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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통불법의 요체(55)

 

 

2절 바라밀波羅蜜과 수릉엄삼매首楞嚴三昧

 

 

1. 십바라밀十波羅蜜과 보살십지菩薩十地

 

가끔 그때그때 언급을 했습니다만 공부해 가는 과정 즉, 위차位次를 가장 권위 있게 다룬 가르침이 보살십지菩薩十地입니다. 십지에 대해서는 연각십지나 또는 성문십지 등 여러 가지가 있고 다 소중한 것이지마는 가장 권위 있는 전거典據로 삼을 법문은 화엄경에 있는 보살십지입니다.

 

보살초지에 올라갈 때는 앞서 살펴본 사선근四禪根[四加行]을 이미 닦은 정도로서 설사, 난법煖法 4선근의 법상法相은 모른다 하더라도 선근이 쌓여서 마음의 번뇌가 사라져 가면 마음이 명경지수明鏡止水와 같이 맑고 고요하게 되며 더욱 정진하여 범부凡夫의 이생성異生性을 초월하고 불성佛性을 견성하는 보살초지에 올라가는 것입니다.

 

 

처음[初地초지]에는 보살이 이미 탐심貪心3분의 2를 제하고 견혹見感을 파할 새, 견혹은 견해에 따른 번뇌요, 견도후見道後에 닦는 번뇌 습기習氣는 수혹修惑 또는 사혹思惑이라고 합니다. 따라서 견도전見道前의 범부지에서는 수행修行이라 하고 견도 후에 비로소 참다운 수도修道가 되는 것입니다.

 

비로소 성인聖人의 성품을 얻어서, 진여불성을 현관現觀하여 즉, 불성과 계합하여 아이 공한 도리를 증명하고, 내가 있다는 실아實我와 또는 법이 있다는 실법實法 , 금이요 다이아몬드요 또는 나요 너요 이런 것은 본래 실제에서 있지가 않다는 실법이 공한 도리를 증명한다는 말입니다.

 

대환희를 생하니 환희지歡喜地, 우리가 근본 성품을 깨닫고 우주와 하나로 되어버리면 한량없는 기쁨을 느끼게 되어 환희용약 하니 환희지 입니다. 동시에 일체를 구호하여, 본래 천지 우주와 하나가 되어버렸으니 나무도 내 몸이요 자기 원수도 내 몸이요 모두가 하나가 되어 자비심이 저절로 나오는 이른바 동체대비同體大悲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무주상無住相의 보시를 행하고, 자타가 없거니 상이 나올 수가 없습니다. 이것에 근거해서 열반안涅槃岸에 이를 새, 해탈의 언덕에 이른다는 뜻으로서 모든 번뇌와 일체 만사에 걸리지 않는 깨달음의 경계에 들어간다는 말입니다.

 

바라밀을, 보시바라밀을 바로 성취한다. 그전에는 보시하기 싫어도 체면 때문에 주기도 하고 위선을 여읠 수가 없었으나 나와 남이 본래 둘이 아니니 상이 없는 무주상無住相의 보시를 행한다는 것입니다.

 

2에는 나머지 일분의 탐심을 제함에 따라, 보살 초지에서는 3분의 2를 제거했지요. 따라서 보살 초지에서 견성오도를 했다하더라도 어떤 경계에 부딪치면 번뇌를 일으킬 때도 있으나 파계破戒에 이르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2二地에서는 나머지 3분의 1의 탐심의 뿌리까지를 뽑는 것입니다. 저번에 소승 4과 중 수다원須陀洹[예류과預流果]과 다음의 사다함斯陀含과까지도 탐심을 다 끊어버리지 못하고 약간 남아있기 때문에 일래과一來果, 욕계에 한번 와서 공부해 가지고 성취한다고 하였습니다.

 

일찍이 견혹見惑에 근거했던 사혹思惑[修惑]을 제하는 동시에, 사혹 즉 수혹이 분별에 근거해 있던 것이므로 이치만 통해버리면 과거 습기는 남아있을 망정 다시 새삼스럽게 번뇌를 일으킬 필요는 없겠지요. 바라밀을 성취할 새, 이미 범한 허물이라도 여윈 몸으로 하여금 사념思念이 청정하니 이구지離垢地, 파계한 허물은 보살 2지가 되어야 비로소 가시게 됩니다. 사혹을 제하여 우리 생각에 있는 습기까지도 어느 정도 끊어버려야 과거에 지었던 파계의 허물, 이미 지었던 번뇌의 때를 벗어나는 경계라는 말입니다.

 

3에는 진심嗔心을 억제하고, 진심이 뿌리가 더 깊습니다. 탐심을 다 끊어버렸다 하더라도 물론 미세한 것이지만 진심의 습기는 아직 남아있는 것입니다. 인욕忍辱바라밀을 성취하여서 체찰법인諦察法忍을 얻으니, 모든 것을 뚜렷이 본래대로 여법히 통찰할 수 있는 것을 얻어서 지혜가 현발顯發할새 발광지發光地, 우리가 천안통 같은 신통을 하려면 적어도 발광지까지 정진해야 마음대로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참선 수좌首座가 되면 한사코 발광지까지는 밀어붙여야겠지요. 우리 자성이 본래 광명인데 본전은 좀 찾아야만 합니다.

 

4에는 정진精進바라밀을 성취하니 혜성慧性으로 하여금 치성케 할 새, 염혜지焰慧地요 더욱더 지혜가 현발한다는 말입니다.

 

5에는 진심嗔心의 근본이 제거되는 동시에, 품위가 있고 자비심이 좀 있다 하여도 기분이 사나울 때는 찌푸리는 것을 보지 않습니까. 참선을 오래 했다는 수행자도 기분이 언짢으면 불현듯 진심嗔心이 나오는 것인데, 진심의 근본이 제거되어야 선정禪定 바라밀을 성취하는 것이며, 진정한 선정이 된다면 마땅히 진심으로 동하는 마음이 없어야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5지에서 비로소 선정 바라밀을, 참다운 깊은 선정을 성취한다는 말입니다. 이사理事를 계합契合하여서, 원리나 현상이나 상대나 절대나 모든 상대 관념을 다 비워버리고 걸림 없는 하나로 된다는 말입니다. 앞에는 약간 어렴풋이 계합하였지만 이제는 온전히 계합이 되어서 진속이지眞俗二智의 상응相應을 성공함에 따라 진사혹塵沙惑, 항하사 같은 번뇌를 다 제거하게 되니 지극히 극복하기 어려운 극난승지極難勝地를 성취하게 됩니다.

 

6에는 하등의 이렇다 저렇다 할 탐심 진심이 이미 끊어짐에 따라 혜바라밀을 성취하니 최승지最勝智를 발하여 염정染淨이 염오되고 또는 청정함이 없는 일진법계一眞法界의 행상行相이 현전現前할 새 현전지現前地, 6지에 이르러야 삼천대천세계를 앉아서 훤히 볼 수 있는 경계가 됩니다. 마치 손바닥에다 암마라과Amra[과일 이름]를 하나 놓고 보는 것과 같이 삼천 세계를 확연히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와 같이 현전하므로 모든 현상을 다 통달하는 경지라는 말입니다.

 

7에는 탐진이 이미 끊어짐에 따라 남아있던 일분의 치심이 제거되니, 물론 미세한 무명심은 아직도 남아 있겠습니다마는 대비심大悲心을 발하여 방편方便바라밀을 성취하고, 부처님께서 경을 설하실 때 그 심심 미묘한 방편을 보십시오. 진정한 방편 지혜는 모든 탐치 삼독심이 끊어져야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이승二乘의 자도自度를 원리遠離할 새, 성문이나 연각의 자기 스스로만을 제도하는 그런 옹졸한 경계를 떠난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원행지遠行地.

 

8에는 이미 이승二乘 곧 성문聲聞연각緣覺을 멀리 여의고 보살의 대원을 발한지라 차지此地에서 원바라밀을 성취하고 무상관無相觀을 작하여 임운무공용任運無功用을 상속할 뿐이니 부동지不動地, 그때는 아무런 것도 자기가 지어서 할 필요가 없이 신통도 마음대로 하고 모두가 다 마음먹는 대로 되어버린다는 말입니다.

 

9에는 역바라밀을 성취하고 십력十力을 구족하여서 일체 처에서 가도可度와 불가도不可度를 다 알아서 능히 설법할 새 선혜지善慧地.

 

10에는 장도障道무명의 자성自性을 가린 근본 무명의 근본을 다 끊어버리고서 수용법락지受用法樂智 , 모든 영원한 안락 극락세계를 다 수용할 지혜와 성숙유정지成熟有情智 곧 모든 유정을 성숙시키는 지혜로써 지바라밀을 성취할 새, 무변無邊의 공덕을 갖추어서 무변의 공덕수를 출생하니 대운大雲이 청정한 진여불성의 물을 생함과 같을 새, 법운지法雲地니 후의 4바라밀이란 제6을 개하여서 곧 제6반야바라밀을 부연하여 십지十地에 배대한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수행 정진할 때는 여러 가지 경전이나 조사祖師 스님 어록도 많이 있는데 특히 화엄경십지 법문을 소홀히 하면 공부 경계를 자기 나름대로 그릇 해석하게 됩니다. 따라서 우리는 공부하는 과정이나 차서를 참고할 때는 꼭 화엄경 같은 권위 있는 가르침으로 점검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