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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독!경전,법문자료/2. 경전자료

밀린다왕문경

밀린다왕문경


“밀린다의 물음”으로 번역될 수 있는 빠알리본 밀린다판하가 밀린다 왕문경 입니다. 이 책은 기원전 2세기  후반에 서북인도를 지배하고 있던 그리스인 국왕 밀린다와 유명한 불교논사인 나가세나 장로가 불교의 교리에 대하여 묻고 대답하는 형식으로 이루어진 것으로서 마침내 왕이 출가하여 아라한과를 성취한다는 내용으로 구성된 것으로서 천도재 관련주제만 가려서 실었습니다.


목      차


1. 밀린다 왕과 장로의 전생 이야기

2. 시간은 존재 하는가?

3. 영원한 시간은 어떻게 존재하는가?


4. 시간의 시원(始原)은 인식되지 않는다.

5. 윤회하는 생존은 시작이 없다.

6. 윤회하는 생존이 성립하는 근거


7. 윤회에 관하여

8. 윤회의 주체

9. 사후(死後)다시 태어나기까지 시간


10. 업(業)은 어디에 있는가?

11. 이상의 경지, 열반(涅槃)은 지멸(止滅)인가?

12. 누구나 열반을 얻는가?

13. 열반이 즐거움(安樂)이란 것을 어떻게 아는가?



1. 전생이야기


옛날 카아샤파 부처가 불법을 펴고 계실 때, 갠지스 강 근방에 많은 비구들이 살고 있었다. 계율과 본분을 잘 지키는 비구들이 아침 일찍 일어나, 긴 빗자루를 들고 마음속으로 부처님의 공덕을 외우며 경내의 청소를 하는 것이 일과의 하나였다. 쓰레기가 모여 산더미처럼 쌓였다. 어느 날, 한 비구가 사미에게 그 쓰레기 더미를 치우라고 말했다. 그러나 사미는 못 들은 척하고 지나가 버렸다. 비구는 그를 아주 고집 센 풋내기로 알고 화를 내며 빗자루로 때렸다. 사미는 감히 거역할 수 없는 두려움 때문에 울면서 그 일을 해치웠다.


그리고 사미는 최초의 발원을 세웠다.

"이 쓰레기를 치우는 공덕으로 열반에 이를 때까지 다시 어디에 태어나든지, 한낮 태양처럼 커다란 위력과 광채를 갖게 해 주십시오" 라고. 그는 쓰레기를 치우고 갠지스 강가로 목욕하러 나갔다.

거기서 그는 강물이 세차게 물결치는 것을 보고 두 번째 발원을 세웠다. "열반에 이를 때까지 다시 어디에 태어나도 갠지스 강 물결이 파도치는 것처럼 척척 대답하는 말재주와 다할 줄 모르는 말재주를 갖게 해 주십시오" 라고. 그런데 그 비구도 빗자루를 헛간에다 치워 놓고 목욕하러 갠지스 강가를   배회하다가 우연히 그 풋내기 사미가 발원하는 소리를 듣게 되었다.


그때 그는 마음속으로 사미도 저렇게 발원을 하는데, 나라고 어찌 발원을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하고 발원을 세웠다.


"열반에 이를 때까지, 어디에 태어나든지 갠지스 강의 세찬 파도와 같이 다할 줄 모르는 말재주를 갖게 해 주시고, 저 사미가 묻는 하나하나의 질문과 난제를 환하게 풀어 줄 수 있는 능력을 갖게 해 주십시오." 하였다.


이 두 사람은 각기 천상과 인간계를 윤회하면서, 한 부처의 출현에서 다음 부처의 출현까지의 기간을 지냈다. 그런데 카아샤파 부처에 의하여 이들의 미래는 다음과 같이 예언되었다.


"내가 죽은 5백 년 뒤, 두 사람은 다시 이 세상에 태어날 것이다.

그리고 내가 가르친 오묘한 진리와 계율은 두 사람의 문답과 비유의 적용으로  풀기 어려운 실마리가 풀리고 분명하게 될 것이다."라고. 뒷날 이 두 사람은 예언대로 각기 왕과 비구로 태어났다.


2. 시간은 존재하는가?


왕은 물었다.

그대는 오랫동안(長時間)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랫동안이라는(시간)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대왕이여, 과거 현재 미래를 말합니다.

도대체 시간이란 존재합니까.

존재하는 시간도 있고, 존재하지 않는 시간도 있습니다.


어떤 시간은 존재하고, 어떤 시간은 존재하지 않습니까?

대왕이여, 지나가 버렸거나, 끝나 버렸거나, 없어져버린 과거에 대해서 시간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시간은 결과를 낳거나(異熟法) 결과를 낳는 선천적인 가능성을 갖거나(異熟法), 딴 곳에 다시 태어나게 될 사상(事象)에 대해서 존재합니다.


죽어서 딴 곳에 다시 태어날 존재(有情)에는 시간이 존재하며, 죽어서 딴 곳에 다시 태어나지 않을 존재에는 시간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완전히 자유롭게 된(완전한 열반-般涅槃-에 도달한)존재에 시간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완전히 해탈(완전한 열반에  도달)했기 때문입니다.

나아가세나 존자여, 잘 알겠습니다.


3. 영원한 시간은 어떻게 성립하는가.


왕은 물었다.

나아가세나 존자여,

과거 시간의 근거는 무엇이고, 현재 시간의 근거는 무엇이며, 미래 시간의 근거는 무엇입니까?

과거 현재 미래 시간의 근거는 무명(無明 진리에 대한 무지)입니다.


무명을 반연하여 형성력(形成力=行)이 생기고, 형성력을 반연하여 식별작용(識別作用=識)이 생기고, 식별작용을 반연하여 명칭 형태(名色)    가 생기고, 명칭 형태를 반연하여 6개의 감관(六處)이 생기고, 6개의 감관(感官)을 반연하여 감관과 대상과 식별작용과의 접촉(觸)이 생기고, 접촉을 연하여

감수(感受=受)가 생기고, 감수를 반연하여 갈애(渴愛=愛)가 생기고, 갈애를 반연하여 집착(執着=取)이 생기고, 집착을 반연하여 생존 일반(有)  이 생기고, 생존 일반을 반연하여 태어남(生)이 있고, 태어남을 반연하여 늙음과 죽음과 비애와 비통과 쓰라림과 괴로움과 절망 등이 생깁니다.

이 모든 시간의 과거의 궁극점(최초의 시작)은 분명히 인식되지 않습니다.


잘 대답하셨습니다. 나아가세나 존자여.

                                

4. 시간의 시원(始源)은 인식되지 않는다.


왕은 물었다.

그대는 모든 시간의 근원적 시작(始源)은 인식되지 않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비유를 들어주십시오.


대왕이여, 

어떤 사람이 조그마한 씨알 하나를 땅에 심는다고 합시다.

그 씨알은 싹이 터서 점차로 성장하고 무성하여 열매를 맺을 것입니다. 그 사람이 씨알을 받아 다시 땅에 심으면 또 열매를 맺을 것입니다. 이 종자(個體)의 연속에 끝이 있겠습니까. ?.


존자여, 그렇지 않습니다.

대왕이여, 마찬가지로 시간의 근원적 시작은 인식되지 않습니다.


다시 한 번 비유를 들어주십시오.

닭이 알을 낳고, 그 알에서 닭이 생기고 또 그 닭에서 알이 생겨납니다. 이 연속에 끝이 있겠습니까.

아닙니다. 끝이 없습니다.

대왕이여, 마찬가지로 시간의 근원적 시작은 인식되지 않습니다.


또 비유를 들어주십시오.

그때 나아가세나 존자는 땅에 원을 그려놓고 왕에게 물었다.

이 원둘레에 끝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대왕이여,

이와 같은 순환(循環)을 세존께서는, 눈(眼)과 형태(色)에 의하여 눈의 식별작용(眼識)이 생기고, 이들 셋이 화합했을 때 접촉(觸)이 생기고, 접촉을 연유하여 감수(受)가 생기고, 감수를 연유하여 갈애(愛)가 생기고, 갈애를 연유하여 갈구하는 행동(取와業)이 생기고, 행동(業)으로부터 또 다시 눈이 생겨난다.'고 하셨습니다. 연속에 끝이 있겠습니까.

끝이 없습니다.


나아가세존자는 그 밖의 감각 기관(귀, 코, 혀, 몸, 마음)의 하나하나에 대해서 거기 알맞은 순환을 들어 반문했다. 그리고 그에 대한 왕의 대답은 언제나 꼭 같았으므로 존자는 이렇게 결론지었다.

대왕이여, 그와 같이 시간의 근원적 시작은 인식되지 않습니다.

잘 대답하셨습니다. 나아가세나 존자여.


5. 윤회하는 생존은 시작이 없다


왕은 물었다.

그대가 근원적 시작은 인식되지 않는다고 할 때, 그 `근원적 시작'이란 무엇을 의미합니까.

대왕이여, 

사라져 버린 과거 시간은 모두 근원적 시작입니다.

그렇다면 그대가 근원적 시작은 인식되지 않는다고 할 때, 그 근원적 시작은 어느 것이나 인식되지 않습니까.

어떤 것은 인식되고, 어떤 것은 인식되지 않습니다.


대왕이여,

그 이전에는무명이 어떤 형태나 양태로도 전혀 존재하지 않았다고 하는, 그러한 근원적 시작은 인식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전에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 지금은 생겨나고, 생겨나기 시작하자마자 또 다시 사라져 가는 그러한 시작은 인식됩니다.


존자여, 

이전에 존재하지 않던 것이 이제 생겨나고, 생겨나자마자 곧 다시 사라져 간다면, 전후 양 끝에서 끊겨 없어지는 것입니까?


대왕이여, 

만일 그것이 양 끝에서 끊겨 없어진다면, 끊겨진 것은 증대(增大)할 수 있습니까 ? 그렇습니다. 그것은 증대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내가 묻는 것은 그것이 아닙니다. 끊긴 지점(끝)에서 다시 증대할 수 있습니까 ?

그렇습니다. 증대할 수 있습니다.


비유를 들어주십시오.

존자는 나무와 씨알의 비유를 되풀이 하고, 5온(五蘊)들이 모든 괴로움을 낳는 씨알이라고 설명했다.

왕은 아주 만족해했다.


6. 윤회하는 생존이 성립하는 근거


왕은 물었다.

생겨나는 형성력(形成力=諸行)이 있습니까?

그렇습니다.


그것은 어떤 것입니까?

눈(眼)과 형태(色)가 있는 곳에 눈의 식별작용(識)  이 있고, 눈의 식별작용이 있는 곳에 눈의 접촉(觸)이 있고, 눈의 접촉이 는 곳에 감수(受)     가 있고, 감수가 있는 곳에 갈애(渴愛=愛)가 있고, 갈애가 있는 곳에   집착(取)이 있고, 집착이 있는 곳에 생존 일반(有)이 있고, 생존 일반이   있는 곳에 생겨남(生)이 있고, 생겨남이 있는 곳에 늙음(老)과 죽음(死)과 비애와 비통과 쓰라림과  괴로움과 실망 등이 있습니다.

                                                   

이리하여 모든 괴로움이 생겨납니다.


이에 반하여

눈과 형상이 없는 곳에 눈의 식별작용이 없고, 눈의 식별작용이 없는 곳에 눈의 접촉이 없고, 눈의 접촉이 없는 곳에 감수가 없고, 감수가

없는 곳에 갈애가 없고, 갈애가 없는 곳에 집착이 없고, 집착이         없는 곳에 생존 일반이 없고, 생존 일반이 없는 곳에 생겨남         이 없고, 생겨남이 없는 곳에 늙음과 죽음과 비애와 비통과 쓰라림과  괴로움과 실망 등이 없습니다.

이리하여 모든 괴로움에 종말이 옵니다.


잘 알겠습니다. 나아가세나 존자여.


7. 윤회(輪廻)에 관하여


왕은 물었다.

나아가세나 존자여, 저 세상에 다시 태어나지 않을 사람은 그것을 알고 있습니까??

대왕이여, 그렇습니다.

그 사람은 어떻게 그것을 압니까?

저 세상에 다시 태어날 원인 즉 인(因)과 연(緣)이 정지하므로 저 세상에 다시 태어나지 않음을 압니다.


비유를 들어주십시오.

대왕이여, 

한 농부가 땅을 갈고 씨를 뿌려 곡식을 가꾸어 창고에 채워 둔 후 얼마 동안은 땅을 갈아 씨를 뿌리거나 하지 않고 저장되어 있는 곡식을 먹거나 다른 물품과 바꾸고 또 필요할 때 쓰기도 하며 살아간다고 합시다.

대왕이여, 그 농부는 이때 창고에 곡식이 가득 차 있지 않음을 알고 있겠습니까.

그렇습니다. 응당 알고 있을 것입니다.

어떻게 하여 그는 그것을 알고 있습니까?

창고를 채우는 인과 연이 정지함에 의하여 알고 있습니다.


대왕이여, 

그대 말씀과 꼭 같습니다.

저 세상에 다시 태어날 인과 연이 정지함에 의하여 사람은 저 세상에 다시 태어나지 않음을 압니다.

잘 알겠습니다. 나아가세나 존자여

  

8. 윤회의 주체(主體)


왕은 물었다.

나아가세나 존자여, 무엇이 저 세상에 바꿔 태어납니까.

명칭(名,인간의 정신 활동)과 형태(色,물질과 육체)가 바꿔 태어납니다.


현재의 명칭과 형태가 저 세상에 바꿔 태어납니까.

아닙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현재의 명칭과 형태에 의하여 선이나 악의 행위(業 카르마)가 행해지고, 그 행위에 의하여 또 하나의 새로운 명칭과 형태가 저 세상에서 바꿔 태어납니다.


존자여, 

만일 현재의 명칭과 형태 그대로 저 세상에 새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면, 인간은 악업(惡業)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장로는 대답했다.

만일 저 세상에 다시 태어나지 않는다면 인간은 악업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대왕이여,

실은 저 세상에 다시 태어나는 한, 악업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합니다.


비유를 하나 들어주십시오.

대왕이여, 

어떤 사람이 남의 망고나무(암바) 과일을 훔쳤다고 합시다. 망고나무 주인이 그를 붙잡아 왕 앞에서 처벌해 달라고 했을 때, 그 도적이 말하기를 `대왕이여, 저는 이 사람의 망고를 따오지 않았습니다.

이 사람이 심은 망고와 제가 따온 망고와는 다릅니다.

저는 처벌을 받아서는 안 됩니다.'고 한다면 왕은 어떻게 하겠습니까.

그 사나이를 처벌 하겠습니까 ?

존자여,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 사람은 마땅히 처벌을 받아야 합니다.


무슨 이유로 그러합니까.

그가 무슨 말을 하든, 처음 망고는 현재 보이지 않지만, 마지막 망고에 대해서 죄가 있기 때문입니다.


대왕이여, 

마찬가지로 인간은 현재의 명칭과 형태에 의하여 선악의 행위가 행해지고, 그 행위에 의하여 또 하나의 새로운 명칭과 형태로 저 세상 에서 새로 태어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다시 태어난 인간은 그의 업(業)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하는 것입니다.

다시 한 번 비유를 들어주십시오.


대왕이여,

어떤 사람이 남의 쌀이나 고구마를 훔쳤다고 하는 경우도 망고 과일의 경우와 똑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또 어떤 사람이 추울 때 불을 피워 몸을 녹이고 나서 불을 끄지 않고 가 버렸는데, 불이 번져서 남의 밭을 태웠다고 합시다.

밭주인이 그 사람을 왕 앞에 데리고 와 처벌을 내려 달라고 했을 때,

밭을 태운 사람이 말하기를, `대왕이여, 저는 이 사람의 밭을 태우지 않았습니다. 제가 끄지 않은 불과 이 사람의 밭 태운 불은 다른 불입니다. 저는 죄가 없습니다.'고 한다면 왕은 그 사나이에게 죄가 있다고 생각하겠습니까.


존자여, 그러할 것입니다.

어째서 그렇습니까.

그가 무슨 말을 하던 처음의 불을 원인으로 해서 일어난 다음의 불에  대하여

죄가 있기 때문입니다.


대왕이여, 

마찬가지로 인간은 현재의 명칭과 형태로 인하여 선행 악행을 하게 되고, 그 행위로 인하여 또 하나의 새로운 명칭과 형태로 저 세상에 태어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새로 태어난 인간은 그의 업(業)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하는 것입니다.


또 비유를 들어주십시오.


대왕이여, 

어떤 사람이 등불을 가지고 자기 집 꼭대기 방으로 들어가 식사를 했는데, 등불이 지붕을 태우고 이어서 마을을 태웠다고 합시다.

마을 사람들이 그 사나이를 붙잡아 `당신은 어찌하여 마을을 태웠소.'하고 물었습니다.

사나이는 `왜요, 나는 마을을 불태우지는 않았습니다.

내가 식사를 하기 위하여 밝힌 불과 마을을 태운 불은 다릅니다.' 고 대답했습니다. 그들이 입씨름을 하다가 왕에게 가서 그렇게 말한다면 왕은 어느 쪽 말이 옳다고 하겠습니까.

마을 사람들의 말이 옳다고 하겠습니다.


어째서 그렇습니까.

그 사람이 무슨 말을 하든, 마을을 태운 불은 그 사람이 식사하기 위하여 사용한 불로부터 일어났기 때문입니다.


대왕이여, 

마찬가지로 사람은 죽음과 함께 끝나는 현재의 명칭 형태와 저 세상에 다시 태어나는 명칭 형태가 다르기는 하지만, 두 번째 것은 첫  번째로부터 나온 결과입니다. 그러므로 악업(惡業)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습니다.


또 비유를 들어주십시오.

대왕이여, 

어떤 사나이가 한 소녀에게 구혼하여 값을 치르고 갔다고 합시다. 그런데 그 소녀가 장성하여 묘령의 처녀가 되었을 때, 딴 사나이가 값을 치르고 결혼했다고 합시다. 먼저 사나이가 와서 `당신은 왜 나의 아내를 데리고 갔소'라고 따졌습니다. 나중 사나이가 `나는 당신의 아내감을 데려간 것이 아닙니다.


당신이 구혼하여 값을 치른 어린 소녀와 내가 구혼하여 값을 치른 신부는 딴 여성입니다.'고 대답했다고 합시다. 그들이 입씨름을 하다가 왕 앞에서 재판을 요구한다면 왕은 어느 쪽을 옳다고  하겠습니까.

먼저 사나이가 옳다고 할 것입니다.


어째서 그렇습니까.

나중 사나이가 무슨 말을 하든 장성한 그 아가씨는 어린소녀로부터 성장했기 때문입니다.

대왕이여,

그와 같습니다.

죽음으로 끝나는 현재의 명칭 형태와 저 세상에 다시 태어나는 명칭 형태는 딴 것이긴 하지만, 저 세상 것은 이 세상 것에서 생겨납니다.

그러므로 악업(惡業)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하는 것입니다.


또 비유를 들어주십시오.


대왕이여, 

어떤 사람이 소치는 사람으로부터 우유 한 병을 사서 그에게 맡기고 가면서, `내일 가지러 오겠소.'라고 했다고 합시다.

다음 날이면 그 우유는 응유(凝乳)로 변할 것입니다.

그 사나이가 와서 우유를 달라고 하므로 소치는 사람은 응유로 변한 그대로 내주었습니다.


사나이는 `내가 산 것은 응유가 아닙니다. 내 우유병을 내 주시오'라고 했습니다.

소치는 사람은`나에겐 아무 잘못이 없습니다. 당신의 우유가 응유로 변했습니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들은 입씨름을 하다가 왕 앞에서 재판을 바란다면, 왕은 어느 편이 옳다고 하겠습니까. 소치는 사람이 옳다고 할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우유를 산 사람이 무슨 말을 하든, 응유는 그가 산 우유가 변해서 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대왕이여, 

그와 같습니다.

죽음으로 끝나는 현재의 명칭 형태는 저 세상에 태어나는 명칭 형태와 다르지만, 응유가 우유로부터 나온 결과이듯이 사람은 악업(惡業)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합니다.

잘 알겠습니다. 나아가세나 존자여


9. 사후(死後) 다시 태어나기까지의 시간


왕은 물었다.

나아가세나 존자여,

여기(이 세상)서 죽어 범천 계에 태어나는 사람과 여기서 죽어 카슈미일(迦濕彌羅 인도의 한 지방)에 태어나는 사람과 어느 쪽이 먼저 도착합니까?.

둘 다 동시에 도착합니다.

비유를 들어주십시오.

대왕은 어느 도시에서 태어났습니까.

칼라시라는 마을이 있습니다. 거기서 태어났습니다.

칼라시는 여기서 얼마나 멉니까. ?.

약 2백 요자나입니다.

카슈미일은 여기서 얼마나 멉니까.

12 요자나입니다.

대왕이여, 자아, 칼라시를 생각하시오.

생각했습니다.

자아, 카슈미일을 생각하시오.

생각했습니다.

어느 쪽이 더 빨리 생각했습니까.

어느 쪽이나 같은 시간이었습니다.


대왕이여, 

마찬가지로 여기서 죽어 범천 계에 태어나는 것이나, 여기서 죽어 카슈미일에 태어나는 것이나 동시입니다.  빠르고 늦은 것이 없습니다.

대왕이여, 말씀해 보십시오.

두 마리 새가 공중을 날고 있었는데, 한 마리는 높은 나무에 앉고 또 한 마리는 낮은 나무에 앉았다고 합시다.

두 마리가 동시에 내려앉았다면 어느 쪽 그림자가 먼저 땅에 비치겠습니까. 두 마리 그림자가 동시에 땅에 비치겠습니다.

대왕이여, 그대가 말한 경우도 꼭 이와 같습니다.

잘 알겠습니다. 나아가세나 존자여.


10. 업(業)은 어디에 있는가.


왕은 물었다.


나아가세나 존자여, 이 명칭, 형태(정신과 육체 즉, 인격적 개체)에 의하여 선행이나 악행을 짓게 되는 업(業)은 어디에 머뭅니까.

대왕이여,

그림자가 형체를 떠나지 않는 것처럼 업은 인격적 개체에 수반됩니다.

업은 `여기에 있다 또는 저기에 있다'고 지적할 수 있습니까 ?

그럴 수 없습니다.


비유를 들어주십시오.

대왕이여, 

어떻게 생각합니까.

아직 열리지도 않은 과일을 `여기 있다 또는 저기 있다'고 지적할 수 있습니까 ? 존자여, 그럴 수 없습니다.


대왕이여,

마찬가지로 생명체(個體)의 연속이 끊어지지 않는 한 `그 업이 여기 있다 또는 저기 있다'고 지적할 수 없습니다.'

잘 알겠습니다. 나아가세나 존자여.


11. 이상의 경지, 열반(涅槃)은 지멸(止滅)인가


왕은 물었다.

열반이란 제지해 없어짐(止滅)입니까 ?.

그렇습니다. 대왕이여.

어찌하여 열반이 지멸입니까 ?.

대왕이여, 

모든 어리석은 개체들은

내외 6개의 영역(감각기관과 감각대상)을 즐겨하고 반겨하고 집착 합니다. 그래서 그들의 욕정의 흐름에 끌려, 나고 늙고 죽음과 근심과 슬픔과 고통과 쓰라림과 절망으로 부터 벗어나지(解脫) 못합니다.

즉, 괴로움(苦)으로부터 해탈하지 못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대왕이여, 슬기로운 제자들은 내외 6개의 영역을 즐겨하지 않고 반겨하지도 않고 또 거기에 집착하지도 않습니다.

 

그런 것을 환희, 환영, 집착하지 않는 만큼 그에게는 애착(愛執)이 지멸(止滅)하고,

애착이 지멸하므로 집착(執着)이 지멸하고, 집착이 지멸하므로 생존 일반(生存一般)이 지멸하고, 생존 일반이 지멸하므로 태어남(生)이 없고, 태어남이 없으므로, 늙고 죽음(老, 死)과 근심과 슬픔과 고통과 쓰라림과 절망이 없어집니다.


이리하여 모든, 고통의 덩어리가 지멸합니다.

그러므로 열반은 지멸입니다.

잘 알겠습니다. 나아가세나 존자여.


12. 누구나 열반을 얻는가.


왕은 물었다.

나아가세나 존자여, 모든 사람이 열반을 얻습니까.

대왕이여, 

누구나 열반을 얻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바른 길을 걷고, 잘 알아야 할 법을 잘 알고, 완전하게 알아야 할 법을 완전하게 알며, 끊어야 할 법을 끊고, 닦아야 할 법을 닦으며, 실현(現證)해야 할 법을 실현하는 사람은 열반을 얻습니다.

잘 알겠습니다. 나아가세나 존자여.


13. 열반이 즐거움(安樂)이란 것을 어떻게 아는가.


왕은 물었다.

나아가세나 존자여,

아직 열반을 얻지 못한 사람이 열반이 얼마나 행복한 상태인가를 압니까.

그렇습니다. 알다 뿐입니까.

아직 열반은 얻지도 않고 어떻게 그것을 알 수 있습니까 ?.


대왕이여, 

그대는 어떻게 생각합니까.

손발을 잘린 적이 없는 사람들이 손발을 잘린 이가 얼마나 슬픈 일인가를 압니까. 그렇습니다. 존자여, 그런 줄을 압니다.

그들은 어떻게 그것을 압니까.  ?

손발을 잘린 사람들이 비통해 하는 소리를 듣고서 슬픈 일인 줄을 압니다.


대왕이여,

마찬가지로, 아직 열반을 얻지 못한 사람들도 열반을 체득한 사람들의 즐거운 말을 듣고 열반이 얼마나 행복한 상태인 줄을 압니다.

잘 알겠습니다. 나아가세나 존자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