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염불수행자료/염불수행대전

6. 정토법문(134)


 

* 육조 혜능선사는 「남의 허물을 말하지 마라. 남의 허물을 보면 곧 자기 허물은 그보다 크다.」 라고 하였다.

 

* 「백 가지 허물을 봤을 때 백 가지 허물을 덮어주면 백가지 선업이 쌓인다.」 라는 말씀이 있다.

 

* 〈예념미타도량참법〉에서 「진실로 범부들은 번뇌가 무거워서 탐애(貪愛)하고 혼미하여 죄 짓기를 마음대로 하며, 지옥의 고통이 길다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평생을 방일(放逸)하게 오직 사치와 화려함만을 즐긴다. 닦아 나아갈 줄을 알지 못하다가 임종이 가까워서야 비로소 귀의하나, 비록 정성을 다하려 하나 마음이 어찌 집중이 되겠는가. 어리둥절한 사이에 의지를 잃으면 의지할 법이 없어 고스란히 삼악도로 들어가나니, 가엾고 불쌍하여 의지할 데도 없고 기댈 데도 없고 나아갈 곳도 돌아갈 곳도 없다.」 라고 하였다.

 

* 고인古人이 말하기를, 「늙기를 기다려 도를 배우려고 하지 말라. 외로운 무덤은 모두 젊은 사람들의 것이니!」하였습니다. 사람은 늙어지면 온갖 고통이 따라오니, 귀는 잘 들리지 않고, 눈은 침침하며, 팔 다리는 힘이 없고, 귀는 잘 들리지 못하며, 잠도 잘 안 오고, 잘 걷지도 못하는데, 이런 고초는 젊은 사람들은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우리도 젊을 때에는 여러분과 마찬가지였습니다. 늙어서 멍청해진 것을 보면 도무지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말을 해도 잘 알아듣지 못하고 눈물 콧물이 흐르는 것을 보면 싫어하는 마음이 생기고, 노인과 함께 사는 것을 겁냈습니다. 지금은 제가 늙고 보니 비로소 노인의 괴로움을 알겠는데, 사람은 늙으면 하루 같지 않습니다.

 

저는 (중국 공산당이 사찰에 난입해 스님들을 죽이고 나를 고문한) 운문사변의 소란이 있고 난 뒤부터는 아닌 게 아니라 하루가 하루 같지 않았습니다. 어느 새 하루아침에 병석에 누워 있게 되어 온갖 고통이 저를 휘감으며 핍박해 왔습니다. 도업道業을 이루지 못해 생사를 끝내지 못했으니, 숨 한 번 내쉬고 돌아오지 않으면 또 태어나야 하니 말입니다. 「아무 것도 가져가지 못하니, 업業만 남아서 생을 따른다.」고 했습니다. 젊어서 닦지 않고서 만년晩年에야 이런 줄을 알게 됩니다.

 

동산洞山선사께서 어떤 스님에게 물었습니다. 「세간에서 무엇이 가장 괴로운가.」 그 스님이 답하기를, 「지옥이 가장 괴롭습니다.」 했습니다. 동산선사는 「그렇지 않네. 이 옷을 입고서 큰일을 밝히지 못하는 것이야말로 괴로운 것이네.」 하였습니다. 큰일을 밝힐 수 있다면 지옥인地獄因이 없으므로 지옥은 괴롭다고 할 수 없고, 자기 마음을 알지 못하는 것이 가장 괴로운 것입니다.

 

큰일을 밝히고자 하면 힘써 정진해야지 어영부영 지내면 안 됩니다. 낮에 인연에 응하고 일을 만날 때 주인 노릇을 해야 합니다. 낮에 주인 노릇을 할 수 있어야 비로소 꿈속에서도 주인 노릇을 할 수 있고 나아가 병중에도 주인 노릇을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주인 노릇을 할 수 있으려면 평상시에 억지로라도 주인 노릇을 할 수 있으면 도를 깨쳐서 생사를 끝내기 쉽습니다. 하지만 도를 깨치지 못하면 생사는 끝낼 수 없습니다.

 

도를 깨치기는 어렵지 않습니다. 요컨대 생사심生死心이 간절해야 하고, 오래도록 견고하게 도를 향하는 마음을 갖추어서 죽을 때까지 물러서지 않아야 합니다. 금생에 물러서지 않으면 비록 깨치지 못한다 하더라도 다음 생에 다시 노력하게 되니, 어찌 깨닫지 못할 리가 있겠습니까 힘써 정진하고 참회심과 견고심을 내어, 오늘 이랬다 내일 저랬다 하지 마십시오. 한 문門에 깊이 들어가야 수행이 됩니다.

- 허운虛雲선사

 

* 동산(洞山) : 중국 선종 오가(五家)의 하나인 조동종(曹洞宗)의 종조인 동산양개(洞山良价)선사를 말한다. 양개선사는 「부처와 조사 보기를 원수같이 하여야만 비로소 공부하게 된다.」 하였다.

 

* 동산양개선사가 출가를 하면서 어머니에게 쓴 편지가 〈치문경훈〉에 수록되어 있는데, 소개한다. 「ⵈ(앞부분 생략)ⵈ 어려서는 곧 젖 먹여 준 애정이 무거워 길러주신 은혜가 깊으오니, 설사 재물을 가져가다 드리더라도 끝내 보답하기가 어려울 것이요, 설령 희생(犧牲)을 써서 받들어 봉양하더라도 어찌 오래도록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기에 효경(孝經)에서도 “날마다 세 가지의 희생을 써서 봉양하더라도 여전히 효(孝)를 다하지 못한다.” 라고 하였으니, 서로 간에 끌어당겨 (세속사에) 빠져 들어 길이 윤회에 들어가기에, 끝없는 은혜에 보답하려 한다면 출가의 공덕과 같은 것은 없을 것입니다.

 

(출가하여) 생과 사에 대한 갈애(渴愛)의 강(江)을 끊어버리고, 번뇌의 고해(苦海)를 건넌다면, 천생(天生)의 부모에게 보답하고, 만겁의 어버이에게 보답하는 것이어서, 삼계의 네 가지 큰 은혜를 갚지 못함이 없을 것입니다. 때문에, “한 아들이 출가하면 9족(九族)이 천상에 태어난다.” 라고 하였으니, 저는 금생의 신명(身命)이 다하도록 집에 돌아가지 않기를 맹세하고, 영겁의 육진(六塵)과 육근(六根)을 가지고 단박에 반야(般若)를 밝히려 합니다.

 

삼가 생각하옵건대, 부모님께서는 마음으로 들으시고 기껍게 버리시어, 사사로운 마음으로 세속의 인연을 부여잡지 마시고, 정반왕(淨飯王 : 석가모니부처님의 아버지)을 배우시며 마야부인(석가모니부처님의 어머니)을 본받으소서. 다른 때에 훗날 부처님 회상(會上)에서 서로 만날 것이기에 지금은 잠깐 서로 이별해야겠습니다. 저는 부모님에게 짓는 오역죄를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세월이 사람을 기다려 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 몸이 금생에 피안(彼岸)에 부랴부랴 가지 않는다면, 다시 어느 생을 기다려서 이 몸을 피안으로 건너겠는가.” 라는 말이 있습니다. 삼가 부모님께서는 부디 저를 기억하지 마소서.」

 

* 허운선사는 「석가여래는 49년간 법을 설하시면서 삼백여 회의 경을 설하셨지만, 삼장 십이부 가운데로 섭수(攝受)되었다. 삼장이란 경장, 율장, 논장을 가리킨다. 삼장이 가르치는 것은 계정혜(戒定慧)를 벗어나지 않는다. 다시 요약해서 말하자면, 인과(因果)의 두 글자로 불법의 전부를 포괄하고도 남음이 없다. 인과의 두 자는 모든 성인과 범부, 세간과 출세간 모두를 포함하고 있다. 인은 인연이며, 과는 과보이다.

 

비유하면 곡식을 심는 것과 같이 한 알의 곡식의 씨는 인이 되며, 햇빛과 비바람은 연이 되고 열매를 맺어 수확하는 것은 과가 된다. 만약 인연이 없으면 절대로 결과도 없다. 일체의 성현이 성현으로 된 까닭은 바로 인과(因果)를 명확히 인식한 때문이다. 범부는 과보를 두려워하고 보살은 원인을 두려워한다. 범부는 단지 나쁜 과보를 두려워하는데, 나쁜 과보가 악한 원인에서 연(緣)이 일어난 것은 모르고 평상시에 함부로 행동하여 일시의 즐거움만 도모하고, 그 즐거움이 괴로움의 원인임을 모른다. 보살은 그렇지 않다.

 

평상시 일거수일투족을 삼가면서 처음을 진중하게 하여 악한 원인이 없으니 어찌 나쁜 과보를 불러오겠는가. 설령 나쁜 과보가 있어도 모두 아주 오랜 전의 원인이며, 기왕 이전의 인을 심었으면 이후의 과보는 피하기 어려운 것이다. 그러므로 과보를 느낄 때는 편안하게 받아들이며 조금도 두려움이 없다. 이것이 인과를 밝게 인식한다는 것이다. 비록 성현이 인과에 어둡지 않더라도 이전에 심은 나쁜 원인은 반드시 괴로운 과보를 느끼게 된다.

 

만약 이러한 도리를 이해하면 일상생활에서 순경계(順境界)든 역경계(逆境界)든, 괴로움 ∙ 즐거운 ∙ 슬픔 ∙ 기쁨을 만나더라도 일체의 경계는 모두 이전에 원인이 있는 것이다. 그래서 경계상에서 망령되게 미움과 사랑의 마음을 내지 않고 자연히 놓아버리면, 일심으로 뜻이 도에 있게 되니, 무명과 아만, 습기와 결정들 모두 장애가 없게 되어 자연히 도에 들어가기가 쉽게 된다.」 라고 하였다.

- 《열반경涅槃經》

 



'염불수행자료 > 염불수행대전' 카테고리의 다른 글

6. 정토법문(136)  (0) 2017.10.12
6. 정토법문(135)  (0) 2017.09.30
6. 정토법문(133)  (0) 2017.09.14
6.정토법문(132)  (0) 2017.09.07
6. 정토법문(131)  (0) 2017.08.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