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청화 큰스님 법문집/1. 다시 읽는 큰스님 법문

아미타불이 여러분의 참 이름입니다.240

본연스님 2013. 9. 16. 06:39

240. 염불선이란 것은 아까 말한 바와 같이 6조 혜능스님 선법이 바로 염불선입니다. 또 4조 도신스님 수행법이 바로 염불선입니다. 우리 마음에서 진여불성을 안 떠나고서 염불하면 다 염불선입니다. 여러분들이 지장보살을 외고 또는 관세음보살을 염하시고 한다 하더라도 우리 생명의 본체, 우주의 본바탕자리인 불성을 떠나지 않고 하면 그것 모두가 참다운 염불선입니다.

 

원래 참선이란, 묵조선 즉 말하자면 아무런 의단이 없이 잠자코 명상하는 묵조선이나 또는 화두공안을 의심하는 공안선이나 부처님 명호를 외우는 염불선이나 모두가 다 진여불성자리를 떠나지 안해야 되요. 진여불성자리를 떠나면 참선이 아니어요. 참선과 일반 공부와의 차이는 무엇인가 하면, 일반 공부도 근원은 똑 같지만은 화두를 하건 묵조를 하건 또는 염불을 하건 진여불성자리, 우리 생명의 본래면목자리를 떠나지 않으면 다 참선입니다.

 

설사 ?이뭐꼬??이뭐꼬?애쓰고 땀을 흘리면서 선방에서 애쓴다 하더라도 진여불성을 떠나면 그때는 참선이 못돼요. 그렇게 되어야 쓰겠지요? 당연히 본래의 자리를 안 떠나면 ?똥막대기?를 부르나 뭘 부르나 그때는 모두가 다 참선이란 말입니다. 이름이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 마음이 존재의 실상자리를 안 떠나면 돼요. 제법諸法이 실상實相이라. 모두가 다 바로 보면 그때는 실상 아님이 없지 않습니까.

 

그래서 그 참선 공덕功德은 참선하는 것은 그냥 애만 쓰고 아무런 소득도 없이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물론 깨달을 때에야 활연대오豁然大悟해서 다시없는 위없는 행복을 느끼겠습니다마는 깨달은 뒤에 뿐만 아니라 우리가 공부해 나갈 때도 한 걸음 가면 한걸음 간만큼, 우리 마음이 조금씩 열려 가면 열려간 만큼 마음도 개운하고 몸도 훨씬 좋아집니다.

사실 보통 명상공부를 한다 해도 잔병이 떨어지고 머리도 더 좋아지고 눈도 밝아진다고 하지 않습니까. 참선해서 약간 힘을 얻어 놓으면 밤새껏 눈을 뜨고 있어도 눈이 별로 피로한 줄을 모르는 것입니다. 우리 마음이란 것은 원래 근원자리가 바로 불성이기 때문에 불성은 또 무한의 공덕자리, 무한의 가능성이 거기에 포괄되어 있는 자리기 때문에 우리가 불성에 가까워지면 가까워진 만큼 행복감이라든가 재미라든가 건강이나 그런 모든 것이 거기에 상응됩니다.

 

그래서 참선의 이름을 현법락주現法樂住 현공덕주顯功德住라, 모든 공덕이 나타나는 그런 공부란 뜻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참선할 때 그냥 고통만 생각하고 아무런 거기서 얻는 것은 나중에 깨달을 때 외에는 별로 없다, 그렇게 생각을 말으십시오. 우리가 하루 닦으면 닦은 만치는 우리마음이 불성하고 가까워짐과 동시에 우리 행복감이나 건강이나 재주나 모든 것이 거기에 따라간단 말입니다.

 

이렇게 느끼고서 참선을 해야 될 것이고, 또 참선할 때는 꼭 기본적인 준비가 있어야 됩니다. 누구나가 다 참선에 그냥 들어가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맨 처음부터 모든 준비를 다 갖추어야만 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가 집안에서, 가령 밤에 염불도 하고 그러다가도 한 30분이나 1시간 그렇게 앉는 버릇을 붙이면 그렇게 버릇이 차근차근 드려가면 나중에는 더 앉기도 훨썩 쉽고 우리 마음도 그만큼 차근차근 정화되어 갑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평소에 습관성이 필요합니다. 그러한 때도 우리 마음 자세가 참선하는 자세가 되어야 합니다. 참선하는 자세를 간단히 말하면 일상삼매一相三昧 일행삼매一行三昧입니다. 일상삼매란 것은 모든 것이 부처라는, 하나의 실상 외에는 없다. 천번만번 되뇌어도 일체존재 모두가 다 우리 중생이 잘못 봐서 그런 것이지 바른 정견으로 본다고 생각할 때는 모두가 다 불성뿐이다. 진여불성뿐이다.

 

앞서도 얘기한 봐와 같이 대총상법문이 그래야 됩니다. 다른 것은 없이 모두가 다 만능을 갖춘 만공덕을 갖춘 진여불성뿐이다. 이렇게 보는 것이 일상삼매고 또 그렇게 보는 것을 끊임이 없이 생각생각에 계속해야 된단 말입니다. 우리는 보통 그때그때 순간생각은 더러 할 수 있지만 지속을 시키지 않지 않습니까. 기본이 좀 좋거나 환경이 개운할 때는 모르지만 시끄러운 데라든가 또는 기분이 언짢을 때는 그냥 그런 쪽으로 우리 마음이 달려가 버립니다.

 

따라서 우리가 모두가 다 진여실상뿐이다, 불성뿐이다. 하는 그런 일상삼매를 생각생각에 다른 생각이 없이 지속을 시키는 것이 일행삼매라. 그렇기 때문에 일상삼매와 일행삼매는 항시 달라붙어 있어야 되어요. 6조 혜능스님이라든가 4조 도신스님이라든가 그런 도인들 스님 또는 이 금강심론에 있는 이 금타선사님 가르침도 내내야 모두가 다 그런 쪽으로 포괄이 됩니다.

 

육조단경에서 부촉품咐囑品이라, 부촉품은 결론 같은 말씀입니다. 부촉품에가서 ‘여러분들이 만약 부처님의 무량지혜를 알려고 하면 마땅히 일상삼매와 일행삼매를 공부할 지니라’라고 했습니다. 일상삼매는 천지우주가 모두가 다 진여불성이 아님이 없다는 말입니다. 진여란 것은 하나의 진리인 동시에 다른 것은 조금도 섞이지 않은 참다운 도리가 진여 아닙니까. 그 진여라는 것은 우리 인생과 모든 것의 참다운 진리가 진여입니다.

 

또 그 자리는 하나의 도리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생명이기 때문에 불성 그래요. 불성이란 말입니다. 모든 그런 진리라는 것은 바로 진리만으로 해서 사변적으로 이론에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이 바로 생명이란 말입니다. 진여불성을 한 번에 말합니다. 그러므로 진여불성을 항시 놓치지 않아야 그래야 이른바 일상삼매고 일행삼매 입니다. 또는 그런 자리를 생각 생각에 자나 깨나 앉으나 서나 자리에 누울 때나 그 자리를 안 놓치면 그때는 꿈속에도 우리 공부가 되어 갑니다.

 

우리 꿈이라는 것이 과거전생부터서 업장을 많이 지어놓으니까 우리 범부들은 별스런 꿈을 다 꾸지 않습니까. 금생에 경험도 안한 것들이 자꾸만 꿈속에 나온단 말입니다. 그러니까 그렇지 않기 위해서라도 우리가 잘 때까지 강인하게 우리 의지를 진여불성에다 딱 매어놓고서, 그래서 일상삼매를 하고 또는 일행삼매로 해서 빈틈없이 우리가 저절로 자지면 잘망정 빈틈없이 하다보면 결국은 꿈속에서도 다른 꿈도 안 꾸고 부처님 공부 쪽으로 우리 진여불성이 차근차근 꿈속에 정화가 되어간단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