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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청화 큰스님 법문집/1. 다시 읽는 큰스님 법문

아미타불이 여러분의 참 이름입니다.249

 

 

 

* 위법망구(爲法忘軀)

청화큰스님의 삶은 한 마디로 ‘위법망구’ 진리를 깨닫기 위해 몸을 잊었다. 입니다. 평생을 일종식과 장좌불와로 보내신 분 열반한지 10주년이 다가옵니다. (11월 21일)

-아- 큰스님의 법 향이 그립습니다. 나무아미타불

 

249. 우리 불자님들 잘 명심하셔서 아까 제가 말씀한대로 부처님 가르침은 절대로 그렇게 어려운 것은 아닙니다. 그 근원적인 주체성, 주체성은 이것은 바로 자성 불성인데 말입니다. 거기다가 마음을 두고 모든 공부가 화두한 사람은 화두, 또는 염불한 사람은 염불, 또 주문하는 사람은 주문, 모두가 다 그 주체성을 근본체根本體를 안 여의기 위해서 우리가 공부해야 한단 말입니다.

 

내 본래생명이 바로 부처인데 부처님을 생각한 것같이 더 쉽고 간절한 공부는 없습니다. 하나의 논리로 해서 이치라든가 뭘 갖다가 의심을 잔뜩 해가지고서 의심을 풀어간다든가 그런 공부도 좋지만 그보다는 “내 스스로의 생명이 바로 부처고 우주의 본바탕이 바로 부처다,” 이렇게 생각할 때 그 부처님을 생각하는 그 마음이 아까 말씀드린 바와 같이 그 흐린 탁수에다가 마니보주를 넣으면 즉시 맑아오듯이 우리 마음도 우리 마음은 즉시즉시 그걸로 해서 마음이 정화가 되고 다 사회를 정화시키고 다 그러는 것입니다.

 

또 그것도 역시 염불念佛도 보통 염불이 아니라 우리가 바른 견해 바른 반야般若의 지혜智慧가 전제가 되어야 한단 말입니다. 반야의 지혜가 전제가 된다는 말은 무슨 말인고 하면 모두를 다 하나의 생명이라고 본단 말입니다.반야의 지혜가 없을 때는 그때는 저 사람은 저 사람이고 나는 나다 이렇게 보지만 반야의 지혜라는 것은 근원적인 성품에서 본체에서 보기 때문에 모든 생명을 하나로 본단 말입니다.

 

하나로 보는 위해서 우리가 염불도 하고 주문도 외고 화두도 들어야 그래야 참다운 공부가 됩니다. 가령 우리가 이뭐꼬 화두話頭를 한다거나 무無자 화두를 한다하더라도 그냥 덮어놓고서 의심만 하고 그런 것은 공부가 안 되는 것입니다. 사실은 그것은 참선이 아닙니다. 무슨 공부를 하든지 간에 모두가 다 본래의 자리, 본래의 자리는 바로 부처 아닙니까. 부처의 자리를 안 여의고 참선을, 우리가 화두도 들고 염불도 하고 그래야 그것이 바로 참선이란 말입니다.

 

그래서 본래면목本來面目 자리, 즉 말하자면 아까 말씀드린 바와 같이 바로 자성자리 말입니다. 불성자리를 안 여의는 공부를 해야 그래야 참다운 참선도 되고 참다운 염불도 됩니다. 염불을 한다하더라도 그와 같이 그냥 덮어놓고서 타력적他力的으로 아, 부처님은 저 밖에 계시니까 내가 여기서 부처님을 기원 드리고 부처님한테 귀의하면 나한테 가피를 주신다, 이런 것은 보통 염불이고 말입니다. 그 천지우주가 모두가 다 일미평등一味平等하게 부처 아님이 없다, 반야 반야바라밀般若波羅蜜은 그런 도리입니다. 모두를 다 하나로 본단 말입니다.

 

하나의 반야로 보는 그런 지혜가 슬기가 먼저 있고서 그 다음에 거기에 따라서 우리가 수행의 실천을 해야 그래야 그것이 바른 수행이 됩니다. 보시布施를 하고 사회사업을 하고 그렇다하더라도 그 반야바라밀에 입각해서 말입니다. 모두가 하나라는 지혜 그것에 입각해서 우리가 사회사업도 하고 남한테 베풀기도 하고 그래야 이른바 상相이 없는 상을 떠난 참다운 보시가 되고 참다운 이른바 보살菩薩이란 말입니다.

 

우리가 보살이란 것은 그냥 보통 행동이 아닙니다. 먼저 그 반야의 지혜 참다운 지혜가 있어 가지고서 모두를 다 일미평등一味平等한 평등무차별平等無差別의 그런 자리에다 우리 마음을 두고서 말도 하고 생각도 하고 우리 행동을 해야 그래야 참다운 보살행菩薩行이란 말입니다. 보살이란 것은 그래야 되는 것입니다. 일반 소승적인 것은 나와 남을 구분하고 차별하는 마음을 못 떠나지만 보살이란 것은 아까 말씀드린 바와 같이 꼭 그 반야의 지혜, 모두가 다 하나의 생명이다, 하나의 그 근본에다가 마음을 두고 우리의 모든 신구의身口意 삼업三業이라, 몸으로 행동하고 말하고 생각해야 그래야 이른바 참다운 보살행이고 보살의 대행大行이란 말입니다.

 

우리 중생들이 하는 것은 그것은 소행小行인 것이고, 정말로 그 대행적인 그런 행동은 꼭 그 반야의 슬기로운 지혜가 전제가 되어서 하는 것이 이것이 대행이 되고 또 그렇게 되어야 우리 마음도 몸도 주변도 다 편한 것입니다. 남한테 베푼다하더라도 저 사람은 나보다 못하다 이렇게 베풀면 그 베풂을 받는 사람도 마음이 괴롭단 말입니다. 허나 조금도 그런 것이 없이 그 흔연스럽게 이 뭐 자타가 원래 없는 것이고 물건도 이것은 잠시간 내가 관리한 것이지 내 소유도 아니고 말입니다. 참다운 지혜로 본다고 생각할 때는 자기 몸도 허망한데 자기 소유가 어디가 있겠습니까.

 

그래서 우리가 큰 기업도 해서 돈도 많이 벌고 성공한다 하더라도 그렇게 설사한다하더라도 꼭 이것은 내 소유가 아니다, 그렇게 느껴야 됩니다. 진실로 그것이 소유가 아닌 것인데 그것이 잠시간 모두가 관리한 것에 불과합니다. 이 몸뚱이도 금생에 내가 잠시간 관리하는 것이지 내 것이 아니란 말입니다. 그렇게 해서 그 무아무소유無我無所有의 무아무소유란 것이 얼마나 편합니까.

 

그 짐도 많고 금생에 참 죽어갈 때 다 가져갈 것도 아닌데 그 재산도 이것저것 복잡하고 자기 패물도 많고 하면 그것은 좋을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가급적이면 다 털어버리고 말입니다. 우리가 정말로 참 가벼운 마음으로 금생에 살다가 가볍게 가는 것이 이것이 최상의 길입니다. 그러기에 우리 스님네도 삼의일발三衣一鉢이라, 옷 세벌 좀 갈아입을 것 하나있고 또 바리때鉢多羅 공양供養할 것 하나있으면 그 외에는 사실은 필요가 없다고 합니다.

 

우리 불자님들 인생에 있어서 부처님 가르침, 아까 말씀드린 대로 음식 좀 적게 먹고 말입니다. 고기 먹어서 아무런 도움이 안 됩니다. 정말로 살로 안갑니다. 여러분들이 정말로 적게 자시고 고기 안 먹고 아까 제가 말씀드린바와 같이 그 한 달에 그래도 몇 번씩 정도는 그래도 일종日中一食도 해보고 또 단식斷食도 해보고 그렇게 해서 몸을 다스리면 참 건강합니다. 물질도 덜 들고 병도 덜 들고 말입니다. 고기 먹으면 고기 먹는 것이 부처님 법에서 보면 부정소출이라, 그 더러운 것을 낳는단 말입니다.

 

암癌이요 무슨 병이요 문명병文明病들은 대체로 우리가 잘 못 먹어서 그럽니다. 정말로 깨끗이 자셔야 됩니다. 그렇게 하셔서 아까 말씀드린 바와 같이 우리 마음 비록 혼탁한 마음일지라도 그 나무아미타불南無阿彌陀佛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 다르게 불러도 좋습니다. 부처님 명호를 부르시면서 정말로 금시 금시 우리 마음이 정화가 되어서 행복해지시기를 간절히 빌어마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