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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청화 큰스님 법문집/1. 다시 읽는 큰스님 법문

아미타불이 여러분의 참 이름입니다.712

 

 

반야심경般若心經에서 말씀하신 오온개공五蘊皆空이라. 오온개공은 우리 몸을 구성한 것이나 또는 다른 물질이나 우리 관념觀念이나 모두가 다 본래本來 텅 비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부처님 가르침은 상식적인 가르침이 아닙니다. 철두철미, 과학적인 동시에 또는 형이상학적인 그러한 순수생명이란 말입니다.

 

따라서 아까 말씀드린 바와 같이 자기 몸을 비롯한 모든 그런 물질적 존재란 것은 사실은 있지도 않는 것인데, 우리가 잘못 생각해서 겉만 보고서 성품을 미처 보지를 못하니까 있다고 착각한단 말입니다. 그래서 부처님 가르침의 첫출발은 제법諸法이 공이라, 모두가 다 비어있단 말입니다. 제법공諸法空의 도리를 알아야 그래야 부처님 가르침의 출발이 됩니다. 상식적인 가르침으로 해서는 아무리 애써도 항시 있다는 것에 집착해버린단 말입니다.

 

그래서 이른바 아집我執이라, 나라는 것에 집착하고 또는 법집法執이라, 대상적으로 보이는 산이나 물이 모두가 다, 어떤 사람들은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라고 하니까 실제로 그것이 있다고 착각을 합니다. 그러나 그 성자들이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라는 것은 그냥 우리 중생이 때 묻은 번뇌로 해서 보는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그 우리 중생은 보이지 않지만 이 우주宇宙란 것은 모두가 다 근원적인 의미에서는 진여불성眞如佛性이라, 어느 때나 변치가 않는, 천지우주가 다 파괴되어서 텅텅 비어버리는 그때도 변치 않는, 그런 실상적인 경계가 이른바 이것이 불성 아닙니까, 부처 불자 성품 성, 불성佛性입니다. 그 자리는 바로 진리자체眞理自體이니까 진여眞如라고 그럽니다. 사람한테나 동물한테는 불성이라고 그렇게 말을 하고 또는 자연계의 무생물이나 그런 것은 법 법, 성품 성, 법성法性 그러는데 내내야 똑같습니다. 왜 그런가 하면 우주 자체가, 오직 하나의 성품性品으로 돼있단 말입니다.

 

불성이라고 말하나 법성이라고 말하나 또는 진여라고 말하나 똑같은 뜻입니다. 비단 그 부처님 가르침인 인도에서 나온 가르침이나, 인도 힌두교에서 말하는 그런 가르침이나, 또는 그 가르침뿐만 아니라 옛날 그리스 로마의 위대한 철인들 가르침이나 사실은 똑같습니다. 표현이 다른 것이지 위대한 철인들 말씀은 똑같습니다. 똑같다는 말은 어떤 뜻이냐 하면 천지우주가 모두가 다 하나의 생명으로 돼있단 말입니다.

 

서기 540년 전에 나온 그런 파르메니데스ParmenidēsBC 515?~BC 445? 라든가 또는 그 시대에 나온 헤라클레이토스Herakleitos, BC 540?~BC 480? 라든가 또는 플라톤Platon, BC 429?~BC 347이나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 BC 384~BC 322, 이런 분도 우주란 것은 모두가 다 하나의 생명生命이다. 하나의 진리眞理. 이런 도리道理를 말했습니다. 표현은 좀 다르겠지요.

 

그뿐만 아니라 중세기에 나오신 분들, 이른바 스피노자는 17세기에 나오신 분 아닙니까. 스피노자Baruch de Spinoza, 1632.11.24~1677.2.21 그 분은 마흔 넷에 작고를 했습니다. 여러분 가운데는 44살 넘으신 분들이 많이 계시겠지요. 마흔 넷에 가신 분인데 적어도 17세기 이후에 칸트라든가 위대한 그런 철인들이 스피노자 영향을 안 받은 분이 별로 없어요. 그렇게 위대한 분입니다.

 

그이의 전기를 제가 구체적으로 많이 연구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사전에서 스피노자 사진만 봐도 아무런 무슨 흐림이 없어 보여요. 그렇게 온화하고 고상하고 친절하게 보입니다. 마흔 네 살에 가신 분이 현대철학의 전반에 걸쳐 영향을 주고 있어요. 그 뒤에 괴테Johann 또 피히테Johann라든가 또는 쉘링Thomas 이나 헤겔Georg이나 그런 철인哲人들 모두가 다 스피노자 영향을 받고 있습니다.

 

스피노자가 말한 어떤 문제에 관해서 영향을 받고 있는가, 아까 얼핏 말씀드린 봐와 같이 천지우주가 오직 하나의 생명生命이란 말입니다. 천지우주가 하나의 신이요 하나의 부처입니다. 이른바 범신론汎神論이라, 우리 불자님들 좀 어려우셔도 그 신이 있다 없다 그런 말씀을 하고 있지 않습니까. 신이 우주를 창조하고 우주를 섭리했다는 그런 도리는 주로 기독교나 유태교나 이슬람교나 그런 데서 말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그런 뜻이라든가 또는 모두가 다 아까 말씀드린 바와 같이 우리 불교의 진여불성眞如佛性 아님이 없다, 또는 힌두교의 불이일원론不二一元論이라, 천지우주가 오직 하나의 바라문으로 돼있다, 이런 것이 표현만 좀 다른 것이지 결국은 똑같단 말입니다.

 

일체존제一切存在는 하나에서 와서 다시 하나로 가는 것입니다. 진여불성에 포함돼 있는 그 만능萬能의 공덕功德자리에서 인연 따라서 이 사바세계娑婆世界, 모든 그런 세계가 이루어지고 또 인연이 다하면 다시 모두가 다 진여불성자리에, 하나의 자리로 돌아갑니다. 진여불성에서 와서 다시 진여불성으로 갑니다.

 

진여불성은 바로 생명이니까 인격이니까 그때는 부처님이지요. 부처님이나 진여불성이란 말이나 똑같습니다. 따라서 바꾸어서 말하면 모두는 부처님한테 와서 도로 부처님으로 돌아가고 또 우리 마음이 아까도 말씀 드린 바와 같이 이 뒤에 있는 탱화 부처님의 참다운 성품이 바로 우리 마음이듯이 우리 마음과 부처님은 조금도 차이가 없습니다.

 

참선과 보통 공부와의 차이는 무엇인가 하면 보통 공부는 교학적으로 단계단계 올라가는 공부 아닙니까. 참선은 그냥 직통直通으로 이 마음이 바로 부처다. 이렇게 생각하면 아만我慢 있는 사람은 자기 마음은 부처고, 못된 것 생각하고 못된 짓 하는 사람 마음은 부처가 아니겠지,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못된 짓을 하나 좋은 짓을 하나 그 사람 마음도 똑같은 부처입니다. 다만 그 사람 스스로 부처의 자리를 깨닫지 못했을 뿐이란 말입니다.

 

우리 인간 가운데서 가장 최상의 공덕功德이 무엇인가 하면 내 마음이 바로 부처라는 도리를 알고, 내 마음은 지금 내가 별 것은 아니지만 내 마음에 숨어있는 공덕은 석가모니 부처님이나 예수나 공자나 노자나 그런 성자와 똑같이 한없는 그런 공덕을 다 갖추고 있다, 이렇게 믿는 것이 우리 인간에 있어서 최상의 공덕입니다.

 

나는 조금만 잘못해도 몸도 아프고 재수도 없고 그러는데 나 같은 사람의 마음이 어떻게 부처가 될 것인가. 그것은 우리가 우리 스스로 잘못 살아서 성자의 가르침을 바로 받아들이지 못해서 우리 마음을 온전히 못쓰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 여러분들께서도 집안에 어려운 일이 많이 계시겠지요. 아들이나 딸도 말을 안 듣고 사업도 그러고 내외간도 어떤 때는 화목하지 못하고, 그렇다 하더라도 그런 것은 모두가 다 우리 인간이 잘못 살아서 그와 같이 모든 불여의不如意하고 부정적인 사태가 벌어집니다.

 

정말로 석가모니같이 살고 예수님같이 살고 그렇게 한다고 생각할 때는 그런 불여의가 생길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우리 인간이란 이것은 한계가 있는 한계상황이 항상 우리한테는 뒤 따릅니다. 생로병사라, 한 번 났으니까 당연히 그때는 죽어야 되고 더러는 늙어야 되고 아파야 되고 그러지 않습니까. 만나면 언제 헤어지나 결국은 또 헤어지고 만단 말입니다. 당연히 헤어질 것을 우리는 모두가 다 자기 스스로 업으로 해서 헤어지게 여건이 되어 있는데 헤어지지 안할려고 해도 그것은 할 수 없어요.

 

열반경에 보면 부처님 가르침과 다른 가르침과의 차이를 간단명료하게 말씀해 있습니다. 하나는 무엇인가 하면 여러분들이 대체로 아시는 제행무상諸行無常이라, 제행은 모든 행위를 말합니다. 사람행위라든가 도는 자연계의 모든 이른바 신진대사新陳代謝하는 그런 행위라든가 어떠한 것이나 모두가 무상無常하단 말입니다. 무상이란 것은 이것은 시간적으로 그때그때 항상 됨이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 중생은 그러한 세밀한 정밀한 내용을 잘 모르니까 겉으로 봐서 어제와 오늘과 또는 내일과 모레와 내가 다르지 않지 않겠는가, 어릴 때의 나와 똑같은 그런 존재가 아닌가, 그러나 사실 그렇지가 않단 말입니다. 우리 몸을 구성하는 몇 10억 되는 그런 세포도 역시 하루 동안에도 하여튼 수억씩이나 우리 세포가 바뀌어 집니다. 그런 사실을 현대물리학이 증명해 낸 것 아닙니까. 그러기 때문에 사실은 어릴 때와 지금과는 몸 세포구조가 완전히 차이가 있습니다.

 

그래서 모든 존재는 사실은 그때그때 변화하는 것인데 우리 중생은 변화한 것을 잘 볼 수가 없으니까 항시 지금 눈에 보이는 대로 모두가 다 있어야 된다. 이런 기대 때문에 마음으로 괴로워합니다. 한 번 태어났으니까 당연히 언젠가 죽어야 되겠지요. 몸뚱이란 것은 하나의 물질이기 때문에 죽어야 되는 것인데 그렇게 체념해버리면 좋은데 오래 살려고 또 발버둥치고 여러 가지 별의별 약을 주어먹고 그런단 말입니다.

 

특히 늙어지면 보약을 삼을 먹고 녹용을 먹고 아, 별짓을 다 하지 않습니까. 그러나 그런 것이 좋은 것이 아니에요. 여러분들이 자기 부모님이나 할아버지나 할머님 계시면 그 효성은 하시는 것은 좋은데 그런 비싼 보약을 드릴 필요가 없습니다. 왜 그런가 하면 사람 몸뚱이란 것은 하나의 이것이 몸뚱이 자체가 몸뚱이만이 기관機關이 아닙니다. 몸뚱이만의 기계가 아닙니다. 우리 마음의 반영反影입니다.

 

아까 말씀드린 바와 같이 물질이란 것은 본래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현대적인 모든 폐해나 모순의 원인이 어디에 있는가 하면 유물주의唯物主義, 모든 존재는 물질뿐이다, 물질이 주인이다, 이런 데서 온단 말입니다. 물질이란 것은 사실은 있지가 않은 것입니다. 그때그때 순간순간 변화해 가는 그 무상한 존재인 것인데 우리 중생이 무상한 존재를 항상 있는 것이라고 고집한 데서 우리의 여러 가지 고민이 생기고 또는 거기에서 아까 말씀드린 봐와 같이 물질을..., 물질이 사실로 있는 것이니까 더 많이 가질라고 하고 이른바 생존경쟁生存競爭이나 적자생존適者生存이나 모두가 다 물질이 사실로 있다고 보는 데서 옵니다.

 

노인들이 보약을 많이 자시지 않는다 하더라도 정말로 청정한 마음으로 부처님 생각을 하면 틀림없이 그때는 우리 마음이 우리 몸에 영향을 줍니다. 기독교 바이블의 마태복음에 이런 구절이 있어요. 예수님께서 하는 말이, “그대들이 겨자씨 한 알만큼의 신심이라도 있으면 지금 저기 있는 뽕나무더러 뿌리 채 뽑혀서 바다에 그대로 심어져라, 이러면 틀림없이 심어지니라.”

 

우리 마음의 힘이란 것은 한도 끝도 없습니다. 우리 스스로 우리 마음의 힘을 제대로 쓰지를 못하는 것이지 마음의 힘은 불교적인 표현으로 하면 삼명육통三明六通이라, 별 신통도 할 수가 있단 말입니다. 자기 몸을 우주에 가득 채울 수도 있는 것이고 또는 자기 몸을 천개 만개 화신化身으로 나툴 수가 있는 것이고, 또는 공중에 날아갈 수도 있는 것이고 하여튼 그 못할 것이 없이 다할 수 있는 것이 이것이 우리 마음에 갖추고 있는 능력能力입니다.

 

우리가 생각할 때는 아, 이렇게 내 몸 무게가 50Kg인데 어떻게 내 몸이 공중으로 날아갈 것인가. 그러나 부처님 당시부터서 조사스님들, 부처님 법을 받으신 위대한 조사들은 대체로 보면 열반에 드실 때에, 물론 그도 중생의 교화를 위해서 필요에 의해서 그랬습니다마는 공중으로 솟아 올라갑니다. 공중으로 솟아 올라가서 18신변十八身變이라, 그 부사의不思議한 십팔신변을 해요.

 

그 다음에 돌아가실 시간이 되면 그때는 자기 가슴에서 불을 냅니다. 자기 가슴에서 불을 내는 삼매를 화광삼매火光三昧, 불 화자 빛 광, 화광삼매라고 그래요. 자기 가슴에서 불을 내서 자기 몸을 태웁니다. 석가모니 부처님도 금관金棺에 넣어서 역사力士들이 기름을 붓고 해서 관을 태우려고 했지만 관이 도저히 불타지가 않는단 말입니다. 그러기에 부처님께서 자비심으로 관 안에서 화광삼매에 들어서 스스로 가슴에서 불을 내서 관을 다 태웠단 말입니다.

 

우리 마음은 그런 힘이 누구한테나 있습니다. 우선 저부터가 공부가 부족하니까 한탄합니다. 석옥청공石屋淸珙화상, 고려 때 태고보우화상이 중국에 들어가서 법을 받으신 석옥청공화상이지요. 석옥청공화상도 돌아가실 때 한탄을 했어요. 내가 화광삼매에 들어가서 불을 내서 내 스스로 몸뚱이를 태웠으면 되는 것을 그 하찮은 몸뚱이를 태우려고 그냥 나뭇더미가 있고 또 무엇이고 있고, 금방 결국은 참 나뭇더미 위에서 내 몸뚱이를 태워버리면 아무 것도 없어질 것인데그래서 석옥화상이 한탄하는 시가 있는데 그 가운데 이런 대문이 있어요.

 

고아야무삼매화顧我也無三昧火, 내가 나를 돌아보니 삼매의 불이 없단 말입니다. 저 같은 사람도 지금 죽어지면 틀림없이 그런 한탄을 할 수 밖에는 없습니다. 깊은 삼매의 공부를 많이 했으면 틀림없이 하여튼 조사스님들 모양으로 스스로 가슴에 불을 내 화광삼매에 들어서 몸을 태울 것인데 아, 참선한다고 조금 했지만 그렇게 깊은 삼매에 못 들어 놓으니까 자기 몸을 태울 만한 불이 안 나온단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