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력(願力)
누구나 삶에 가치를 두고 추구하는 세계가 있고 다만 이것이 ‘개인의 이익이냐 공익(共益)이냐’에 따라 사람의 살림살이, 인격이 결정되는 것입니다. 선진국이란 국민성이 공익에 가치를 두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사회의 가장 큰 병폐가 개인의 이익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개인도 불행하고 국가 민족자체의 질을 떨어트리는 것입니다.
예전에 회사를 운영하는 분, 보살님이 찾아와서 기도에 대해서 묻기에 일체중생까지는 너무 무리 같고 회사 직원들을 위하여 기도하시라고 권했더니 본인은 아직까지 가족 외에 기도한 적도 없고 그렇게 말하시는 분들도 못 보았다고 합니다. 최소한 기업을 운영하면 회사에 직원들을 가족으로 생각하고 그 들을 위해서 기도하는 것이 회사 발전에도 좋은 일이고 오너의 인격이며 자질입니다.
지나다 절이 있기에 들어갔더니 노 비구니스님이 계신데, 그렇고 그런 중으로 생각했는지 본인은 아직까지 국가와 민족을 위해서 기도했다고 자랑? 삼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개인적 영화부귀를 위한 삶은 박복한 삶이며 결국은 끝에 가서 비참해질 수밖에 없는 것이고 소아적(小我的) 원력도 결국은 중생의 삶을 벗어나지 못합니다. 그러나 대부분 그렇게들 살아가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이런 저런 이유로 절집에 들어와서 바른 길로 가고자 한다면 제일 먼저 큰 뜻을 세우는 것이(願力) 고속도로에 진입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개인적 소망이나 소아적 원력은 아직 가시덤불에서 헤매고 있는 것이고 언 발에 오줌 누는 격이며 일체중생을 위한 대원(大願)만이 나의 잘못된 생각이나 행위(業)를 바꿀 수 있는 것입니다. 일체중생을 위한 대원이 마음에서 사무 쳐들어가면서 나의 탐(貪)․진(瞋)․치(癡)가 떨어지면서 눈에 보이는 세계가 달리보이고 펼쳐지는 세계 또한 새로운 것입니다.
일체중생을 위한 원을 가꾸어나가는 방법론(方便)에 기질에 따라 염불도하는 것이고 진언도 간경도 좌선도 하는 것입니다. 이것의 대승(大乘) 가르침의 핵심입니다. 늘 저는 간경을 해도 일체중생에게 들려준다는 마음으로 ‘나무아미타불’도 일체중생들에게 들려준다는 마음으로 일체중생이 이 염불소리를 듣고 이고득락(離苦得樂)하기를 발원하는 것입니다
- 아 - 망상(妄想)없이 온전히 한다면야 성자(聖者)이지요. 그러나 망상을 지고라도 한다면 언제인가는 망상 없이 온전히 할 날이 금생 아니면 다음 생이라도 이루어지겠지요.
나무아미타불
* 이고득락(離苦得樂): 모든 중생(衆生)들이 삼악도(三惡道)에서 벗어나 고통을 버리고 기쁨을 얻어 해탈의 경지에 이르기를 바라는 뜻.
* 첨보는 녀석, 도량에 흙 받을 적에 흙 속에 묻어 들어와 인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