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7. 무아(無我)에 대해서는 어려우므로 제가 예를 한 가지 들어서 '내가 없다'는 소식에 대해서 보다 더 여러분들의 이해를 도와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물질(物質)은 분석하면 다 원자(原子)가 됩니다. 또 어떤 원자나 분석하면 전자나 양성자 같은 소립자가 됩니다. 그 소립자들은 또 쿼크(quarks)같은 초소립자로 이루어져 있고, 이들 역시 분석하면 에너지(energy)의 작용(作用)밖에는 남지 않습니다. 원자를 분석해 보면 결국은 에너지의 활동만, 정기(精氣)만 남는 것이지 물질은 남지가 않습니다.
전자(電子)나 양성자(陽性子)나 그런 조그마한 알맹이를 지금 현대 물리학자들이 증명하려고 합니다. 그 운동(運動)을 알려고 하면 위치(位置)를 잘 알 수 없고, 또 위치를 알려고 하면 그 운동(運動)을 알 수가 없단 말입니다. 이것이 이른바 하이젠베르크(W. K. Heinsenberg 1901 ∼ ?)의 불확정성원리(不確定性原理)입니다. 일체 존재의 가장 근본이 되는 소립자는 이것인가 저것인가 알 수가 없단 말입니다. 그렇기에 「아인슈타인」의 훌륭한 제자인 「하이젠베르크」같은 분도 불확정성의 원리라, 모두가 불확실하단 말입니다.
그리고 전자나 양자를 분석해 보면 무엇인가 확실히 알 수도 없을 뿐만 아니라, 모두가 에너지의 하나의 파동에 불과하단 말입니다. 에너지는 물질이 아닙니다. 우주의 정기란 말입니다. 우주라 하는 것은 에너지로부터 이 은하계가 생기고 태양계가 생기고 지구가 생기고 달이 생기고 다 그랬던 것입니다.
지구가 생긴 다음에 우리 중생이 나오고 말입니다. 나중에 오랫동안 몇100억년 지나가면 천지 우주는 파괴되어서 다시 텅텅 비어 버리는 에너지가 되어버리는 것입니다. 현대 물리학자가 증명을 합니다. 우리 지구도 역시 이대로 항시 있는 것이 아니라 벌써 약 150억 년 전쯤 생겨나서 이와 같이 흘러 왔단 말입니다. 장차는 다시 이것이 차근차근 쓰레기가 축적되어서 이른바 엔트로피(entropies)라, 다시 활용할 수 없는 에너지가 차근차근 축적되어서 드디어는 다 불타버려서 우주가 텅텅 비어 버린다는 것이 현대 물리학자의 주장입니다.
따라서 물질이라는 것은 앞서도 말씀드린 바와 같이 내 몸을 구성한 것이나 다이아몬드를 구성한 것이나 금을 구성한 것이나 모두가 다 소립자라 하는 물질인가 무엇인가 모르는 그러한 에너지의 진동(振動)이 적당히 결합되고 보태고 보태져서 이러한 내 몸도 되고 다른 것도 되었단 말입니다. 본래 근본이 비었거니 아무리 결합되고 보태고 보태도 내내야 빈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항시 저는 예를 들어서 말씀을 드립니다마는 공(空), 제로(zero)를 몇 번 보태나, 곱하나, 제로는 제로 아닙니까, 공은 공 아닙니까? 그와 똑 같이 에너지라 하는 물질이 아닌 것이 어떻게 진동해서 모양은 사람 같은 모양으로, 금 같은 모양으로, 다이아몬드 같은 모양으로 되었다 하더라도 내내야 공은 공이란 말입니다.
이와 같은 과학적 이치로 말씀드려도 잘 모르신 분들은 실감이 안 나겠지요.
나는 분명히 나고, 내 모습 잘 꾸미기 위해서 양복도 기왕이면 값이 비싼 것으로 입고 반지도 몇 개나 끼고 그래야 할 것인데 그런 귀중한 내 몸 더러 '공이다' 그래버리면 참 살 맛이 안 나고 그렇게 생각이 되시겠지요. 그러나 분명히 물리학자가 객관적으로 증명한 것이므로 공은 공이란 말입니다.
여러분들이 공부를 점차 하여 가시면서 마음에 맞는 공부 방법을 딱 추슬러서 공부를 잘 해 가시면 차근차근 60키로가 되던 자기 몸뚱이가 50키로도 못되고, 또 더욱 분발하여서 공부를 더해 가시면 40키로도 못되고 말입니다.
공부가 익어지면 그때는 아! 이 몸뚱이가 있는가, 없는가 짐작을 못한단 말입니다.
드디어는 몸뚱이가 공중에 뜬 기분입니다. 이렇게 되면 공이라고 하드만 정말로 공이구나 확신을 하시는 것입니다. 도인들같이 참다웁게 욕심(慾心)을 다 끊어버린 사람들은, 욕심의 뿌리까지 뽑아버린 사람들은 정말로 몸이 하늘로 공중에 뜰 수가 있는 것입니다.
사실 충분히 뜰 수가 있습니다. 부처님 법을 제대로 공부해서 정말로 참다운 도인이 된다고 생각할 때는 삼명육통(三明六通)이라, 삼명육통 가운데 신여의통(身如意通)이라, 자기 몸뚱이를 자기 마음대로 할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죽을 때에 그 장작더미로 자기 몸을 태우는 것이 아니라 자기 몸뚱이 가운데서 삼매(三昧)의 불을 내서 몸뚱이를 태운 분도 한 두 분이 아닙니다. 그 분들만 그러는 것이 아니라 이 가운데 계시는 여러분들도 다 그렇게 할 수가 있습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자기 생명(生命)을 최선으로 살리는 길입니다. 석가모니(釋迦牟尼)나 삼명육통을 한 도인들이나 지금 우리가 호리불차(豪釐不差)라 조금도 차이가 없습니다. 또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최상의 행복의 길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참선(參禪)을 꼭 하셔야 됩니다.
그리고 어느 사람들은 참선을 한다고들 하는데 나는 참선을 안 하니 열등감이 생기겠지요. 그리고 나는 선방(禪房)에도 못 가는데 어떻게 참선을 할 것인가? 이렇게 걱정을 마십시오. 참선은 꼭 선방에 가서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앞서도 제가 언뜻 말씀드린 바와 같이 우리 마음이 본래면목(本來面目) 자리, 우리 생명의 본래의 자리가 부처님인데 그 자리에다 우리 마음을 딱 붙이고 그 자리를 여의지 않으면 바로 참선이란 말입니다. 참선방에서 가부좌(跏趺坐)를 틀고 모양은 그럴싸한데 마음은 이것저것 상대적인 생각을 한다고 생각할 때는 참선도 아니고 불법도 아닙니다.
* 도량에 유채꽃. 쥔장도 언제 왔는지 모르는데 꽃을 피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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