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청화 큰스님 법문집/1. 다시 읽는 큰스님 법문

아미타불이 여러분의 참 이름입니다. 308

본연스님 2017. 4. 24. 06:37


 

308. 그 청정법신淸淨法身은 끝도 갓도 없는 우리 생명자체, 우리 생명자체의 영원성을 표현한 말씀인 것이고, 원만보신圓滿報身은 그 생명자체에 포함돼 있는 만능의 자리, 만공덕의 자리를 말한 거란 말입니다. 화신化身의 자리는 그 활용의 자리, 만 공덕 그 자리에서 거기에 빗나가지 않게시리 우주의 법 따라서 우리가 활동하는 그런 자리가 이른바 화신자리란 말입니다.

 

그 자리가 다행히도 본래로 우리한테 갖추고 있단 말입니다. 이것이 이른바 본래성불本來成佛이란 말입니다. 아까 용수보살 게송偈頌을 제가 마저 다 말씀을 드리지요. 인연소생법因緣所生法 아설즉시공我說卽是空이라, 인연 따라서 이루어진 법은, 내가 이제 모두가 다 공이라고 지금 선언을 하노니, 그러나 인연이 있으면 연이 있으면 또 그때 역시 시가명是假名이라, 역시 그런 그 가짜 즉 말하자면.. 그 몽환포영같은 꿈이요 허깨비지만 또 인연이 있으면 그런 가假가 있단 말입니다.

 

이와같이 그 본래적인 자리는 다 공간성空間性 시간성時間性을 떠나버린 공의 자리인데 또 인연이 생기면 또 역시 가짜로 임시간 잠시간 그런 모양을 낸단 말입니다. 산이요 냇이요 산하대지山河大地 삼라만상森羅萬象이나 자기 인간의 존재나 모두가 다 즉 말하자면 가假의 자리입니다. 가의 자리란 것은 실지로 있지가 않은 것입니다.

 

우리 중생의 그 고통苦痛은 무엇인고 하면 그 가의 자리를 실지로 있다고 생각한단 말입니다. 그 자기 몸뚱이를 우리가 얼마나 아끼고 우리가 보존할라고 애씁니까. 남하고의 싸움이나 전쟁이나 모두가 다..., 모두가 다 자기라는 존재가 실지로 있다고 생각합니다. 가짜가 아니라. 인생고는 거기 가서 있습니다. 가족들과 화합 못하는 것이나 부부간에 금슬이 나쁜 것이나 모두가 다 자기라는 존재를 잘 몰라서 그래요.

가짜로 있다는 것은 어째서 없는 것인가. 처음에 용수보살 그 게송에 있는 바와 같이 인연생因緣生이기 때문에. 인연소생법因緣所生法 아설즉시공我說卽是空이라. 인연따라서 생겨난 법은 바로 그것이 공이란 말입니다. 우리가 4정견四正見이란 말이, 네가지 정견이란 말이 불경에 보면 있습니다.

 

4가지 정견은 무엇인고 하면 그것은 고苦 공空 무상無常 무아無我라. 고 공

무상 무아라. 인생은 고요 또는 무상이고 공이요 무아라. 이것이 4정견四正見그럽니다. 네 가지의 바른 견해란 말입니다. 욕계欲界나 색계色界나 무색계無色界나 윤회하는 그 세계란 것은, 그 실체를 우리가 바로 본다고 생각할 때에..., 4정견은 그것은 그런 삼계에 있어서의 삼계의 그런 현상을 바로 보는 견해가 4정견입니다.

 

그 대승에서 바라볼 때는 그때는 아까 제가 말씀드린 바와 같이 일체존재가 모두가 다 불성佛性아님이 없단 말입니다. 다 부처님 불성뿐이란 말입니다. 그러나 소승자리에서 삼계 윤회하는 자리에서 본다고 생각할 때는 다 모두가 무상無常하고 또는 공空이고 또는 무아無我고 또는 고苦란 말입니다.

 

인생고人生苦라는 것은 아, 분명히 무상한 것을 무상이라고 보지를 않습니다. 아까 말씀드린 바와 같이. 그 무상이란 것이 굉장히 중요한 뜻입니다. 이것도 역시 그 우주의 도리를 그대로 표현한 말이란 말입니다. 무상이라. 어째서 무상인가. 이것도 인연생이기 때문에 내내야 무상입니다. 인연따라서 잠시간 잠시간 모양같이 보이는 것이지 사실로 있지가 않습니다.

그 무상이란 도리를 다행히도 현대물리학에 와서사 비로소 사람들이 납득하게 되었단 말입니다. 그 전에는 깨닫지 않으면 그건 뭐 다 있어 보이고, 자기가 제일 중요해 보이고, 내가 있어보이고, 알 수가 있습니까마는 현대물리학이 다 증명을 했단 말입니다. 어떻게 증명했냐하면 그 물질이란 것은 사실은 분석하고 분석하고 들어가서 보면 끄트머리에 가서 물질이 아니어버린단 말입니다.

 

여러분들께서 무슨 물질이라든가 그런 상相에 걸릴 때는 스스로 분석을 해보시면 좋습니다. 이것을 불교말로 석공관析空觀이라, 분석할 석析자, 빌 공空자, 불교에서 석공관 그래요. 이 물질이란 것은 모두를 갖다가 분석하고 분석해서 그 눈에 보이지도 않는 그런 자리에까지 우리가 이르러버린단 말입니다. 그런다고 생각할 때 내 몸뚱이가 어디가 있겠습니까. 이 몸뚱이도 각 세포細胞로 되고 세포는 갖다가 각 원소元素로 되고 원소는 갖다가 또 원자原子로 되고 말입니다. 더 들어가면 그때는 그야말로 참 전자電子나 양성자陽性子나 중성자中性子나 그렇게 돼있단 말입니다.

 

그러면 양성자나 중성자 그런 것은 무엇인가. 그런 그 소립자素粒子까지 가서 보면 그때는 무엇이 무엇인가 몰라 버립니다. 무엇이 무엇인가. 바르게 실측을 할 수가 없어요. 실측을 중생의 제한된 지혜로 해서는 물질의 가장 구경적인 소립자, 미립자는 이른바 미시적인 그런 경계는 확정적으로 증명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기에 이른바 하이젠베르크(Heigenberg 1901-1976 )의 불확정성不確定性의 원리라, 불확실한 결국은 하나의 에너지만 남는 것이지 어떻게 뭐라고 규정을 지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보리방편문菩提方便門도 내내야 따지고 보면 방금 제가 말씀드린 삼체법문三諦法門, 공空 가假 중中이라, 모든 것은 다 공이고 인연에 따르면 그때는 가假라 하는 몽환포영같은 실질적인 실존적인 그런 있는 것은 아니겠지만 허무하지만 결국은 가로 임시간 존재하는 그런 가가 가로 현상적인 것이 이루어지고 또는 그와 동시에 이 공과 그런 가를 다 포함한 그 자리가 이른바 중도의 자리란 말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것이 삼체법문이라, 3가지 진실한 법문인 것이고 여러분들이 허두에 외이신 보리방편문菩提方便門도 똑같습니다. 법신法身 보신報身 화신化身자리기 때문에 그 삼신三身에 대해서 확실한 그런 개념을 여러분들이 가지고 느낀다고 생각할 때는 기독교의 그 삼위일체도 금방 느낄 수가 있는 것이고 말입니다.

기독교는 예수님의 뜻은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지금 현행된 그런 해석은 그 하느님은 하느님대로 따로 있고 하나님이 창조한 우리 중생들은 그때는 별도로 있다고 보지 않습니까. 가까스로 예수님 혼자만 하느님 아들인 것이지 다른 것은 하느님 아들이나 딸이 아니란 말입니다.

 

그러나 그 당시의 예수님의 본뜻은 절대로 그렇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자기만 하느님의 아들일 뿐만 아니라 어느 누구나 똑같이 하느님의 아들이고 딸인 것이고 말입니다. 또는 우주자체가 하느님이 창조하고 우주는 그대로 이 자연계는 갖다가 우리 인간이 아무렇게나 그냥 마음대로 써도 무방하다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이 그 창조한 우주자체도 모두가 다 하느님과 다름이 없단 말입니다. 그렇게 했으리라고 우리가 생각할 수가 있어요. 예수님도 위대한 성자니까 말입니다.

 

잘 모를 때는 아까 제가 말씀드린 그 석공관析空觀, 석공을 해서 아, 분석하고 분석하고 들어가면 인제 이것은 나중에는 갖다 끝내가서는 이것이 물질이 아닌, 그 물질이 아닌 그것이 무엇인가. 현대말로 하면 결국은 에너지 아닙니까. 에너지. 에너지불멸의 법칙이라. 또 바로 말하면 결국은 하나의 생명生命이란 말입니다. 우주란 것은 그 생명이라 하는 에너지라하는 생명만 우주에 충만해 있습니다. 빈틈도 없이 충만해 있습니다.

 

그 자리를 우리 불교적인 종교적인 의미로 부치면 그 자리가 바로 불성佛性이고 진여眞如고 또는 법성法性이고 또는 도道고 한단 말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우리 불교를 공부할 때는 대승적으로 알면 참 마음이 후련합니다. 다 트여버리니까 말입니다. 앞으로 가나 뒤로 가나 다 모두가 하나의 자리니까 말입니다.

 

다른 것이 있단 말이지..... 아, 옆으로가도 그때는 다 불성뿐이고 뒤로 가나 또는 과거에 우리가 전생에 몇 만생 지금 지나왔지만 그때까지 올라가봐도 다 다 모두가 불성뿐이란 말입니다. 그래서 모든 존재는 사실은 다 불성으로 와서 부처님한테서 와서 다시 부처님한테로 지금 가는 것입니다.

 

우리 중생들은 지금 아, 거지가 되고 또는 자기가 지금 몰골이 별로 좋지 않은 그런 모양을 하고 있다하더라도 사실은 그 자리에서 어느 누구나 어김없이 지금 다 성불의 길을 가고 있는 것입니다. 부지런히 금생 못 닦으면 또 내생 가는 것이고 아, 내생 못 닦으면 또 저내생가는 것이고. 몇 생을 그렇게 윤회해도 안되다가 나중에 또 우리지구가 다 파괴가 돼요. 파괴가 삼천대천세계가 다 파괴가 될 날이 옵니다. 현대물리학은 그걸 다 다 예상을 하고 있어요. 대폭발이 생기고 대 대지진이 생기고 그래가지고서 우주가 다 산화가 되어서 다 타버린단 말입니다. 그럴 때가 옵니다.

 

그럴 때가 오면 그때는 그 인간존재는 좋으나 궂으나 그때는 우리가 공부를 안할 수가 없어요. 그것이. 이 몸뚱이 때문에 지금 못하지만 몸뚱이 허망한 줄 알고 몸뚱이가 불타고 자기 집이 불타고 자기 친구가 불타고 그러는 셈인데, 그렇게 불타버린다 하더라도 우리 마음은 그대로 성성적적惺惺寂寂하니 존재합니다. 마음은 생명자체니까 죽음이 없단 말입니다. 그러나 이치로는 상당히 여러분들이 지금 아, 그렇기도 하겠구나, 생각은 하시겠지요. 그러나 정작 아, 그러면 어떻게 증명證明할 것인가. 아이, 저는 한 몇 10분만 얘기를 하고 싶은데 여러분들이 서울서 오시고 부산서 오시고 했다고 생각할 때에 하찮은 말씀을 들으러 오셨는데 몇 10분에 끝낼 수가 없단 말입니다.

 

나무아미타불南無阿彌陀佛 염불念佛 부지런히 하십시오.

나무석가모니불! 나무석가모니불! 나무마하반야바라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