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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청화 큰스님 법문집/1. 다시 읽는 큰스님 법문

아미타불이 여러분의 참 이름입니다.707

 

 

우리는 우리 마음의 참모습을 모르는데서 우리 인간의 불행이 있습니다. 따라서 아까 말씀마따나 우리 인간은 나라는 고집을 하고 또는 모든 존재가 사실로 있다고 생각한단 말입니다. 부처님 가르침의 핵심은 이것은 아까도 얘기한 바와 같이 제행무상(諸行無常)이라, 모두가 다 이것은 무상한 것이다. 그때그때 변화무쌍한 것이다. 또는 제법무아(諸法無我), 모두가 독립적으로, 실존적으로 있지가 않단 말입니다.

 

그러면 있는 것은 무엇인가? 참말로 있는 것은 열반적정(涅槃寂靜)이라, 그 영생해탈(永生解脫)의 자리, 영원히 죽지 않는 자리, 이것이 참다운 우리의 본래면목(本來面目)인 생명(生命)이란 말입니다. 우리 인간이 본래면목(本來面目)자리, 참다운 자리를 모를 때는 아까 말씀드린 바와 같이 그때는 어느 때나 변함없이 윤회(輪廻)를 합니다.

 

과거(過去)에 태어나고 또는 금생(今生)에 태어나고 내생(來生)에 태어나고 비단 그뿐만 아니라 몇 생을 몇 만생을 우리가 더 경과한다 하더라도 참다운 자기를 알고서 해탈(解脫)해버리면 모르거니와 참다운 자기를 모를 때는 어느 때까지나 윤회하면서 사람으로 갔다가, 더 잘못 살면 아귀(餓鬼)가 됐다가, 더 잘못 살면 지옥(地獄)도 갔다가, 꼭 그러는 것입니다.

 

지옥이나 그런 것은 비유해서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꼭 사실로 있는 거란 말입니다. 천상(天上)도 분명히 있는 것입니다. 어떻든 간에 아까 말씀드린 바와 같이 진리를 모르면 우리는 어느 때까지나 윤회하면서 뱅뱅 그 업()따라서 우리가 태어나면서 인생고(人生苦)를 받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중생이 사는 것은 업을 잘 지어서 업도 같은 업, 선업이나 악업이나 거기에 그치지 않고 도업이라 길도()자 업업()자 도업(道業)이라, 도업은 이것은 해탈의 업이란 말입니다. 해탈의 업을 우리가 지어야 합니다.

 

해탈의 업을 지을라면 아까도 말씀드린 바와 같이 천지우주의 본래는 모두가 다 부처뿐이다. 어느 것도 부처 아닌 것이 없다. 그 부처에는 만능의 만공덕이 다 원만히 갖추고 있다. 이렇게 확실히 믿고서 부처님 가르침의 핵심인 삼학도(三學道), 철저한 계행(戒行)을 지키고 또는 우리 마음을 항시 부처님 경계(境界)에다 머물게 하는 그런 정신통일(精神統一), 불교(佛敎)에서 말하는 정신통일은 그냥 명상(瞑想)적인 그런 것이 아닙니다. 우리 마음을 그 불성자리, 진여불성(眞如佛性)자리, 불성이란 것은 참다운 진리이기 때문에 참진()자 같을여()자 진여(眞如)라고 합니다.

 

진여불성을 알아야 그래야 불교의 참다운 면목을 안단 말입니다. 진여불성을 모르면 불교를 모르는 것입니다. 따라서 깨달은 분들은 우주가 바로 진여불성 뿐인 것이고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공부하는 것도 항시 진여불성을 목표로 해야 됩니다. 따라서 우리가 명상한다 하더라도 진여불성 자리에다가 우리 마음을 두고 그 자리를 구해야 참다운 명상이 되고 참선(參禪)이 되고 한단 말입니다.

 

우리가 염불(念佛)을 한다 하더라도 그렇습니다. 나무아미타불(南無阿彌陀佛)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을 외인다 하더라도 그 불성(佛性)자리에다 우리 마음을 두고 불성을 구해야 한단 말입니다. 불성과 하나가 되면 하나가 될수록 불성에 가까워질수록 우리는 더욱더, 우리 마음은 넓어지고 또는 깊어지고 차근차근 우리가 부처님과 가까워지다가 드디어는 우리 마음의 번뇌(煩惱)만 떠나버리면 나라는 고집, 너라는 고집, 그런 집착(執着)만 떠나버리면 그때는 우리가 바로 부처가 된단 말입니다.

 

우리 불자님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철저한 계행(戒行)을 지켜야 합니다. 계행을 지키는 것은 그렁저렁 사는 것이 아니라 부처님 법대로 산단 말입니다. 부처님 법대로 살기 위해서는 우리 먹는 것도 함부로 먹어서는 안 됩니다. 대체로 보면은 함부로 먹어서 병이 납니다. 저 같은 사람은 올해 팔십이나 먹어서 별로 함부로 먹지 않았지만은 죽을 때가 가까워지니까 이따금 허리도 아프고 하기도 합니다만 아무튼 우리들은 너무 함부로 먹습니다.

 

고기를 먹는 것도 우리 건강에 좋지 않고 많이 먹는 것도 절대로 좋지 않습니다. 우리 몸이 비대한 것도 좋지 않습니다. 우리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분들은 대체로 함부로 먹는데 그 원인이 있습니다. 따라서 우선 음식에 주의해서 정말로 적게 먹고 가급적이면은 채식주의(菜食主義)를 하시고 그렇게 하시면서 도덕적(道德的)으로 흠이 없어야 합니다. 흠이 없기 위해서는 부처님 가르침을 항시 우리 표준(標準)으로 해야 한단 말입니다.

 

이렇게 하시면서 우리 마음을 아까도 말씀드린바와 같이 부처님 자리에다 항시 두고 부처님 자리 이것은 모든 생명(生命)의 근본(根本)자리고 동시에 그 자리는 광명(光明)의 자리입니다. 한도 끝도 없는 광명의 자리입니다. 진여불성 이란 것은 그냥 무미한 것이 아니라 모든 행복과 모든 가능을 갖춘 모든 것을 할 수 있고 알 수 있는 그런 자리입니다. 그런 자리가 바로 진여불성의 자리입니다.

 

따라서 거기다가 우리 마음을 두고 염불(念佛)을 하고 우리가 명상한다고 생각할 때에 우리 마음은 차근차근 광명스럽게 됩니다. 여러분들이 몇 일만 우주의 가득 찬 부처님의 광명(光明)을 생각하면서 나무아미타불(南無阿彌陀佛)이나 또는 기타, 다른 공부도 좋습니다. 어떤 방법으로 하든지 간에 그 불성자리, 천지우주(天地宇宙)가 모두가 다 진여불성(眞如佛性)인 광명(光明)으로 충만(充滿)한 자리, 거기다가 마음을 두고 공부를 하시면 여러분 얼굴도 차근차근 빛날 것이고 또는 왠만한 잔병도 다 떨어지고 하는 것입니다.

 

행복(幸福)은 자기가 창조(創造)하는 것입니다. 아까 말씀마따나 우리한테 제일 소중한 것은 부처님께서, 그 부처님오신 날에 맨 처음 선언하신 참자기, 천상천하에 유아독존이라, 다시 둘도 없는 참자기, 우리의 참 본래면목 자리, 이런 자리를 우리가 한시도 놓치지 말고 오늘 관등(觀燈)을 연등(然燈)을 하실 때도, 그 연등이란 것은 그냥 덮어놓고서 복()을 비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우리 스스로가 끝도 갓도 없는 우주의 광명을 우리가 관상(觀想)하고 또는 우리 마음이 우리 생명의 본래에 있는 광명자리로 가까워지기 위해서 우리 마음의 어두운 우리 마음을 훤히 부처님의 성품(性品)으로 비추고 확장(擴張)시키고 영원히 해탈(解脫)을 시키는 그런 연등이란 말입니다.

 

이렇게 하셔서 한없는 정말로 윤회(輪廻)를 빨리 떠나서, 나쁜 업을 짓고 여러 가지 업 때문에 우리가 이곳으로 저곳으로 윤회하는 뱅뱅 도는 우리 불행을 떠나서 정말로 영생해탈(永生解脫)이라, 참다운 진리(眞理)의 세계로 나아가시기를 간절히 빌면서 오늘 봉축(奉祝)의 날, 부처님오신 날 법어(法語)로 갈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