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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청화 큰스님 법문집/1. 다시 읽는 큰스님 법문

아미타불이 여러분의 참 이름입니다. 673

 

 

이 세상에 있는 것은 다 하나의 존재입니다.

여기 지금 한 200명이상 되는 우리 불자님들이 계십니다만 우리는 보통 저 사람과 나와는 지금 뿔뿔이다, 姓名도 다르고 나이도 다르고 하니 따로따로 있지 않은가, 허나 사실은 본 바탕에서 본다고 생각할 때는 모두가 다 하나의 생명이란 말입니다. 원자의 차원에서는 지금 다 붙어있는 것입니다. 우리 중생은 지금 겉만 보니까 따로따로 보인단 말입니다.

 

성자聖者들은 원자의 차원이 아니라 모든 그런 원자보다도 훨씬 근원적인 생명자리인 진여불성眞如佛性으로 본단 말입니다. 진여불성으로 본다고 생각할 때에 모든 존재가 어떻게 해서 둘이 되고 셋이 되겠습니까. 오직 하나란 말입니다. 다른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자연도 마찬가지고 우리 인간존재란 것은 이 자연가운데 인연因緣 따라서 잠시간 이렇게 보이고 저렇게 보이고 한다 하더라도 근본바탕은 다 똑같단 말입니다.

 

이른바 중생衆生과 성인聖人의 차이는 무엇인고 하면 성인들은 모두를 다 근본바탕에서 본단 말입니다. 근본바탕에서 본다고 생각할 때에 나와 남이 둘이 있겠습니까. 우주란 것은 지금 물리학적으로 보면 원자가 꽉 차있습니다. 원자는 무엇으로 돼있는가, 에너지energy로 돼있다, 에너지는 무엇인가, 에너지는 진여불성이다. 이래버리면 결국은 간단하게 되지 않습니까.

 

우리는 그 남한테 뭘 베풀 때도 아, 저 사람은 배고프니까 내가 좀 줘야되겠다, 저 사람은 나보다 못하니까 내가 좀 도와줘야 쓰겠다, 이렇게 해서 보통 베풀고 가르치고 하지 않습니까. 이것은 상을 떠나지 못하고 하는 것입니다.

 

그 전체적으로 일원적一元的인 자리, 그 자리에다 가 마음을 두고 말도 하고 행동도 해야 비로소 상을 떠나는 것이고 본질적인, 헤라클레이토스Heraclettos BC540나 또는 파르메니데스Parmenidos BC544~501나 그런 철인哲人들이 하는 식으로 할 수가 있지, 우리가 현상적인 것만 생각해서는 그때는 우리가 상을 여읠 수가 없단 말입니다. 상을 못 여의면 항시 마음이 풀리지 않습니다.

 

우리 마음이란 것이 지금 모양이 있습니까.

달마대사達磨大師의 법문이란 것은 안심법문安心法門이라, 편안 안, 마음 심, 안심법문이란 말입니다. 안심법문의 핵심이 무엇인가. 안심법문安心法門이란 것은 내 마음과 부처와 둘이 아니란 말입니다. 우리가 부처님 생각할 때 석가모니釋迦牟尼부처님이사 인제 인도에서 2500년이상 전에 나오신 석가모니 화신化身부처님이 되겠지요.

 

그러나 참다운 부처님은 여러분들 다 아시는 바와 같이 석가모니가 나오시고 안 나오시고 상관이 없이 영원한 그런 진리眞理부처님이란 말입니다. 영원한 진리부처님이 모양이 있습니까. 내 마음도 모양이 없고 그 영원한 진리부처님도 모양이 없습니다.

 

모양이 없다고 생각할 때는 똑같이 모양이 없이 결국은 하나란 말입니다. 모양이 없는 내 마음과 또는 모든 존재의 참다운 진여불성 자리인 부처님과 똑같이 모양이 없으니까 결국은 하나란 말입니다. 이와 같이 부처와 내 마음과 틀림없이 하나다, 이렇게 생각하는 법문이 안심법문安心法門입니다. 이렇게 되어야 우리 마음이 비로소 안심입명安心立命을 합니다.

 

이렇게 되어야 비로소 우리가 인제 주체성主體性이 확립確立이 되었다고 할 수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