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파사론(破邪論)에서 「부처님께서 세 명의 제자를 진단(震旦)으로 보내서 교화하게 했다. 유동(儒童)보살은 공구(孔丘)라고 했으며, 광정(光淨)보살은 안회(顔回)라고 칭했으며, 마하가섭(摩訶迦葉)은 노자(老子)라고 칭하였다.」 고 하였다.
* 공자를 유동(儒童) 보살이라 하였는데, 동(童)자를 쓴 것을 보면 공자는 8지보살 위의 보살임을 알 수 있다. 참고로, 문수보살을 문수사리동자(童子)라고도 부른다.
* 중국의 선화상인은 「노자와 공자는 모두 보살의 응화신(應化身)이다. 유교, 불교, 도교는 셋이면서 하나이고, 하나이면서 셋이다.」 라고 말한 적이 있다. 선화상인은 공자께서 나이 40세를 불혹(不惑)이라 한 것은 돈이나 명예 또는 색(色)과 같은 외물(外物)에 흔들리지 않는 부동심(不動心)을 얻어 미혹을 끊은 반야의 지혜가 현전(現前)한 경지이고, 나이 50세를 지천명(知天命)이라 하였는데 이는 숙명통을 얻은 것이고, 나이 60세를 이순(耳順)이라 하였는데 이는 천안통을 얻었다는 뜻이며, 공자가 70세를 종심(從心)이라 한 것은 공자가 누진통(漏盡通)을 얻었다는 뜻이라 하였다. 그러면서 선화상인은 불교와 유교가 다르지 않으며, 다만 유교는 세간법(世間法)이고, 불교는 출세간법(出世間法)이라 하였다.
* 연지대사도 〈죽창수필〉에서 「공자는 유동보살이다. 그러한즉 유교경전을 읽고도 족히 생사를 마칠 수 있다. 불경은 어떻습니까. 부처님께서는 묘한 이치를 삼장에서 두루 말씀하셨으나 유교경전은 천백마디 말 중에 겨우 한 둘에 미칠 뿐이다. 공자도 알지 못했던 것은 아니었으나 다만 공자는 세간의 이치를 주장하셨고, 석가세존은 출세간의 이치를 말씀하신 것이다. 그 의도는 비록 다르지 않으나, 그 문(門)을 펼칠 때는 같지가 않은 것이다. 배우는 사람들을 부득불(자기의 근기와 성향에 따라)각자 그 길을 좇아 간 것이다.」 라고 하였고, 또 「공자께서 인도에 태어나셨더라면 반드시 불법을 선양(宣揚)하여 중생을 제도했을 것이요, 석가세존께서 노(魯)나라에 태어나셨더라면 반드시 유도(儒道)를 천양(闡揚)하여 만세를 교화하였을 것이다.」 라고 하였다.
* 공자와 노자를 부처나 대보살의 화신으로 부르는 것은 감산대사도 마찬가지였다. 감산대사는 그의 저서 〈노자도덕경해(老子道德經解)〉에서 「공자는 세상을 경영하는데 전념했고, 노자는 세상을 잊는데 전념했으며, 부처는 세상을 벗어나는데 전념했다.」 라고 하였다.
* 정공법사는 우익대사의 〈아미타경요해〉를 풀이한 글에서, 「나는 성숙하지 않은 견해를 하나 가지고 있다. 그것은 공자와 노자는 대보살의 화신이라고 생각한다는 점이다. 그들은 석가모니불께서 먼저 보낸 선진부대(先陣部隊)이다. 부처님께서는 그들을 중국에 보내 중국인들에게 먼저 하나의 철학기초를 마련하게 한 다음 광대하고 정미(精微)한 불가(佛家)사상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하셨다.」 라고 하였다.
* 남회근 선생은 「세간(世間)에 들어와 보살노선을 걸어간 사람은 아주 적었습니다. 중국의 성인인 공자 같은 사람이 이런 노선을 걸었습니다. 공자는 성현의 경계에 도달할 수 있었지만, 번뇌의 뿌리를 없애버리지 못해 최고의 보살 경계는 아니었으며 원만하기에는 부족했습니다.」 라고 하였다.
* 남회근 선생은 「석가모니 부처가 공자보다 사람의 마음을 전환 변화[轉化]시키는데 더 비중을 두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온갖 악(惡)의 근원이자 온갖 선(善)의 근본이 되는 마음에 대해서 더욱 깊고 철저하게 탐구했습니다.」 라고 하였다.
* 인광대사는 공자께서 자손들이 백 세대(世代)에 지속할 공덕[百世之德]을 쌓으셨다고 자주 찬탄하셨다.
* 정공법사는 「공자의 교육이 일세(一世), 즉 일생을 말하는 것이라며, 불법은 삼세(三世), 즉 과거 ・ 현재 ・ 미래를 말하는 교육입니다. 불교는 불타(佛陀)의 가르침입니다. 즉, 온 세상 중생을 위해 불타가 설하신 지극히 원만한 가르침입니다.」 라고 하였다.
* 〈광홍명집(廣弘明集)〉에 보면 「열자(列子)에 따르면, “예전에 상(商)나라의 태재(太宰) 비(嚭)가 공구(孔丘)에게 ‘그대는 성인인가.’ 라고 묻자, 공구(공자)가 ‘나는 아는 것이 많고 잘 기억할 뿐이지 성인은 아니다.’ 라고 하였다. 다시 ‘3황(皇)이 성인인가.’ 라고 묻자, ‘3황은 지혜와 용기가 가상하나 성인인지는 나도 모르겠다.’ 라고 하였다. 다시 ‘5제(帝)는 성인인가.’ 라고 묻자, ‘5제는 어짊과 신의가 가상하나 성인인지는 나도 모르겠다.’ 라고 하였다. 이에 태재가 놀라서 ‘그렇다면 도대체 누가 성인인가.’ 라고 캐물으니, 공구가 안색이 변하면서 뜸을 들이다가 ‘서방에 성인이 계신데, 다스리지 않아도 어지럽지 않고 말하지 않아도 저절로 믿고 교화하지 않아도 저절로 행해지기에 너무나 위대해서 백성이 무어라 이름 붙이지도 못한다.’ 고 답했다.” 고 합니다. 만약 3황과 5제가 반드시 성인이라면, 어째서 공자가 이를 말하지 않고 숨겨서 바로 성인을 감춘 죄를 범할 리가 있었겠습니까. 이로서 추측해보면, 부처님이야말로 대성인이신 것을 미루어 알 수 있습니다.」 라고 하였다.
* 〈대장일람집〉에서 「파사론(破邪論)에서 말하였다. “오(吳)나라 왕이 말했다. ‘공자와 노자를 부처님과 비교할 수 있습니까.’ 감택(闞澤)이 말했다. ‘멀어도 한참 멉니다. 왜냐하면 공자와 노자가 시설(示說)한 가름침은 하늘의 제도와 작용을 본받은 것이라서 감히 하늘을 어기지 못하지만, 모든 부처님께서 시설한 가르침은 하늘을 본받아서 봉행(奉行)하는 것이라 감히 부처를 어기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보면, 실로 비교할 수 없음이 명백합니다.’」 라고 하였다.
* 송나라의 대학자인 주희(朱熹)가 남긴 〈주자어류(朱子語類)〉에, 「하늘이 공자를 내지 않았다면, 만고의 세월이 칠흑의 밤과 같이 어두웠을 것이다.」 라고 하였고, 사만천(司馬遷)은 「천자 왕후로부터 나라 안의 육예(六藝)를 담론하는 모든 사람에 이르기까지, 공자의 말씀을 판단기준으로 삼으니, 그는 지극한 성인[聖人]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고 하였으며, 원(元)나라 무종(武宗)은 공자를 기리는 비문(碑文)에서, 「공자가 아니면 공자이전의 성인이 밝혀지지 않았을 것이고, 공자가 아니면 공자 이후의 성인이 본받지 못할 것이니, 이른바 요순(堯舜)의 도를 계승하여 말씀을 펴셨고, 문왕과 무왕의 법도를 밝히시어, 백왕의 모범이 되었으니 만세의 사표라 할만하다.」 라고 극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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