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필독!초기경전/5. 사마타 그리고 위빠사나

4-1 질의 응답

4-1 질의 응답

질의 응답 4


질문4.1 : 아리메떼야 보디삿따(미륵보살)를 포함한 모든 보디삿따(보살)는 범부(puthujjana)입니까? 아니면 성인입니까? 만약 아리메떼야 보디삿따가 우리와 같은 범부라면, 그가 메떼야 붓다(미륵불)가 되기 위해 내려 왔을 때, 그가 붓다가 되는 조건과 우리가 깨달음을 얻는 조건 사이에는 어떤 차이가 있습니까?


대답4.1 : 석가모니 붓다께서 붓다가 되기 전 보디삿따 싣닫타 왕자였을 때 가지고 있던 바라밀처럼, 그의 바라밀이 성숙했다는 것이 그 차이이다. 모든 보디삿따는 수많은 삶 동안을 바라밀을 수행한다. 바라밀은 10가지가 있다.


1. 보시............................................................................(dāna)

2. 지계............................................................................(sīla)

3. 출리............................................................................(nekkhamma)

4. 지혜............................................................................(pañña)

5. 정진............................................................................(vīriya)

6. 인욕............................................................................(khanti)

7. 진실............................................................................(sacca)

8. 결정............................................................................(adhiṭṭhāna)

9. 자애............................................................................(mettā)

10. 평온..........................................................................(upekkhā)


 모든 보디삿따들 또한 감각적 욕망을 즐겼지만 성숙한 바라밀이 세상을 포기하게 했다. 그들은 마지막 삶에서 결혼도 하고 아들도 얻었다. 이것은 자연의 법칙이다. 나는 메테야 보디삿따의 아내와 아들을 기억하지 못한다. 테라바다 삼장에 따르면 붓다를 포함해서 어떠한 아라한도 빠리닙바나에 든 후에 다시 태어나지 않는다. 빠리닙바나는 윤회의 끝이다. 그들은 어느 곳에도 태어나지 않는다.

 석가모니 보디삿따의 경우를 예로 들어보자. 그는 마지막 삶에서 깨달음을 얻기 전에 범부였다. 왜 그러한가? 그는 16살에 야소다라와 결혼해서 아들을 낳았고 감각적 즐거움을 13년 이상 즐겼다. 그는 500명의 여신을 오른쪽에, 500명의 여신을 왼쪽에 두지 않았지만 2만 명의 시녀에 둘러싸여 있었다. 이것이 감각적 쾌락을 즐기는 것이고, 감각적 즐거움에 탐닉하는 것이다.

 그는 감각적 즐거움을 포기하고 우루벨라 숲 속에서 6년간 고행을 닦았다. 그후 그것마저 포기하고 중도를 수행하여 오래지 않아 깨달음을 얻었다. 담마짜까빠와타나 숫따에 나오는 깨달음 후의 최초의 설법에서 그는 이렇게 선언했다.1)


감각적 기쁨을 즐기는 것은 열등하다. 속인의 삶, 범부의 삶, 이것은 깨달은 자의 삶이 아니다. 이것은 도와 과 그리고 닙바나 같은 어떠한 이익도 가져올 수 없다.


 이것은 감각적 즐거움을 즐기는 것은 성인의 삶이 아니라는 의미이다. 감각적 즐거움은 인간의 행복, 신들의 행복 그리고 범천의 행복 같은 것은 제공할지 모르지만 아무런 이익이 없다. 그런 삶은 닙바나의 행복 같은 출세간의 행복을 제공하지 않는다. 출세간의 행복은 오직 도와 과의 지혜에 의해서만 즐길 수 있다.

 최초의 설법에서 붓다께서 감각적 즐거움을 누리는 자는 범부다라고 선언했다. 그는 보디삿따였을 때 야소다라와 함께 감각적 즐거움을 누렸다. 그때에 그도 범부였다. 왜냐하면 감각적 즐거움을 누리는 것은 중생의 삶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우리의 보디삿따뿐만 아니라 모든 보디삿따에게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여기 청중 가운데에도 많은 보디삿따들이 있을 것이다. 주의 깊게 생각해보라. 여기 보디삿따들은 범부인가 아니면 성인인가? 여러분들은 이미 그 대답을 알고 있다.


질문4.2 : 이 명상 코스를 끝마친 후에 도와 과의 지혜를 얻을 수 있습니까? 그렇지 않다면, 왜 그렇습니까?


대답4.2 : 얻을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은 자신의 바라밀에 달려있다. 바흐야 다루끼리야의 경우를 예로 들어보자. 그는 까사빠 붓다(가섭불) 재세시에 사마타 위빠사나를 상카라에 대한 평온의 지혜까지 수행했다. 그러나 어떠한 도나 과의 지혜에 도달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빠두뭇따라 붓다로부터 수기를 받았기 때문이다. 그는 석가모니 붓다 재세시에 가장 빠르게 아라한에 도달했다. 바라밀이 그때에야 성숙했기 때문이다.2) 이와 같이 석가모니 붓다 재세시에 4분석지를 얻은 다른 제자들은 과거 붓다의 재세시에 상카라에 대한 평온의 지혜까지 사마타 위빠사나를 수행했었다. 이것은 자연의 법칙이다. 4분석지는 다음과 같다.


1. 의미에 대한 분석지..........................(義無碍解, attha patisambhidā ñāna)

   결과의 통찰지, 이것은 괴로움의 성스런 진리이다.

2. 담마에 대한 분석지..........................(法無碍解, dhamma paṭisambhidā ñāna)

   원인의 통찰지, 이것은 괴로움의 일어남의 성스런 진리이다.

3. 언어에 대한 분석지.........................(詞無碍解, nirutti paṭisambhidā ñāna)

   언어에 대한 지혜, 특히 빨리어 언어.

4. 지혜의 종류에 대한 분석지...........(弁無碍解, paṭibhāna paṭisambhidā ñāna)

   위의 3가지 분석지를 잘 아는 통찰지.


 4분석지를 갖추는데는 5가지 원인이 있다.3)


1. 증득(adhigama) : 아라한 도와 과 또는 다른 도와 과를 증득하는 것.

2. 경전의 통달(pariyatti) : 경전을 기억하고 통달하는 것.

3. 청문(聽聞, savana) : 설법을 주의 깊고 경건하게 듣는 것.

4. 질문(paripuccha) : 경전이나 주석서에서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을 질문하는 것.

5. 전생의 노력(pubbayoga) : 과거 붓다 재세시에 상카라에 대한 평온의 지혜까지 수행한 것.

 

 금생에 수행한 사람이 닙바나를 얻지 못한다면, 그들의 바라밀이 충분히 성숙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과거의 붓다로부터 수기를 받았거나, 미래의 아리메테야 붓다 재세시에 윤회로부터 벗어나겠다고 서원을 세운 것이 그 이유일 수도 있다. 예를 들면, 야소다라와 같은 날 빠리닙바나에 들었던 2000명의 비구니가 있었다. 디팡카라 붓다 재세시에 그들은 석가모니 붓다 재세시에 윤회로부터 벗어나겠다고 서원을 세웠었다. 그래서 그들은 디팡카라 붓다(연등불) 시대로부터 석가모니 붓다시대까지 4아승지겁하고 십만겁 동안 윤회에 머물러 있었다. 일반 아라한이 되기 위해서는 그렇게 긴 기간이 필요하지 않다. 그러나 2000명의 비구니는 수기를 받은 것이 아니라 서원으로 인해 매우 긴 기간동안 윤회에 머물러 있었다.


질문4.3 : 만약 명상 코스를 다 마치고도, 도의 지혜나 과의 지혜를 얻지 못했을 때, 그의 집중이 떨어진다면 통찰지 또한 떨어집니까? 심지어 죽은 후에 악도에 태어나는 경우도 있습니까?


대답4.3 : 통찰지가 떨어질 수도 있다. 그러나 아주 드물다. 오랫동안 수행하지 않으면 사마타 위빠사나가 천천히 약해질 수도 있지만 업의 힘은 여전히 내면의 에너지로서 남아있다.

 빨리 주석서에 한 예가 있다.4) 스리랑카에서 30명의 비구와 사미가 숲 속 길을 가고 있었다. 그들은 반대편 방향에서 오고 있는 한 남자를 보았다. 그의 몸은 물론 허리에 걸친 단 한 벌의 옷조차도 온통 재로 뒤덮여 마치 숯더미 같았다. 하루 일을 마치고 한 다발의 반쯤 탄 나무를 어깨에 메고 머리를 뒤로 늘어뜨린 채 샛길을 따라 오고 있었다. 그는 비구들을 보고 존경을 표하기 위해 그 자리에 섰다. 사미들은 그를 보고, “저 사람은 너의 아버지야, 너의 할아버지야, 너의 삼촌이야” 하면서 서로 농담을 즐기며 웃고 떠들었다. 그들은 그에게 물었다. “신자여 당신의 이름은 무엇입니까?” 그는 후회스러운 마음이 일어나서 잠시 동안 그들을 붙들어 두기 위해 나무다발을 내려놓고 옷을 가다듬고  마하테라(대장로)에게 존경을 표했다.

 비구들은 기다렸다. 그러나 사미들은 마하테라 앞에서도 왔다 갔다 하며 웃고 떠들었다. 그 남자는 마하테라에게 말했다.

“반테5), 당신은 나를 보고 웃는군요. 당신은 단지 가사를 걸치고 있다고 해서 비구라고 생각하고 있군요. 당신은 아직 충분한 집중과 통찰지를 가지고 있지 않군요. 나도 한때 강한 신통력을 가진 비구였다오. 나는 공기를 땅처럼, 땅을 공기처럼 다루었소. 나는 가까운 곳을 먼 곳처럼, 먼 곳을 가까운 곳처럼 다녔었오. 나는 한순간에 삼천대천세계를 다녀올 수 있었소. 당신은 원숭이 손 같은 나의 손을 봅니까?”

 그리고 한 나무를 가리키면서 말을 이었다. “저 나무 아래에 앉아서 바로 이 손으로 해와 달을 만졌었소. 나는 해와 달을 나의 발을 문지르는데 사용했소. 나의 신통력이 이랬었소. 하지만 게으름으로 이 모든 것이 다 사라져 버렸소. 태만하지 마시오. 게으름 때문에 사람들은 이같이 타락한다오. 죽는 그날까지 분투노력하시오. 나를 본보기로 삼아서, 사마타 위빠사나의 훌륭한 가르침을 수행하시오. 노력하시오, 존자여.”

 그는 이렇게 그들에게 경고했다. 그 말에 긴박감을 느낀 30명의 비구들은 그 자리에 앉아서 사마타 위빠사나를 수행했고 아라한과를 얻었다. 이처럼 사마타 위빠사나는 게으름 때문에 일시적으로 떨어질 수도 있다. 그러나 업의 힘은 여전히 남아있다.

 닙바나를 얻는 4종류의 사람이 있다. 첫 번째 종류는 빳쩨까 붓다6)이다. 이분들에 대해서는 설명하지 않겠다. 나머지 3종류는 1. 보디삿따 2. 상수제자 또는 대제자 3. 일반제자이다.


1. 보디삿따

  우리의 보디삿따는 디팡카라 붓다(연등불)께서 계실 때에, 8선정을 성취했고 5가지 영적인 힘(五神通)을 소유했고 상카라에 대한 평등의 지혜까지 수행했다. 그때 만일 그가 진정으로 닙바나를 얻고자 했다면, 디팡카라 붓다로부터 사성제(四聖諦)에 대한 짧은 문구를 듣고 빠르게 아라한에 도달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닙바나를 얻는 것만을 원하지 않고 미래의 붓다가 되고자 서원을 세웠다. 그 후에 그는 디팡카라 붓다로부터 수기를 받았다.

  디팡카라 붓다로부터 까사파 붓다의 시대까지 4아승지겁과 10만겁동안에 우리의 보디삿따는 과거 붓다의 지도하에, 아홉 생을 출가하여 비구계를 받았다. 그때마다 그는 7가지를 수행했다.7)


⑴ 삼장을 달달 외웠다.8)

⑵ 4가지 계청정을 수행했다.9)

⑶ 13가지 두타행(dhutanga)을 수행했다.

⑷ 숲 속 두타행자로써 항상 숲 속에서 머물렀다.10)

⑸ 8선정을 수행했다.

⑹ 5가지 영적인 힘(五神通)을 수행했다.

⑺ 상카라에 대한 평온의 지혜까지 위빠사나를 수행했다.


  이것이 보디삿따의 특징이다. 전지전능한 지혜를 얻기 위해서는 이 7바라밀을 닦아야 한다. 바라밀이 성숙하기 전에, 즉 디팡카라 붓다로부터 싣닫타 왕자로 태어나기까지 우리의 보디삿따는 이전의 악업으로 인해 때때로 축생으로 태어났었다. 비구로 태어난 삶과 축생의 삶은 완전히 다르다. 이것이 첫 번째 종류의 사람이다.

2. 상수제자 또는 대제자

  상수제자들도 수기를 받는다. 예를 들어 사리풋타 존자와 마하목갈라나 존자도 아노마다시 붓다로부터 수기를 받았었다. 대제자들 역시 때때로 수기를 받는다. 까사파 존자와 아난다 존자도 빠두뭇따라 붓다로부터 수기를 받았다. 이 제자들 모두 4분석지를 소유한 아라한이 되었다. 이런 종류의 아라한은 또한 훨씬 이전의 붓다 시대에 상카라에 대한 평온의 지혜까지 사마타 위빠사나를 수행했었다. 하지만 그들은 수기를 받는 때부터 우리의 붓다 시대까지, 과거의 악업으로 인해 때때로 우리의 보디삿따와 함께 4악도에 태어났었다. 이것이 상수제자나 대제자의 특징이다.11)

3. 일반제자

  만일 일반제자들이 원인과 조건의 지혜나 일어나고 사라짐의 지혜 또는 상카라에 대한 평온의 지혜까지 사마타 위빠사나를 닦았다면, 비록 금생에 어떠한 도와 과를 얻지 못했더라도 죽은 후에 4악도에 떨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이것이 주석서에 설명되어 있다.


그는 안식을 얻었다. 그는 가장 안전한 장소를 얻었다. 그는 확실한 목적지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그는 ‘낮은 수다원(cūḷasotāpañña)’이라고 부른다. 낮은 수다원은 죽은 후 하늘에 태어날 수 있다. 그때에는 4가지 일이 일어난다. 쏘따누가따 숫따에서 붓다께서는 이 4가지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12)


■하늘에 태어나자마자 그가 담마를 반추하면, 담마가 그의 통찰지에 명백해질 것이다. 그는 빠르게 닙바나를 얻을 수 있다.

■그가 통찰지로 담마를 고찰했는데 닙바나를 얻지 못했다면, 그는 하늘에서 영적인 힘을 지닌 비구나 담마를 가르치러 하늘에 온 비구로부터 담마를 듣는 동안 닙바나를 얻을 수 있다.

■그가 비구로부터 담마를 들을 기회를 얻지 못했다면, 그는 싸낭쿠마라 브라흐마와 같은 담마를 가르치는 신으로부터 가르침을 들을 기회를 얻을 수 있다. 그때에 그는 그들로부터 담마를 들음으로써 닙바나를 얻을 수 있다.

■그가 신으로부터 담마를 들을 기회를 얻지 못했다면, 그는 과거생에 동료 수행자였던 도반을 만날 기회를 가질 수 있다. 그 도반은 이렇게 말할 것이다. ‘오, 도반이여, 이것을 기억하시오. 우리가 인간 세계에서 비구로써 수행한 담마를’ 그 때에 그는 담마를 기억할 것이다. 그리고 그가 위빠사나를 수행한다면 아주 빠르게 닙바나를 얻을 것이다.


 하늘에 태어난 낮은 수다원의 예가 사마나 데와뿟따 존자이다. 그는 사마타 위빠사나를 열심히 수행한 비구였었다. 그가 수행하고 있던 도중 죽음이 일어났고 동시에 하늘에 태어났다. 그는 자신이 죽었다는 것도 모르고, 하늘의 자기 집에서 계속 명상을 하고 있었다. 그의 저택에 사는 여신들은 그를 보고 전생에 비구였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그녀들은 그의 앞에 거울을 갖다놓고 소리를 질렀다. 그가 눈을 뜨고 거울 속의 자기 모습을 보았다. 그는 신이 되는 것을 원치 않았기 때문에 매우 실망했다. 그는 오직 닙바나를 원했다.

 그래서 그는 즉시 담마를 듣기 위해 붓다에게 내려갔다. 붓다께서는 그에게 4가지 성스런 진리(四聖諦)에 대한 담마를 가르쳤다. 설법을 들은 후에 그는 수다원도와 수다원과를 얻었다.13)

 일반제자가 사마타 위빠사나를 열심히 수행해서 원인과 조건의 지혜나 일어나고 사라짐의 지혜, 또는 상카라에 대한 평온의 지혜를 얻었지만 금생에서 도와 과를 얻지 못했다면, 그는 미래에 확실히 도와 과를 얻을 것이다.

 죽는 순간에 수행자가 강한 사마타와 위빠사나를 유지하지 못할 수도 있지만, 강한 사마타 위빠사나의 선업은 좋은 표상이 그의 마음의 문에 나타나게 한다. 죽음은 선한 표상을 대상으로 일어나며, 그 선한 표상으로 인해 확실히 선처에 태어날 것이다. 그리고 거기서 닙바나를 얻을 것이다.

 그가 죽음에 가까운 자와나의 순간까지 위빠사나를 수행한다면, 그는 소따누가따 숫따에서 언급한 첫 번째 형태의 사람일 것이다. 죽음에 가까운 자와나까지 사마타 위빠사나를 수행하지 못한다면, 그는 소따누가따 숫따에서 말한 두 번째 또는 세 번째 사람일 것이다.


질문4.4 : 코스를 끝마쳤지만 닙바나를 얻지 못한 수행자는 현상에 머무는 지혜(法住智)를 얻을 수 있습니까? 만일 그렇다면, 그것이 퇴보할 수 있습니까?


대답4.4 :  그 수행자는 현상에 머무는 지혜에 도달할 수 있다.


현상에 머무는 지혜(法主智)가 첫 번째이고, 닙바나를 대상으로 하는 도의 지혜가 그 다음이다.


 이 말은 수시마 숫따에 나오는 붓다의 가르침이다.14)수시마는 유행자였다. 그는 법을 ‘훔치기’위해 붓다로부터 계를 받았다. 붓다께서는 그가 며칠 내에 닙바나를 얻게 되리라는 것을 알고 받아들였다.

 수시마는 많은 아라한들이 붓다에게 왔고, 그들이 아라한과에 도달했다는 말을 들었다. 그래서 그는 아라한들에게 다가가서 8선정과 5가지 영적인 힘(五神通)을 가졌는지 물었다. 그들은 대답했다. “아니다” ‘만일 당신들이 8선정과 5신통을 얻지 못했는데, 어떻게 아라한과를 얻었는가?’ 그러자 그들이 대답했다. “오 법우 수시마여, 우리는 순수 위빠사나 수행으로 모든 오염원을 제거하고 아라한과를 얻었다네.” 그는 이 대답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에 붓다께 가서 똑같은 질문을 했다. 그러자 붓다께서 말씀하셨다.


현상에 머무는 지혜가 첫 번째이고, 닙바나를 대상으로 갖는 도의 지혜가 그 다음이다.


 그 의미가 무엇인가? 도의 지혜는 8선정과 5신통의 결과가 아니라, 통찰지(위빠사나)의 결과이다. 오직 통찰지가 일어난 후에만 도의 지혜가 일어난다. 수시마 숫따는 통찰지와 현상에 머무는 지혜로서 언급되어 있다. 여기서 현상에 머무는 지혜란 모든 형성된 것과 조건으로 일어난 것들이 무상 고 무아라고 보는 통찰지를 의미한다. 모든 형성된 것과 조건으로 일어난 것이란 정신-물질과 그 원인이다. 정신-물질, 그 원인, 그리고 그것들의 무상 고 무아를 보는 것을 현상에 머무는 지혜라고 부른다. 그래서 현상에 머무는 지혜가 먼저이고, 닙바나를 대상으로 일어난 도의 지혜가 그 다음이다.

 그후에 붓다께서는 3가지 회전15)에 대해 설법했다. 이 법문이 끝났을 때, 수시마는 아라한에 도달했다. 그도 또한 순수 위빠사나 수행자가 되었고 그 설법의 의미를 분명히 이해하게 되었다.

 수행자가 현상에 머무는 지혜를 얻는다면, 비록 금생에 닙바나를 얻지 못한다 하더라도 통찰지는 감소하지 않을 것이다. 그의 잠재된 위빠사나의 업력은 여전히 강하다. 그가 일반제자라면 다음생에서 닙바나를 얻을 것이다.


질문4.5 : 오직 근접삼매로 출세간의 상태에 도달할 수 있습니까?


대답4.5 : 그럴 수 있다. 근접삼매 단계에서는 밝게 빛나는 빛이 있다. 그 빛으로 깔라파, 궁극의 물질, 궁극의 정신, 그리고 그 원인을 식별할 수 있다. 그러면 단계에 따라 위빠사나 명상을 계속할 수 있다.


질문4.6 : 오직 찰라삼매만으로 출세간의 상태에 도달하기 위해, 느낌에 대한 마음집중(vedānānupassanā)을 수행할 수 있습니까?


대답4.6 : 여기서 우리는 찰라삼매의 정의를 내리는 것이 필요하다. 무엇이 찰라삼매인가? 찰라삼매에는 2가지가 있다.


1. 사마타 명상에서 찰라삼매

2. 위빠사나 명상에서 찰라삼매


사마타 명상에서는 3가지 삼매가 있다.


1. 찰라삼매

2. 근접삼매

3. 본삼매


 사마타 명상에서 찰라삼매는 빠띠바가 니밋따를 대상으로 취하는 삼매를 말한다. 이것은 근접삼매 전의 삼매로 사마타 수행자에게만 해당한다.

 순수 위빠사나 수행자에게도 또한 찰라삼매가 있다. 순수 위빠사나 수행자는 일반적으로 사대요소 명상으로 시작해야 한다. 사대요소 명상을 체계적으로 수행한다면, 깔라파 또는 깔라파 속의 4대요소를 보는 근접삼매 또는 찰라삼매를 얻을 수 있다. 청정도론에서는 이런 삼매를 근접삼매라고 말한다. 그러나 청정도론 복주서에서는 이것은 비유일 뿐이고 실재 근접삼매가 아니라고 설명한다. 왜냐하면 근접삼매는 본삼매에 거의 다가간 상태이기 때문이다.

 사대요소 명상으로는 본삼매를 얻을 수 없다. 각각의 깔라파 속에서 4대요소를 볼 수 있을 때는 깊은 집중 상태이기는 하지만, 그것을 대상으로 사용해서 본삼매를 얻을 수는 없다. 이것은 2가지 이유 때문이다.


 1. 각각의 깔라파에서 4대요소를 보는 것은 궁극적 실재를 보는 것이다. 그러나 궁극적 실재를 본다는 것은 깊고 난해한 일이기 때문에 궁극적 실재를 대상으로 본삼매를 얻을 수 없다.

 2. 깔라파는 일어나자마자 사라지기 때문에 깔라파 속의 4대요소에 깊게 집중할 수 없다. 그것은 대상이 항상 변한다는 의미이다. 항상 변하는 대상으로 본삼매를 얻을 수 없다.


 따라서 깔라파 속의 4대요소를 대상으로 갖는 근접삼매는 실재 근접삼매가 아니라 찰라삼매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위빠사나에서도 찰라삼매가 있다. 이것이 청정도론의 아나파나 부분에 언급되어 있다.16) 사마타 수행자가 위빠사나를 수행하고자 할 때, 본삼매를 얻은 수행자는 초선정에 들어간다. 이것이 사마타이다. 초선정에서 나와서, 초선정의 34가지 정신 현상(상카라)을 식별한다. 그리고 선정에서의 상카라가 일어나고 사라짐을 봄으로써 무상 고 무아임을 관찰한다. 이선정, 삼선정, 사선정에서도 이와 마찬가지이며 여전히 집중이 있다. 그는 선정의 정신현상이 무상 고 무아라는 것에 집중한다. 그때의 집중은 깊고 심오하기 때문에 다른 대상으로 옮겨가지 않는다. 이 삼매가 찰라삼매이다. 왜냐하면 대상이 일어나자마자 사라지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방식으로 궁극적 정신-물질과 그 원인을 무상 고 무아로 보는 위빠사나 수행을 할 때, 마음은 이 대상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그의 마음은 그 특징 중 하나에 깊게 침잠해 있기 때문이다. 이 집중 또한 찰라삼매라 부른다.

 여기서 궁극적 정신-물질과 그 원인의 무상 고 무아를 온전히 보는 것이 위빠사나 찰라삼매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궁극적 정신-물질과 그 원인을 보지 않고 어떻게 위빠사나 찰라삼매가 있을 수 있겠는가? 그것은 불가능하다. 그래서 수행자가 사마타 명상을 하지 않고 이것을 볼 수 있다면 사마타 명상은 불필요하다. 그러나 볼 수 없다면, 그는 사마타 명상을 개발해야 한다. 왜냐하면 충분한 집중만이 궁극적 정신-물질과 그 원인을 볼 수 있게 하기 때문이다.

 칸다 쌍윳따의 사마디 숫따에서 붓다께서 말씀하셨다.17)


비구여, 삼매를 개발해야 한다. 충분한 삼매가 있다면 현상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오온 그리고 그 원인과 소멸을 알기 위해 삼매를 개발해야 한다. 오온이 무상 고 무아임을 알기 위해 삼매를 닦아야 한다. 오온의 소멸은 아라한도와 빠리닙바나에 도달할 때에 볼 수 있다.

 또한 삿짜 쌍윳따의 사마디 숫따에서 붓다께서는


사성제(四聖諦)를 알기 위해서 삼매를 개발해야 한다’


고 말씀하신다.18)

 이제 수행자가 느낌만으로 식별하기를 원한다면, 그는 붓다께서 말씀하신 다음 사실을 알아야 한다.


비구여, 비구가 모든 정신-물질과 그 원인을 3가지 통달지(parinna)에 의해 알지 못한다면, 닙바나에 도달할 수 없다.

비구여, 3가지 통달지에 의해 그것들을 아는 자만이 닙바나에 이른다.


 쌍윳따 니까야의 살라야타나 와가의 아빠리자나나 숫따에서 붓다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19)


‘통찰지와 사성제를 알지 못하고서 윤회의 끝에 도달할 수 없다.’


 그러므로 닙바나를 얻기를 원하는 수행자는 모든 정신-물질과 그 원인을 3가지 통달지에 의해 알아야 한다. 3가지 통달지(會得知)는 다음과 같다.


1. 소지(所知)로서의 통달지(知扁知)...............................(ñāta pariññā)

   이것은 정신-물질을 분석하는 지혜와 원인과 조건을 식별하는 지혜이다.20)

   이것은 모든 궁극적 정신-물질과 그 원인을 아는 통찰지이다.

2. 조사로서의 통달지(度扁知).........................................(tīrana pariññā)

   이것은 이해의 지혜와 일어나고 사라짐의 지혜이다.21)

   이것은 궁극적 정신-물질과 그 원인의 무상 고 무아의 특성을 분명히 이해하는 것이다.

3. 번뇌의 끊음을 위한 통달지(斷遍知)..........................(pahānapariññā)

   이것은 사라짐의 지혜로부터 도의 지혜까지 윗 단계의 지혜이다.22)


 이 두 숫따, 아빠리자나나 숫따와 쿠다가라 숫따에서의 가르침은 매우 중요하다. 그래서 수행자가 느낌에 대한 마음집중으로 시작하는 위빠사나 명상을 원한다면, 다음과 같은 사항에 주의해야 한다.


1. 궁극적 물질을 식별해야 한다.

2. 느낌만을 식별하는 것으로는 충분치 않다. 육문(六門)인식과정에서 일어나는 느낌과 함께 모든 정신 현상도 또한 식별해야 한다.


 사실 하나의 현상만을 식별함으로써 깨닫는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금생이나 전생에서 다른 모든 현상을 식별한 경우에는 가능하다.

 사리풋다 존자를 예로 들어보자. 그는 앗싸지 존자로부터 한 문장의 가르침만을 듣고 수다원이 되었다. 그 후 비구가 되어 명상을 시작했다. 아누빠다 숫따23)에서 붓다께서는 사리풋다 존자가 어떻게 선정 상태에서 정신현상을 식별하는데 능숙하게 되었는지 설명하신다. 그는 비록 열심히 명상했지만 아라한과를 얻지 못했다. 어느 날 붓다께서는 느낌(vedanā)이라는 단 하나의 현상에 대해 설명하는 디가나카 숫따를 사리풋다 존자의 조카에게 가르치셨다.24) 그때 사리풋다 존자는 뒤에서 부처님께 부채질을 해드리며 함께 그 가르침을 들었다. 그 가르침이 끝나자마자 그는 아라한이 되었고 조카는 수다원을 얻었다. 그는 오직 하나의 현상만을 숙고함으로써 아라한에 도달했다. 그러나 이것은 그가 이전에 오온을 모두 수행했기 때문이었다.

 붓다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신다. ‘비구가 모든 정신과 물질 그리고 그 원인을 3가지 통달지에 의해 알지 못하고서는, 닙바나에 이를 수 없다.’ 그러므로 수행자는 느낌만을 식별하는 것으로는 충분치 않으며, 궁극적 정신-물질을 완전히 식별하지 못한다. 여기서 ‘충분치 않다’는 말은 닙바나를 얻지 못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질문4.7 : 붓다는 대 아라한이었습니다. 그 분과 똑같은 아라한이었던 사리풋다나 목갈라나 존자와 같은 제자들 사이에는 어떤 차이가 있습니까?


대답4.7 : 붓다의 아라한도는 전지전능한 지혜(sabhaññuta ñāna)25)이고, 제자들의 아라한도는 그렇지 않다. 제자들의 아라한도에는 3종류의 깨달음이 있다.


1. 상수제자의 깨달음......................................................(aggasāvaka bodhi)

2. 대제자의 깨달음..........................................................(mahāsāvaka bodhi)

3. 일반제자의 깨달음......................................................(pakatisāvaka bodhi)


 제자들의 아라한도는 때로는 4분석지이고, 때로는 육신통(六神通)26)이고, 때로는 삼명(三明)27)이고, 때로는 순수한 아라한도이고, 때로는 양면해탈(兩面解脫)이고, 때로는 혜해탈(慧解脫)이다28) 예를 들어 사리풋다 존자나 마하 목갈라나 존자는 전지전능한 지혜가 아니다. 반면에 붓다의 아라한도는 전지전능한 지혜뿐만 아니라 붓다의 9가지 특징과 다른 형태의 지혜를 모두 갖춘 것이다.

 또 다른 차이점은 붓다는 성숙한 바라밀로 인해 스승 없이 스스로 도와 과 그리고 전지전능한 지혜를 얻었다. 그러나 제자들은 붓다나 붓다의 제자로부터 사성제에 관한 법문을 들음으로써 도와 과의 지혜를 얻을 수 있다. 그들은 스승 없이 스스로 깨달을 수 없다. 이것이 차이다.


질문4.8 : 중음신(中陰身)은 무엇입니까?


대답4.8 : 테라바다 삼장에 따르면, 중음신 같은 그런 것은 없다. 죽음의 마음(cuti citta)과 재생연결식(patisandhi citta) 사이에는 어떠한 심찰라도 없고, 중음의 삶 같은 어떤 것도 없다.29) 사람이 죽어서 하늘에 태어난 경우에 죽음의 마음과 신으로의 재생연결식 사이에 심찰라도 없으며 중음의 삶 같은 어떤 것도 없다. 이와 같은 방식으로 사람이 죽어서 지옥에 떨어졌다면, 죽음의 마음과 지옥에서의 재생연결식 사이에 중음의 삶 같은 그런 것은 없다. 그는 죽음 후에 곧바로 지옥으로 간다.

 이 중음신에 관해서는 사람이 죽어서 잠시 아귀계에 머물렀다가 다시 인간으로 태어났을 때 거론되는 문제이다. 아귀의 삶을 중음의 삶으로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아귀의 삶은 결코 중음의 삶이 아니다. 실제로 일어난 것은 이렇다. 현재의 죽음의 마음 후에 아귀로의 재생연결식이 일어났다. 아귀의 죽음의 마음 후에 다시 인간으로 재생연결식이 일어났다. 악업의 업력이 끝났을 때, 결과를 일으킬 준비가 되어있는 또 다른 선업에 의해 다시 인간으로 재생연결식이 일어났다.

 그래서 윤회나 연기의 법칙을 볼 수 없는 사람은 아귀계의 짧은 삶을 중음의 삶으로 오해할 수도 있다. 통찰지로 연기를 식별할 수 있다면 이 잘못된 믿음은 사라질 것이다. 그러므로 통찰지로 연기를 식별해야 한다. 그러면 중음신 같은 문제는 사라질 것이다.30)


질문4.9 : 아나파나 사띠와 사대요소 명상은 같은 것입니까? 왜 우리는 아나파나 사띠 후에만 사대요소 명상을 수행해야 합니까? 


대답4.9 : 아니다. 방법은 같지 않다. 당신이 위빠사나를 수행하고자 한다면, 먼저 정신과 물질을 식별하고 2번째 그 원인을 식별해야 한다. 물질을 식별하기 위해서는 사대요소 명상을 해야 한다. 위빠사나에는 2가지가 있다. 물질의 식별과 정신의 식별이다. 붓다께서 물질의 식별을 가르치실 때 항상 사대요소 명상을 가르치셨다. 그래서 물질을 식별하는 수행을 하고자 한다면, 붓다의 가르침에 따라 사대요소 명상을 해야 한다. 사대요소 명상을 할 때 아나파나 사선정과 같은 깊은 삼매가 있으면 더욱 좋다. 왜냐하면 강한 집중이 궁극적 정신-궁극적 물질과 그 원인을 분명하게 볼 수 있게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나파나 사띠 같은 사마타 수행을 원치 않는다면, 사대요소 명상을 곧바로 들어갈 수 있다. 거기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이미 이전의 질문에서 이 문제에 대해 이야기한바 있다.


질문4.10 : 사야도께서 명상으로 경험하는 빛을 과학적으로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대답4.10 : 명상에서 보이는 빛은 무엇인가? 심장토대에 의존해서 일어나는 모든 마음은 마음에서 생긴 깔라파를 생성한다. 하나의 마음은 마음에서 생긴 깔라파를 많이 생성한다. 심장토대에 의존하는 마음 중에서 사마타 명상의식과 위빠사나 명상의식은 훨씬 더 강하다. 그 마음은 마음에서 생긴 깔라파를 많이 생성한다.

 이 깔라파를 분석하면 거기에는 8가지 물질(땅의 요소, 물의 요소, 불의 요소, 바람의 요소, 색깔, 냄새, 맛, 영양소)이 있다. 그중 색깔은 밝은 빛을 낸다. 사마타 명상의식과 위빠사나 명상의식이 매우 강하면, 색깔은 훨씬 더 밝은 빛을 낸다. 이 깔라파들이 동시에 그리고 연달아서 일어나기 때문에, 하나의 깔라파 속의 색깔과 다른 깔라파 속의 색깔은 서로 가까이서 전구처럼 빛을 낸다.

 사마타 명상의식과 위빠사나 명상의식에 의해 생성된 각 깔라파 속에는 불의 요소가 있다. 그것 또한 많은 깔라파를 생성한다. 이것은 불의 요소(온도)에 의해서 생성된 것이기 때문에 온도에서 생긴 깔라파라고 부른다. 이것은 안으로 뿐만 아니라 밖으로도 일어난다. 이 깔라파를 분석하면 거기에 똑같은 8가지 물질이 있다. 그중 하나인 색깔이 사마타 명상의식과 위빠사나 명상의식의 힘으로 인해 빛을 낸다. 그리고 한 색깔의 빛과 다른 색깔의 빛이 전구처럼 가까이서 일어난다.

 마음에서 생긴 물질과 온도에서 생긴 물질이 동시에 일어난다. 마음에서 생긴 색깔 물질은 안으로만 일어나지만, 온도에서 생긴 물질은 안팎으로 일어나서 사마타 명상의식과 위빠사나 명상의식에 의해서 시방세계 또는 우주 또는 더 멀리 퍼져나간다.

 붓다의 정신과 물질을 분석하는 지혜는 삼천대천세계까지 빛을 낼 수 있다. 아누룻다 존자의 천안의식은 일천대천세계까지 빛을 낼 수 있다. 다른 제자의 통찰지는 1요자나31) 또는 2요자나 등등까지 빛을 낼 수 있다.

 일반적으로 많은 수행자들이 일어나고 사라짐의 지혜에 도달했을 때 이 빛이 깔라파의 그룹이라는 것을 깨닫지만 사마타 명상을 수행하는 동안에는 그것을 모른다. 왜냐하면 이 깔라파들이 매우 미세하기 때문이다. 사마타 명상만을 수행할 때에는 이 깔라파를 보고 이해하기 쉽지 않다. 확실히 알기를 원한다면 일어나고 사라짐의 지혜를 얻도록 노력해야 한다. 스스로 체험하는 것이 진짜 과학적인 방법이다.


질문4.11 : 몸의 32부분을 식별한 사람이 눈을 뜨고서도 다른 사람의 32부분을 볼 수 있습니까?


대답4.11 : 경우에 따라서 그럴 수 있다 그러나 초심자는 눈을 뜨고서 몸 밖을 볼 수 있을 뿐이다. 몸의 내부는 통찰지의 눈으로만 볼 수 있다. 과학적으로 알기를 원한다면 자신의 통찰지로 보아야 한다.

 뼈에 대한 명상의 대가였던 대장로 마하띳싸 존자는 과거생의 수행으로 눈을 뜨고서 뼈를 볼 수 있었다. 자기 내부의 뼈에 대한 혐오감을 대상으로 항상 초선정까지 수행했다. 그리고 그 선정으로 위빠사나를 수행했다. 그는 정신-물질 그리고 그 원인과 그것들의 무상 고 무아의 특성을 식별했다. 이것이 그가 항상 하는 수행방법이었다.

 어느 날 그는 아누다라뿌라에서 마하가마 마을까지 탁발을 나갔다. 그 길에서 한 여인을 만났는데, 그녀는 그의 주의를 끌기 위해 큰소리로 웃음을 터뜨렸다. 이 소리를 듣고 존자는 그쪽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는 그녀의 이빨을 보았고 그것을 대상으로 뼈에 대한 명상에 주의를 기울였다. 이전의 끊임없는 수행 때문에 그는 그녀를 여자로 보지 않고 뼈 무더기로 보았다. 그는 오직 뼈만 보았을 뿐이다. 그는 다시 자기 내부의 뼈에 주의를 돌리고서 초선정에 들어갔고 그 초선정으로 그는 빠르게 위빠사나를 수행했다. 그래서 그는 길 위에 선채로 아라한과를 얻었다.

 그녀는 남편과 싸우고 자신의 집을 떠나 친정집으로 가던 길에 마하띳싸 장로를 만났다. 그녀의 남편이 뒤쫓아오다 마하띳싸 장로에게 물었다. “이 길을 가는 한 여인을 보지 못했소?” 장로께서 대답했다. “오 신자여, 나는 여자도 남자도 보지 못했소. 단지 이 길을 지나가는 하얀 뼈 무더기를 보았을 뿐이오.”

 이 이야기는 청정도론 지계의 장에 언급되어 있다.32)

 마하띳싸 장로처럼 뼈에 대한 명상을 완전히 수행한다면 눈을 뜨고서 다른 사람의 뼈를 볼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