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미타불이 여러분의 참 이름입니다. 322
부처란 것은 완벽한 자리이기 때문에 그 자리를 확신할 때는 우리 몸도 거기에 따라가는 것입니다. 꼭 그런 것입니다. 그래서 불타관을 확립하시고 그 다음은 계율을 청정히 하십시오. 현재는 부처님 계율을 더러 함부로 합니다. 부처님 말씀은 거짓말이 없습니다. 부처님 말씀은 사소한 것이나 우리 몸뚱이에 대해서나 우리 마음에 대해서나 어떤 것에 대해서나 조금도 오류가 없는 그런 말씀입니다.
더러 세세한 계율 가운데는 인도에는 있고 우리 한국에는 없고 그런 점은 있을 수 있겠지요. 그러나 적어도 음식을 어떻게 먹으라. 이성간에 어떻게 사귀라. 이런 정도는 조금도 빈틈이 없습니다. 이런 것은 꼭 우리의 마음과 몸을 정화해서 우리 중생들로 하여금 본래 성품 자리 진여불성 자리를 온전히 깨닫게 하는 그런 법문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계행을 지키지 않으면 그때는 우리 마음도 정화가 안 되고 우리 몸도 정화가 안 됩니다.
어느 분들은 물질이라는 것은 허망한 것이니까 마음속으로 범하지 않으면 되겠지. 그러나 몸과 마음이 둘이 아니기 때문에 몸으로 범하면 마음도 그만큼 범하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철저하게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계율을 지키셔야 그래야 우리 몸도 마음도 정화가 되어서 그래서 우리가 불성 자리에 더욱더 가까워지게 되는 것입니다.
본래 부처인 우리 중생이 업을 지어서 어느 정도 그 업에 물들어 있기 때문에 나쁜 습관성 때문에 습관성習慣性을 떼는 것이 공부인 것입니다. 나쁜 습관성 때문에 우리 몸도 아프고 마음도 흐린지라 그 습관성을 떼어 버려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선 계행이 청정해야 쓰겠지요. 계행이 청정해야 우리 마음에 선정禪定이라 하는 삼매三昧의 기운이 담깁니다.
우리 중생 마음은 파도같이 항상 혼란스러운 것입니다. 혼란스러운 마음을 바람 잔 파도같이 또는 맑은 거울같이 그렇게 돼야 참다운 지혜가 비춰 옵니다. 우리 중생들 마음은 마치 터럭 끝같이 항시 동요부단動搖不斷해 마지않습니다. 이것은 나라는 관념 너라는 관념에 가려서 이른바 반야바라밀을 몰라서 그럽니다.
설사 반야바라밀般若波羅蜜을 어렴풋이 알았다 하더라도 우리에게는 습관성이 오랫동안 축적되어 있기 때문에 철저한 계행을 지켜야 습관성이 녹아 나고 동시에 우리 마음이 가면 갈수록 우리 생활이 하루하루 부처님과 가까워지는 것입니다. 몇 말씀만 더 드리겠습니다마는 앞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부처님 가르침은 완전무결한 가르침인 것이고, 일미평등한 가르침이기 때문에 이른바 대도무문大道無門이라, 참다운 진리라는 것은 어느 문이 따로 있고 따로 없는 것이 아니란 말입니다.
염불하는 문이나 주문하는 문이나 참선하는 문이나 또는 기도 모시는 문이나 다 똑같습니다. 그러나 다만 핵심이 무엇인고 하면 우리 마음이 진여불성이라 하는 그 반야바라밀 자리에 입각해야 합니다. 그러기에 참선도 부달성공不達性空하면 좌선무익坐禪無益이라. 제법의 공자리에 우리가 이르지 못하면 참선해도 별 볼일이 없단 말입니다. 부달성공이라, 일체 성품이 본래로 비어 있다는 그런 경계를 모른다고 생각할 때에는 좌선무익이라, 참선을 하여도 별로 이익이 없다는 것입니다.
지금 내 공부가 돼내 안 돼내 그런 사람들은 보통은 다 모든 명상名相이 본래로 허망하다는 것을 잘 몰라서 그럽니다. 자기 재산도 자기 몸뚱이도 자기 관념도 모두가 본래 바로 즉공卽空이라, 본래 공이란 말입니다. 따라서 이렇게 느낄 때는 지장보살을 부르나 뭣을 부르나 다 하나입니다. 지장보살 약사여래 관세음보살 모두다 진여불성 자리의 공덕을 우리한테 표하는 자리입니다. 부처님 자리가 무슨 이름이 따로 있습니까.
진여불성 공덕이 무한 공덕이기 때문에 한 말로 하나의 개념으로 해서는 다 표현을 못합니다. 그러니까 부처님을 진여불성을 자비로운 쪽으로 봐서는 관세음보살, 지혜로운 쪽으로 봐서는 문수보살, 우리 중생들의 병고를 다스리는 쪽으로 봐서는 약사여래, 우리 영혼을 이끌어서 극락세계나 천상으로 인도하는 그런 면에서는 지장보살 그러는 것입니다.
부처님의 자비와 지혜 광명은 우주에 충만해 있습니다. 부처님은 바로 순수한 생명의 광명입니다. 따라서 부처님이 바로 우주의 광명이다. 이런 차원에서는 무량광불無量光佛이라, 우리 생명의 본질인 부처님의 수명이 영생불멸永生不滅한 그런 차원에서는 무량수불無量壽佛입니다. 목숨 수壽자, 무량수불이란 말입니다.
번뇌가 조금도 없이 청정한 면에서는 청정광불淸淨光佛이라, 행복이 충만한 면에서는 환희광불歡喜光佛이라, 환희광불이란 말입니다. 이러는 것입니다. 그러는 것이지 관세음보살 지장보살 따로따로 뿔뿔이 있지 않습니다. 뿔뿔이 있다고 생각할 때는 우리 부처님 가르침이 다신교라, 참다운 종교도 못되는 것입니다.
불자님들 분명히 바르게 느끼셔야 됩니다. 똑같은 것인데 다만 공덕 따라서 그와 같이 이름이 다르니까 어떻게 부르나 본래 하나다. 그렇게 생각하면 똑 같아지는 것입니다. 그와 같이 바른 가치관 바른 불타관을 가지고서 계행 청정히 할 것이고, 그 다음 문제는 바른 가치관을 가지고 계행이 청정하다 하더라도 우리 공부가 지속적으로 계속이 안 될 때에는 우리가 과거 전생에 잘못 붙인 습관성, 금생에 나와서 잘못 붙인 그런 나쁜 습관, 이런 것이 순식간에 녹아 날 수가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생각 생각에 걸음걸음 소리 소리에 공부를 하여야 차근차근 더 익어져서 공덕은 더 쌓이고 나쁜 습관은 추방되는 것입니다.
여러 불자님들 바른 가치관, 반야바라밀을 꼭 가지십시오. 반야바라밀을 가지실 때에는 우리 마음은 천지 우주를 우리 마음으로 합니다. 우리 마음은 바로 천지와 더불어서 절대로 둘이 아닙니다.
무엇 때문에 남을 미워하고 남을 싫어하고 하겠습니까. 물질이라 하는 것은 우리한테 필요한 필요조건은 되어도 충분조건은 못됩니다. 그걸로 해서는 우리 행복을 절대로 얻을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허두에 말씀드린 대로 안심을 바랍니다. 안락을 바랍니다. 안락을 바라면 안락스런 마음을 갖기 위해서는 꼭 반야바라밀이 전제가 되어야 합니다.
그와 같이 반야바라밀! 어느 것도 나와 더불어서 둘이 아니고, 내 마음은 본래로 무량의 지혜 공덕을 다 원만히 갖추고 있다. 이렇게 느끼고서 계행 청정하시고 거기에서 또 빠뜨리지 말 것이 지속적으로 공부를 하셔야 합니다. 염불도 화두도 주문도 모두가 지속적으로 공부하기 위한 그런 법문인 것입니다.
따라서 염불도 생각 생각에 화두도 생각 생각에 주문도 생각 생각에 이렇게 하셔서 우리의 그런 나쁜 습관이 다시는 우리한테 들어오지 못하게 하고, 기왕 들어온 나쁜 습관은 그냥 다 온전히 나가 버려서 우리 꼭 금생에 성불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