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미타불이 여러분의 참 이름입니다.280
280. 타력염불他力念佛에 관해서 말씀을 했습니다만 역시 자력과 이 타력문제는 굉장히 그 중요하게 이것이 이루어진 그러한 하나의 수행법이기 때문에 관심을 많이 두고 우리가 공부를 하고 연구를 해야 됩니다. 역시 자기 힘이란 것은 이것은 우리가 생각할 때에 자기란 것이 원래 불교에서는 없다고 하지 않습니까. 그러기 때문에 자기 힘이라 해도 내내야 자기를 통해서 이루어진 하나의 우주의 힘이라고 볼 수가 있지요. 일체존재가 본래로 부처 아님이 없이 부처와 나와 둘이 아니기 때문에 말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참 어느 때든지 무슨 부처란 것이 꼭 사람마음한테만 아, 불심佛心이 있는 것이 아니라 우주는 결국은 불심뿐이란 말입니다. 이 공간도 모두가 다 불심으로 충만돼 있습니다. 천지우주가 하나의 불심뿐입니다. 어디에나 에너지가 없는 데가 없지 않습니까. 이 공간속에나 모두가 그야말로 지금 산소나 수소나 모두 원소가 지금 꽉 차있단 말입니다. 그렇듯이 우주에는 결국은 이 불심이라 하는 순수생명이 꽉 차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공부할 때도 우주에 충만해있는 그 진리의 당체인 진리의 그 기본적인 생명자리를 의식을 해야 돼요. 의식을 말입니다. 우리가 깨달아버리면 그때는 의식할 것도 없이 진리하고 하나가 되었으니까 그 자리에서 영원한 생명의 광명 속에서 우리가 소요하겠지만 깨닫지 못하고 있을 때는 아까 말씀드린 바와 같이 그 자리를 그 생명의 본체하고 빨리 하나가 되기 위해서는 하나가 되어야 그래야 윤회를 벗어나고 성불이 되니까 말입니다. 하나가 되기 위해서는 그 하나의 자리를 우리가 의식해야 한단 말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른바 염불이라든가 여러 가지 그런 그 부처님께서라든가 위대한 성자가 우리한테 그런 방편을 제시를 많이 했습니다. 나무아미타불南無阿彌陀佛이나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이나 지장보살地藏菩薩이나 모두 그런 염불念佛도 역시 아무렇게나 그냥 그렇게 제시가 된 것이 아니라 영원적인 그 불성자리, 불성자리의 공덕을 우리한테 제시했단 말입니다.
그런 이름도 우리 사람들이 그냥 김아무개다 뭣이다 이렇게 아무렇게나 짓는 것이 아니라 그 성자들이 하는 행위는 이것은 아무렇게란 것은 절대로 없습니다. 모두가 다 그 본체와 이 관계성에서 이루어진단 말입니다.
가령 나무아미타불 하면 나무아미타불을 하는 하나의 그런 명호名號밑에서 얼마만치 우리 중생이 많이 정화가 될 것인가 말입니다. 즉 다시 말하면 생명이 거기에 묻어있단 말입니다. 우리가 김아무개 박아무개 그 이름들은 우리 중생들이 적당히 짓지 않습니까. 허나 부처님 명호, 부처님 이름보고 명호라고 하지 않습니까. 부처님 명호는 그렇지 않고서 그 부처님의 공덕功德이 이름에 거기에 묻어있단 말입니다.
즉 따라서 그런 부처님의 공덕을 우리가 꼭 의식해야 됩니다. 끝도 가도 없이 전개되어 있는 생명의 바다자리 말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관세음보살을 염불을 왼다하더라도 아, 관세음보살이 어디가 모양이 이렇게 한분이 아주 거룩하게 보인다는 이와 같이 관념해서는 안됩니다. 그것은 하나의 방편입니다. 그 관세음보살의 자비로운 생명이 우주에 충만해있다. 불교란 것은 오직 그 우주적인 하나의 생명이니까 말입니다.
하나의 생명인 것이지 둘이나 셋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중생이 잘못바서 나는 나요 너는 너요 그러는 것이지 우리가 바로 본다고 생각할 때에 바탕을 본다고 생각할 때는 모두 하나의 생명이란 말입니다. 우리가 깨달은 것은 꼭 자기 스스로 아, 뭐 무슨 성자가 되어가지고 자기 스스로 위대한 사람이 되고 한다는 그것이 아닙니다. 천지우주와 자기와 결국 하나가 되어버린단 말입니다.
그래야 깨달은 것입니다. 원래 하나니까 말입니다. 원래 하나인 것을 우리 중생은 나로 보고 너로 보고 우리가 구분해 본단 말입니다. 아무리 미운사람도 아무리 좋은 사람도 결국은 자기와 둘이 아니란 말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어떻게 지장보살을 염불을 한다하더라도. 더러 잘 모르는 사람들은 관세음보살을 하는 사람한테 대해서도 자기가 지장보살을 해서 조금 더 힘 얻은 사람들은 관세음보살 그만두고 지장보살을 하라, 이런단 말입니다. 굉장히 이것은 그야말로 참 옹색한 그런 말씀입니다.
어떻게 하든 지간에 지장보살을 왼다하더라도 지장보살로 해서 우주를 다 통투하니 조금도 막힘이 없는 그런 생명으로 봐야 그래야 지장보살을 바로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래도 하나의 중생의 그런 그릇 따라서 부처님 방편이, 즉 말하자면 여러 가지로 있는 가운데서도 이른바 총대명사總代名詞, 총대명사의 명호는 내내야 아미타불阿彌陀佛 아닙니까. 그러니까 저같은 사람 생각으로 해서는 기왕이면 총대명사 아미타불로 해서 그렇게 다 했으면 될 것인데, 이래저래 복잡한 이름을 그렇게 각기 고집을 부리고 한다는 것은 조금 그때는 자기 스스로도 그마만치 명호자체가 그것이 제한되기 때문에 이름도 역시, 이름이 중요한 것은 이름대로 해서 또 의의가 있지 않습니까.
가사 좁은 범위에서의 개념적인 이름과 보다 더 광범위한 그런 이름과는 또 차이가 있지 않습니까. 헌데 그런 여러 가지 이름가운데서 이른바 그 총대명사는 역시 아미타불이란 말입니다. 그러기에 불경보면 무생청정보주명호無生淸淨寶珠名號라, 무생청정보주명호라. 무생이란 것은 없을 무無자, 날 생生자 말입니다. 불생불멸不生不滅의 결국은 청정보주淸淨寶珠라. 보배 보寶자, 구슬 주珠자. 생멸을 떠난 아주 그 평등무차별平等無差別의 청정보배같은 이름이란 말입니다.
그것이 이른바 아미타불阿彌陀佛 이름이라고 이렇게 돼 있어요. 경經에 그래서 그 아미타불로, 아미타불로 통일하면 이와 같이 이름자체가 아주 가장 보편적인 이름이기 때문에 우리한테 우리 공부에도 보다 더 편리할 것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그래서 그렇게 여러분들 취향대로 하시되 하여튼 가급적이면 가장 그 보편적이고 궁극적인 그런 이름을 하나 취해서 그렇게 하시면 좋겠고, 또는 아까 말씀드린 바와 같이 우리가 다른 식의 그런 공부를 한다하더라도 모두가 다 근본자리를 안 떠나고 한다는 것은 똑같습니다.
어느 화두를 의심 하나 모두가 다 불성자리를 우리가 찾기 위해서 하는 것이지 다른 것이 아니니까 말입니다. 그러니까 무슨 공부나 그렇게 생각하면 좋은데 근본자리를 떠나서 그냥 우리 생각이 덮어놓고 의심한다든가 덮어놓고 염불만 한다든가 그래서는 우리 공부에 큰 도움을 얻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니까 어떻게 공부를 하든지간에 우리의 본래면목자리, 우주의 근본자리를 우리가 안떠나는 그런 자세에서 우리가 자기 스스로 공부하는 법을, 가령 주문呪文을 외도 주문을 외는 그 주문 자체가 역시 우주의 그 본래 에너지 자리를 말씀했습니다. 마치 명호가 그렇게 하듯이 말입니다.
그리고 하나의 다른 그 묵조黙照하는 잠자코 우리가 명상에 잠기는 그런 법도 역시 그 아주 그 묵시적黙示的인 것은 하기는 하지만 역시 우주의 생명자리를 바로 의미해있단 말입니다.
그러니까 어느 화두話頭나 어느 염불念佛이나 어느 주문呪文이나 또는 불경佛經을 외는 것이나 모두가 다 그 하나의 자리에 대한 그런 간절한 참구심參究心과 그런 그리움으로 해서 충만한 그런 마음으로 공부를 하셔야 그래야 우리 공부가 보다 더 속달이 될 것이고, 또 공부하는 방법은 아까 말씀드린 바와 같이 앉아서 하나 서서 하나 또는 반반 섞어서 하나 그것은 그때그때 상황 따라서 능률적으로 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