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청화 큰스님 법문집/1. 다시 읽는 큰스님 법문

아미타불이 여러분의 참 이름입니다.250

본연스님 2013. 11. 25. 07:07

 

250. 제가 한번 되풀이를 해드립니다. 제행諸行이 무상無常이라, 모든 것은 그 순간찰나도 변함없이<항상恒常> 변해서 마지않는 제행무상諸行無常인 것이고, 그러기 때문에 모든 것은 나라고 고집할 것이 없이 모두가 다 이것은 그야말로 참 일매지게 무아無我란 말입니다. 우리 중생衆生이 잘못 봐서 자기 존재를 이것이 고유한 걸로 보는 것이지 그 본질적으로 본다고 생각할 때는 고유한 것으로 볼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그 무상無常이고 무아無我인데 그 실상實相, 그 본래면목자本來面目자리, 그 본래의 자리가 즉 말하자면 불성佛性이란 말입니다. 또 구체적으로 말하면 그때는 진여불성眞如佛性입니다. 아, 진리眞理 쪽으로 말하면 진여眞如고, 아, 생명生命쪽으로 말하면 그때는 부처 불佛자, 성품 성性자, 불성佛性이란 말입니다. 그래서 이것이 우리 불교가 다른 외도와의 근원적인 차이입니다. 우리 불자님들 오늘 여기 오셔서 이것만 잘 알으셔도 상당히 큰 수확이 되십니다.

 

아까 말씀마따나 부처님가르침은 그렇게, 다른 종교도 세계적인 종교는 다 그런 도리를 갖추고 있지만 그런 도리를 불교와 같이 그와 같이 체계 있게 확연히 말씀한 가르침은 없습니다. 부처님 가르침은 석가모니부처님 뒤에도 그 무수한 도인들이 소승에서 대승으로 다듬고 자꾸만 다듬고 다듬고 해서 그 골수 정수가 즉 말하자면 방금 제가 말씀드린바와 같이 열반경涅槃經에서 말씀하신 그 제행이 무상이라, 모든 것은 이것은 변함없이<항상恒常> 조금도 고유한 것이 없이 변화해서 마지않는다 하는 제행이 무상이라, 또 모든 것은 이것은 그 변화해서 마지않으니까 고유한 자기라고 할 것이 없단 말입니다. 좀 어려운 말로 하면 어느 시간이나 어느 공간대에 존재하지가 않는단 말입니다.

 

참말로 존재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러면 참말로 존재하는 것이 없으면 불교가 허무주의가 되어버리겠지요. 그 제행이 무상이요, 제법이 무아라, 이런 도리만 알면 그때는 불교는 허무주의입니다. 그러나 불교는 그런 것이 아니라 그 제행이 무상이고 제법이 무아지만 참말로 존재하는 생명의 실상, 생명의 본래적인 생명은 이것은 이른바 열반적정이라, 이른바 바로 불성이란 말입니다. 그 부처님, 부처님이 바로 불성인데 불성은 그러면 어디가 있는 것인가?

 

아까 제가 말씀드린 바와 같이 불성은 여기 있고 저기 있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불성은 여기 있고 저기 있고 하는 것이 아니라 나한테나 너한테나 이 공간 속에나 어디나가 사실은 다 불성뿐이란 말입니다. 불교의 대총상법문大總相法門, 불교의 아주 다 몰아서 부처님말씀을 한말로 하면 그 천지우주가 다 그 불성뿐이다, 이런 도리란 말입니다.

다른 빈틈이 있다든가 다른 것이 있다든가 하면 그때는 부처님의 가르침의 대승법문이 못됩니다. 나나 너나 원수나 이것이나 다 사실은 바로 본다고 생각할 때는 우리가 번뇌煩惱가 없이 바른 청정한 눈으로 본다고 생각할 때는 다 바로 부처님이란 말입니다. 그래서 부처님같이 봐져야 그 때 묻지 않고 보는 것이 됩니다. 성인들은 다 이것이나 저것이나 어느 것을 보든지 부처님같이 보신 것이고 우리 중생들은 자기 업장業障으로 본단 말입니다.

 

업장이 무거운 사람들은 아, 원수가 있고 무엇이 있고 자기한테 좀 좋게 하면 좋게 보이고 그러겠지요. 우리가 사는데 있어서 어떻게 생활하는 것이 가장 행복幸福스러운 생활인가? 이것은 우리 마음이 항시 편안便安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마음이 불안스러우면 행복이 될 수가 없습니다.

 

그 마음이 불안스럽지 않기 위해서는 우리 마음이 이 가을하늘같이 맑아야 한단 말입니다. 우리 마음이란 것은 한계限界가 있지가 않습니다. 아까 제가 말씀드렸지요. 마음이나 부처님이나 심불급중생心佛及衆生 시삼무차별是三無差別이라, 마음이나 부처님이나 또는 모든 중생이나 이것이 셋이 아니고 오직 하나의 생명이란 말입니다.

 

우리 마음이란 것은 국한局限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중생들은 아, 나는 지금 김아무개인데 내 마음도 내 몸뚱이같이 지금 이렇게 제약되어서 갇혀있는 것이다, 이렇게 본단 말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 스스로 자승자박自繩自縛이라, 스스로 마음을 묶어놓는 것이지 우리 마음은 본래로 한도 끝도 없이 우주와 더불어서 광대무량廣大無量한 것입니다.

 

여기서 깊이 생각하십시오. 우리 마음이 그 하루에도 그때그때 진심嗔心을 내고 탐심貪心을 내고 여러 가지로 변동이 많지 않습니까. 그것은 우리 중생이 잘못봐서 그러는 것입니다. 바로 본다고 생각할 때는 진심을 낼 것도 없고 탐심을 낼 것도 없단 말입니다. 끝도 가고 없이 우주에 가득 차 있습니다. 어느 한 사람마음뿐만 아니라 다 그렇습니다.

 

여기 계신 분들 다 기독교를 믿으나 다른 종교를 믿으나 유교를 믿으나 다 마음은 똑같이 끝도 가도 없이 우주에 충만해 있습니다. 바로 그 자리가 부처님자리인 것이고 그 자리가 바로 하나님자리입니다. 그 자리를 알면 이슬람과 또 기독교와 또는 유대교도가 싸울 필요가 아무것도 없겠지요.

 

그 잘못생각해서 자기들 종교만 옳고 다른 것은 이것은 다 마귀다. 아무것도 아니다. 이렇게 좁은 마음도 역시 마음을 다 몰라서 그럽니다. 그래서 우리 불교는 심종心宗이라, 불교는 마음종교라, 이렇게 말씀도 한단 말입니다. 아무튼 아까 말씀드린 바와 같이 우리 마음은 끝도 가도 없는 그런 광대무변廣大無邊한 자리가 우리 마음인 것이고, 또는 그만 텅 비어서 광대무변하고 아무것도 없으면 또 허망하겠지요. 그러나 그 가운데는 그 기기묘묘奇奇妙妙한 신비부사의神秘不思議한 모든 그런 공덕功德이 가득 차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