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상 지극한 마음으로 오로지 부처님만 생각하여 잊지 않을 수 있다면, 산림山林에 있거나 마을에 있거나, 또는 낮이건 밤이건 앉았건 누웠건, 모든 부처님께서 이 사람을 늘 눈앞에 있는 듯 보고 계시리라.
- 《열반경》
누가 묻기를, 「견성見性해서 도道를 깨치면 생사를 벗어나거늘, 하필 생각을 한곳에 집중하고 아미타불을 불러 서방정토에 나라고 하십니까.」
답하노라. 「수행하는 사람은 참으로 잘 살필지니라. 사람이 물을 마셔 보아야 차고 뜨거움을 아는 거와 같이, 이제 귀감을 두어 많은 의혹을 깨뜨리노라. 모든 어진이여, 자기의 행해行解를 마땅히 관觀하여 보아라. 견성하고 도를 깨쳐 부처님 수기授記를 받고, 조사祖師의 맥을 잇기를 능히 마명馬鳴이나 용수龍樹와 같이 할 수 있는가. 걸림 없는 변재辯才를 얻고 법화삼매法華三昧를 증득하기를 능히 천태 지자智者와 같겠는가.
모든 가르침에서 다 내세우는 행해겸수行解兼修를, 남악南嶽 혜충慧忠국사와 같이 닦을 수 있겠는가. 이 모든 대사들께서 말씀과 교敎를 펴 왕생을 권하였으니, 이것은 나도 이롭고 다른 이도 이롭게 하기 위함이다. 어찌 나와 남을 그르치기 좋아 하리오. 하물며 부처님께서 간절하게 입으로 찬탄하시고, 옛 성현들도 부처님의 가르침을 좇아 절대로 어기지 않았다.
〈왕생전〉에 실린 대덕大德과 그들이 남긴 기이한 자취가 한없이 많으니 잘 보면 알 것이다. 스스로 비추어보고 또 스스로 헤아려보건대, 목숨을 마칠 때에 생사왕래를 자재自在할 수 있는가. 시작도 없는 때로부터 지은 악업의 중한 장애가 나타나지 않겠는가. 현재 이 몸이 능히 윤회를 벗어나겠는가. 삼악도 여러 길 가운데를 자유로 오고 가되 절대로 고뇌가 없겠는가. 천상의 인간과 시방 세계에 마음대로 의탁하되 절대로 장애가 없겠는가. 이를 확실히 알아서 자신이 잇고 그와 같이 하려면 어찌 잘 해야 하는지 알면 괜찮지만, 만일 그렇지 못할진대 한때 교만한 마음으로 영겁의 고통을 장만하고 자신의 선과 이익을 잃어버리니 장차 누구를 원망하리오. 슬프고 슬프도다.」
- 영명 연수선사
「극락세계는 수승殊勝하고 미묘하여 부처님들이 거처하는 곳이다. 연화대는 범부가 갈 곳이 아니다. 이치상 범부는 범부의 땅으로 가고 성인은 성인의 도량을 밟아야 하는데, 어찌 낮고 하찮은 범부가 그렇게 장엄한 곳에 가 태어날 수 있단 말인가.」 라고 누가 묻는다면, 「범부가 극락세계에 노닐 수 없다면 어찌 부처님이 오탁악세를 밟을 수 있겠는가. 비록 부처님이라 하더라도 중생을 교화하기 위해 오탁악세에 내려오시고, 또한 범부라 하여도 부처님께 공양을 드리기 위하여 정토에 나게 되는 것이다.」 라고 대답하리라.
- 원효대사〈유심안락도遊心安樂道〉
* 아미타불의 후신인 중국의 영명연수선사는 그의 저서 〈종경록〉에서 말하기를, 「원효 스님의 지혜가 환희 빛남은 마치 해나 달과 같다. 학식은 인천(人天)의 마음을 꿰뚫었고, 정법(正法)을 온전히 깨달아 진여(眞如)의 밀밀(密密)한 뜻에 계합하였다. 스님은 과연 대오(大悟)하고 대철(大徹)한 분이시다.」 라고 극찬하였다.
* 청화스님의 스승이신 금타대화상(金陀大和尙)은 원효대사와 조선의 진묵(震黙)대사를 팔지(八地)보살의 화신이라 하였고, 서산대사를 사지(四地)보살의 화신이라 하였다.
* 대각국사 의천은 원효대사를 원효성사(聖師), 원효보살로 격상시킨 장본인으로, 「원효성사 오른쪽에 가는 선철(先哲)은 없다. 오직 용수(龍樹)와 마명(馬鳴)만이 원효성사와 짝할 수 있다.」 고 하였다.
* 중국의 〈송고승전(宋高僧傳)〉은 원효대사에 대해, 「총각의 나이에 흔쾌히 불법(佛法)에 입문하여 스승을 따라 학업을 받았는데, 다니는 곳이 일정함이 없었으며, 의해(義解)의 세계를 용맹하게 격파하고 문장의 진영을 씩씩하게 횡행하여 굳세고 흔들림 없이 정진하여 물러남이 없었다. 삼학(三學 : 戒定慧)에 널리 통하여 신라에서 그를 일컬어 ‘만인을 대적할 만하다’ 고 하였으니, 정밀한 의해가 신(神)의 경지에 들어감이 이와 같았다. 일찍이 의상(義湘)법사와 함께, 현장삼장(玄奘三藏)과 자은(慈恩)의 문하(門下)를 흠모하여 당나라에 들어가려 했으나, 그 인연에 차질이 생겨서 갈 생각을 그만두고 여기저기 돌아다녔다.
거사들과 함께 주막이나 기생집에 드나들었다. 지공(誌公)화상(중국 양나라 고승)처럼 금속으로 된 칼이나 쇠로 된 석장(錫杖)을 가지고 있으면서, 혹은 소(疏)를 지어 화엄경을 강론하기도 하고, 혹은 거문고를 어루만지면서 사우(祠宇)에서 즐기기도 하였으며, 혹은 여염집에 기숙하기도 하고, 혹은 산이나 강가에서 좌선(坐禪)을 하기도 하였으니, 마음 내키는 대로 하여 도무지 일정한 법식이 없었다.」 라고 하였다.
* 염불을 크게 선양(宣揚)한 연종(蓮宗)의 초조(初祖) 혜원(慧遠)법사는 원효대사를 가리켜, 「몸은 동이(東夷)에 있어도 그 덕은 당나라를 덮었는데, 가히 불세출의 위인이라 할 만하다.」 라고 하였다.
염念이란 마음으로부터 하는 것이다. 마음으로 생각하고 기억하여 잊어버리지 않는 것을 염이라 한다. 유교로 비유하면, 선비가 생각 생각에 공자를 생각하고 기억하면 공자에 거의 가깝게 갈 수 있지 않겠는가. 지금, 생각 생각에 오욕五欲을 생각하고 그리워하는 것은 잘못이라 하지 않으면서, 도리어 부처를 생각하는 것은 그르다 하는구나.
- 연지대사〈죽창수필〉
* 유교의 비조(鼻祖)인 공자(仲尼 : 孔丘) 도교의 종조(宗祖)인 노자는 과연 누구인가. 부처님과 고승들께서는 바로 대보살의 화현이라 말씀하신다.
* 영명연수 선사의 〈만선동귀집〉 「기세계경(起世界經)에서 부처님이 “내가 성자(聖者) 둘을 진단(震旦 : 중국)에 보내 교화를 행하게 하였는데, 하나는 노자로서 곧 가섭보살이요, 또 하나는 공자로서 곧 유동보살이다.” 하셨다. 예부터 지금까지 인간을 이롭게 하시는 모든 분들이 밀화보살(密化菩薩)임을 분명히 알 수 있다. 이는 오직 보살만이 밝게 아실 일이요, 범부들은 헤아릴 수 있는 바가 아니다.」 라고 하였다.
* 〈대장일람집〉에서 「변정론(辯正論)서 말하였다. ‘중니(仲尼)는 곧 유동(儒童)보살이었다. 먼저 이 땅에서 유행하면서 방편행으로 점차 교화했으며, 오탁(五濁)의 세상을 불쌍히 여겨 구제하려고 오상(五常 : 仁義禮智信)을 선포하였다.’」 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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