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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강심론/일인전에 일인도

일인전에 일인도(1)

 


들어가는 글

『일인전一人傳에 일인도一人度』의 법공양 글은 금타金陀존사尊師님께서 지으시고 청화 큰스님께서 정리한 『금강심론金剛心論』 가운데서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반야심경』ㆍ『보리방편문』ㆍ『금강삼매송』ㆍ『해탈십육지』ㆍ『수릉엄삼매도결』 등을 뽑아서 어려운 한문 투의 글을 한글세대도 쉽게 읽을 수 있게 한글로 쉽게 풀었으며, 어려운 전문용어는 일일이 사전을 찾아서 주를 달았습니다. 전해지는 말에 의하면 금타金陀존사尊師님께서는 1898년 무술년戊戌年 윤삼월 이십구일 고창군 무장茂長에서 태어나셨는데 어릴 때부터 이미 신동神童이라고 소문이 났다고 합니다. 십사 세에 보통학교를 졸업하고 모친과 외할아버지를 찾아가 인사를 올리니 외할아버지께서 흐뭇해하시면서 “요사이 관에서 전답 토지를 자세히 측량하여 등기하라 하는데, 너는 바로 측량하라” 하니, 당신은 모른다고 말하기가 자존심이 상해서 ”그리하겠습니다.”하고 대답하고 물러 나왔으나‘측량測量이란 말도 오늘 처음 들었는데 어찌 측량測量하겠는가’ 생각하고 동갑인 외삼촌에게 측량이 무엇인가 물었답니다. 그러자 외삼촌이 고창高敞에 일본인이 경영하는 농장에 측량기가 있다고 하는데 우리가 빌려 달라면 빌려줄 것이니 사람을 보내자 하여 사람을 보내어 측량기계를 빌려다 측량기계에 딸려온 설명서를 그날 밤 삼분의 이 정도 읽고 다 알게 되어 다음날 아침부터 측량하여 만석의 전답을 측량하였다고 합니다.

 22세에 기미년 만세사건 때 고창 무장茂長에서 만세주창萬歲主唱에 실패하고 고창 문수사로 피신하고 있던 중 우연히 큰방에서 금강경金剛經을 수십 번 읽고 발보리심發菩提心하여 출가를 결심, 곧 바로 장성 백양사 만암曼庵(1876-1956) 대종사를 은계사恩戒師로 득도得度하였습니다. 그 후 십팔 년을 무자無字 화두로 참선정진 하였으나 별 소득 없음別無所得을 개탄慨歎하고 1936년 병자년丙子年 삼십 구세에 백양사白羊寺 운문암雲門庵 동안거 결제를 하고 독방에서 원각경 삼정관三淨觀 이십오정륜二十五定輪으로 용맹정진하시 던 중에 관심觀心삼일 만에 선정 중에서 보리방편문菩堤方便門을 얻어 보리방편문에 의지하여 정진 일 개월 후에 견성오도見性悟道하였다고 합니다. 전해지는 말에 의하면 선정禪定 중에 용수보살龍樹菩薩님을 친견하고 보리방편문을 전해 받았다고 합니다. 깊은 삼매三昧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다고 합니다. 남방의 마지막 아라한이라는 아짠문스님(1870~1950)도 선정 중 부처님 당시의 많은 아라한을 친견했다는 말이 있고 중국의 허운虛雲스님(1840~1959)도 글에 보면 6조 혜능스님(638-713)을 친견하였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이 거짓이 아니라고 생각이 드는 것이 학자들이 말하기를 용수보살님이 염불선을 하였고 삼신三身을 관하는 수행을 하였다고 합니다.(「염불의 원류와 전개사」 이태원 저 참조) 보리방편문의 핵심은 삼신일불三身一佛아미타불阿彌陀佛입니다. 또 1936년 병자년丙子年 동안거 정진 때 선정 중에 금색두루마기 가운데 타 한 자를 보고 금색金色자와 글자 타자를 택하여 금타金陀라고 개명改名하였다고 합니다. 그 후 금타金陀존사尊師님께서는 전북 부안 월명암에서 일 안거를 지낸 것을 제외하고는 정읍 내장사 벽련암과 백양사 운문암에서 보임정진保任精進하시였으며, 1944년 갑신년甲申年에는 수릉엄삼매首楞嚴三昧를 성취하시고 “수릉엄삼매도”와 “도결圖訣”을 작성하시고 이어서 “수릉엄삼매도결”을 대로 재편성하여 일인전一人傳(한 사람에게 전하여) 일인도一人度(한 사람을 제도한다)라 이름하고 인연 따라 발송하였다고 합니다. 1948년 무자년戊子年 해제와 더불어 운문대중을 삼조三組로 나누어 일 개월 간 탁발을 보내시고 음력 정월이십사일 정오 십삼분에 시봉 몇 분만 보는 가운데 입적열반入寂涅槃 하셨습니다. 그 날은 눈과 비가 섞여서 내렸다하며 화장터는 사흘 동안이나 베 폭 너비의 서기瑞氣가 하늘로 뻗쳐 있었다고 합니다. 그때는 척박한 일제의 식민통치 시절이었는데, 그 시절이 얼마나 힘들었는가는 당대의 선지식이라고 칭송하는 경허鏡虛선사님(1849-1912) 이나 수월水月스님(1855-1928)의 삶에서도 알 수가 있습니다. 당신도 운문암 산꼭대기에서 자신을 철저히 감추고 산 삶이기에 금타金陀존사尊師님의 삶과 공부의 경계는 산꼭대기에서 함께 정진精進하였던 극소수의 스님들만 알 뿐입니다. 그나마 극소수의 함께 정진精進하였던 스님들도 6.25동란으로 흩어지고 원적圓寂하시고 단편으로나마 후학들이 알 수 있는 것은 청화 큰스님께서 흩어져 있는 메모지를 모아서 편집한 『금강심론金剛心論』의 글뿐입니다. 그러나 남겨진 글 가운데서 대화상께서  수릉엄삼매首楞嚴三昧를 얻었기에 수릉엄삼매도首楞嚴三昧圖를 작성 할 수 있는 것이고 천안天眼을  얻었기에 우주의 본질本質과 형량形量 이란 글을 지을 수가 있는 것 입니다.

 『반야심경』ㆍ『보리방편문』ㆍ『금강삼매송』ㆍ『해탈십육지』ㆍ『수릉엄삼매도결』 등은 객관적인 시각으로도 깨달음을 얻은 분의 수행修行과 증오證悟의 경계에서 나온 글임을 의심치 않습니다. 이 소중하고 귀한 글을  모두 소화하여 정리하기에는 지혜가 부족함을 통감하면서 비천한 살림살이로 제가 할 수 있는 만큼 정리하였습니다. 저의 비천한 살림살이를 바탕으로 좀 더 정밀하게 정리하실 분이 나와 주시면 하는 마음이 간절합니다.  그리고 수행하시는 분들께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는 발원으로 법공양을 올립니다.


南無阿彌陀佛, 南無阿彌陀佛, 南無阿彌陀佛,


           2006년 가을 제주도 자성원自性苑에서

                           미타행자彌陀行者 본연本然合掌


10차-04. 해탈16지.hwp
0.13MB
10차-01. 일인전에 일인도.hwp
0.17MB
10차-02. 반야심경.hwp
0.09MB
10차-03. 보리방편문.hwp
0.26M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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