견에 이른 것이지요.


각자 자기 생명의 본원인 불성을 자각하여 부처님(大我)이 되고자 노력해야만 참된 삶을 사는 것입니다. 부처님이 되고자 노력한다는 말은 바로 우주의 도리에 부합하는 인격이 되도록 힘쓴다는 뜻이지요.




1993년 5월 28일 광주매일 게재, 안찬수(安燦洙) 기자 대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