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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타행자의 편지/미타행자의 편지

진실한 수행


 

성륜사에서 지넬 적에 도반스님과 꽃나무 심는 울력을 하는데 5-6세 정도? 될까하는 동자님이 스님! 스님! 하면서 따라다니며 정겹게 놀기에 지나가는 말로 “애야 너 스님 되고 싶은 마음 없니” 하니 대답이 없습니다. 못 들었나 하고 다시 물었는데 옆에서 지켜보던 아빠가 거들기를 “00야 스님 된다면 아빠가 많이 도와줄게 하니 바로 도끼를 날리는데 ”아빠나 해“


자성원에서 지넬 적에 엄마 따라 온 동자님이 있었는데 초등학교 병설유치원에 다닌다고 하니 6세 정도? 되었겠지요. 보살님도 절에 다니시는 분은 아니고 지나다 이름보고 찾아왔다는 것이고 동자님도 처음 엄마 따라 절에 왔다는데 어디서 들었는가? 부처님! 부처님! 하며 정겹게 합니다. 저도 신통하여 “동자님 스님 되고 싶은 마음 없어” 하니 대답이 “스님은 장가 안 가자나요 나는 장가가야하는데” 하여 웃었는데 엄마가 하는 말이 오늘 처음 절에 온 아이가 스님이 결혼 안하는 것을 어떻게 알았는가 하고 신기해합니다.

 

사바세계에 온지는 5-6년 밖에 안 되어도 이미 다겁생의 정보가 깊은 의식 속에 다 저장이 되어 있고 아는 것입니다. 전생부터 스님은 좋아했지만 스님이 힘든 길이라는 것은 이미 전생에 알고 직감적으로 순수한 나이라 바로 거침없이 말이 나온 것입니다.

 

심리학자들도 깊은 의식, 잠재의식은 이미 다 알고 있다 이렇게 말합니다. 그리고 잠재의식이 삶을 지배한다고 합니다. 심리학에서 말하는 잠재의식이 유식(唯識)에서는 일곱 번째 마음 제7 말라야식 말하며 더 깊이는 윤회의 주체인 제8 종자식(種子識) 아뢰야식이 있다고 합니다.

 

우리가 목숨이 다 할 적에도 다음 생에 악도(惡道)에 떨어질 사람은 깊은 의식 속에서는 알고 거부반응이 일어나 끝까지 사바세계 남으려고 목숨을 구걸하는 것이고 다음 생에 선도(善道)에 갈 사람은 깊은 의식에서 거부반응이 없기에 순(順)하게 가는 것입니다.

 

이름은 잊었지만 유럽에 유명한 자연주의자분이 계시였는데 이 분의 유언 열 가지 가운데 기억하는 것이 “목숨이 다 할 적에 모든 의료 행위를 거부한다.”고 했고 자신이 죽으면 작업복차림으로 관에 넣어 달라고 했습니다. 농사 짓고 채식하시며 사시는 분인데 9십이 넘어 가실 적에 유언대로 이루어졌다고 합니다. 모든 의료행위를 거부해도 가고 모든 의료행위를 동원해도 갑니다. 죽음 앞에는 포장된 이름과 진실하지 않은 수행은 거품이며 다만 다음 생에 자신이 있느냐 없느냐 차이입니다.

 

수행자라며 가장 큰 덕목은 정직이며 자신을 살펴보고 자신을 속이지 말아야 합니다. 어떠한 수행을 하던 잠재의식 깊은 의식까지 정화를 하여야 언행(言行)이 일치하는 것입니다. 현 사회이던 종단이던 많은 분들이 입과 몸이 따로 노는 것을 부지기수로 보지 않습니까?

 

떠날 적에는 자신 있게 “목숨이 다 할 적에 모든 의료 행위를 거부한다.”할 정도로 “진실한 수행”을 하여야 하며 염불행자의 “정성스런 나무아미타불”이 사바세계를 떠날 적에 즐거울 것입니다.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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