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청화 큰스님 법문집/1. 다시 읽는 큰스님 법문

아미타불이 여러분의 참 이름입니다.212

본연스님 2013. 2. 25. 06:39

212. 금강심론 특별대법회(3)

 

해탈십육지에는 아까 말씀드린바와 같이 부처님이나 그 뒤에 위대한 조사(祖師)스님들이 우리 범부에서 성불까지 올라가는 그런 한계를 조목조목 비교해가면서 해설을 했어요. 어떠한 때에 올라가면 우리 마음이 어떻게 맑아지고, 또는 우리마음의 정도라든가 또는 증상이 어떠한 증상이 나오고 하는 것을 말입니다.

 

이런 것은 굉장히 중요합니다. 참선을 오랫동안 안 해보신 분들은 별로 느끼시지 못하지만은 참선을 적어도 10년이고 이제 참 해본 분들도 그렇게 공부를 무던히 했지만은 깜깜하단 말입니다. 어떻게 되어야 깨달음인가? 아까 그 깨달음의 증상을 제가 다 말했지만 그 부처님께서 깨달으실 때는 맨 처음에 업장(業障)이 다 녹아지니까 숙명통(宿命通)이 열렸습니다. 숙명통이라. 숙명통은 과거를 다 훤히 아는 지혜란 말입니다.

 

자기 뿐 아니라 모든 존재의 과거도, 다만 바로 전에 있는 그런 과거가 아니라 무시이래(無始以來)의 무한세월동안 과거 무한세월동안의 모든 것을 다 아는 지혜가 이것이 숙명통입니다. 여러분들 공부가 좀 돼서 아무리 잘 돼서 좀 기쁜 마음이 생기고 한다 하더라도 우리 공부할 때는 그때그때 쾌적하고 기분 좋을 때가 한 두 번이 아닙니다.


그러나 경솔한 사람들은 그냥 내가 공부가 이만하면 무던히 됐겠지. 이렇게 착간한단 말입니다. 그런 때라도 내가 지금 숙명통을 했는가 안했는가. 그렇게 숙명통을 못했으면 공부가 아주 멀었단 말입니다. 숙명통을 꼭 먼저 해야 됩니다. 그래야 깨달았다는 증거가 된단 말입니다. 그 다음 무엇인가 천안통(天眼通)이라, 천안통은 미래를 다 안단 말입니다. 아까 숙명통은 과거를 깨닫는 것인데, 천안통은 미래를 다 알고 또는 우주 만유를 모두를 앉아서 볼 수가 있단 말입니다. 태양의 중심도 볼 수가 있고, 아, 별의 중심도 볼 수가 있고 말입니다.


우리 인간의 마음이라고 하는 것은 그렇게 소중한 것입니다. 마음 깨달으면 다 되는 것입니다. 모두가 다 헤아릴 수 없는 무량공덕이 우리 마음에 다 들어있단 말입니다. 어디서 꿔올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천안통이 생겨서 아까 말씀마따나 미래세(未來世)를 다 내다보고, 또 우주만유(宇宙萬有)를 그대로 우리가 이제 참 통관(洞觀)한단 말입니다.


또 그다음에는 누진통(漏盡通)이라, 우리 중생의 번뇌, 번뇌망상 무명심을 다 없애버린단 말입니다. 이것이 이른바 석 三자, 밝을 明자 삼명통인데, 삼명통을 해야 그래야 제대로 깨달은 것입니다. 그렇게 뚜렷이 한계가 있습니다. 또 이런 것은 공부를 무슨 학문적(學問的)으로 많이 했다고 해서 할 수가 있는 것도 아니고, 학문하고는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우리 마음 통하면 되는 것입니다. 학문을 많이 하면 자꾸 이렇게 따지고 저렇게 따지면 결국은 그야말로 참선을 못하니까 우리 마음이 안통하지요. 어떠한 경우나 꼭 삼매(三昧)에 들어서 참선 가운데 깨닫는 것이지 교리 체계로 해서, 교리체계를 이리 뒤지고 저리 보태고 깎고 해가지고서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 학자 분들은 불교의 그 많은 교리를 체계적으로 이렇게 공부하고 저렇게 공부해서 여러 가지 훌륭한 논문을 쓰는 것은 그건 갸륵합니다. 그건 갸륵한데 그렇게만 해서는 도인이 못됩니다.


어느 땐가는 다 놓아버려야 됩니다. 금생에 인간을 위해서 하는 가장 중요한 일은 무엇입니까. 우리 인간의 본래면목자리 본래본분자리, 본래본분자리는 부처가 되는 것 아닙니까. 제가 아까 입이 닳도록 소개한 육조 혜능스님도 일자무식(一字無識)이라 합니다. 일자무식이 참으로 긴가 아닌가는 우리가 확증을 못하지만은 아무튼 학문을 많이 한 분은 아니라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래서도 참선 그러면은 육조 혜능스님을 할애비같이 우리가 존중하지 않습니까. 그러한 모든 과정을 그 불경 내에 있는 모든 과정을 총 망라해서 십육 단계로 체계화 한 것이 금타 선사의 하나의 그야말로 참 하나의 후학들을 위한 귀중한 가르침입니다. 아이! 5분을 무슨 말씀으로 매울까? 아까 말씀드린바와 같이 그 우리가 인제 마음을 통해서 성자가 이제 되는 한계를 분명히 외워 두시길 바랍니다. 꼭 삼명육통이 되어야 그래야 올바른 성인입니다.


아무리 자기 문중어른이고, 또 역사적으로 그야말로 이름은 사람들이 숭앙을 많이 했다고 하더라도 정작 도인인가 아닌가 말입니다. 도인인가 아닌가는 도를 통해야 도인 아닙니까. 이름만으로 해서는 그때는 도인이 못된단 말입니다. 따라서 얼마만치 공부를 해야 되는가 얼마만치 공부를 해야 되는가는 꼭 깊은 삼매에 들어야 하는데 깊은 삼매에 들라면은 또 무엇이 필요한가?


그냥 바로 삼매에 들 수가 없잖습니까. 특히, 우리 출가한 스님네들은 깊게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삼매에 들라면은 철저한 계행(戒行)을 지켜야 됩니다. 시라불청정(尸羅不淸淨) 삼매불현전(三昧不現前)라. 시라(Sila)는 계율을 말하는 것인데, 계율이 청정하지 못하면 절대로 삼매에 못 듭니다.


그러면 계율이 청정한 것은 어떤 것을 말하는 것인가. 음식 함부로 먹지 말고, 남여 이성 간에 음욕(淫慾)을 떠나야 되고 말입니다. 이 두 가지 못 떠나면 절대로 삼매에 못 듭니다. 우리 불자님들, 특히 재가불자님들은 그야말로 참 육재일(六齋日)을 꼭 지켜야 한다고 제가 그때그때 법문 때마다 역설을 하지 않습니까. 육재일이란 것은 우리 스님 네들은 항시 육재일 기분으로 출가생활을 해야 되지만은 재가 불자들은 하다못해 육재일만이라도, 육재일만이라도 출가한 셈치고서 하루일종(日中一食)하고, 고기나 술이나 기타 그런 잡스러운 것을 먹지 말고 말입니다.

 

또는 육재일만이라도 남여 이성 간에 자기 내외라 하더라도 꼭 그 아주 그 순결을 지켜야 됩니다. 여러분들 능엄경을 보신 분들은 알지만은 능엄경에 이런 대목이 있어요. 그 음심(淫心)을 떠나지 않고서 삼매에 들려고 하는 것은 증사작반(蒸沙作飯)이라, 모래를 삶아서 밥을 짓는 것이나 같단 말입니다. 모래를 삶아서 밥이 됩니까. 음심을 떠나지 않고서는 절대로 안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내외간이라 하더라도 그 우리가 참 친밀(親密)하고 다생겁래(多生劫來) 훌륭한 도반(道伴)으로 알고 그렇게 같은 도반을 사귀어야지. 꼭 아주 그야말로 그 세속적인 속물이 되서 그렇게 사귀어서는 안 됩니다.


부처님 가르침은 그렁저렁한 가르침은 아니지 않습니까. 우리가 성불하는 가르침이란 말입니다. 또는 우리 마음가운데는 아까도 말씀드린 바와 같이 한도 끝도 없는 무한의 공덕이 다 들어 있습니다. 숙명통도 천안통도 누진통도 또는 신여의통(身如意通)도, 신여의통은 우리 몸을 마음대로 하는 것입니다.우리가 우리 마음에서 욕심의 뿌리가 다 뽑히면 그냥 우리 발이 하늘로 올라간다는 것입니다. 위대한 성인들이 열반 드실 때는 대체로 십팔신변(十八神變)이라 공중에 올라가서 십팔신통을 다했어요. 다는 그렇지 않지만은 그렇게 한 분들이 굉장히 많습니다.

 

그런 능력이 우리한테 다 있는 것을 우리가 그 공부를 못해서... 우선 저 같은 사람도 아까 말씀 말따나 한탄스런 것이 무엇인고 하면은 무던히도 애쓰고 한다고는 했는데, 그래 제대로 못했으니까 이제 아, 지금 신통도 못하지요. 변명의 여지가 아무것도 없습니다.

 

온전히 제대로 다 지키지를 못하고, 공부를 못해서 그럴 뿐입니다. 그래서 삼매에 들라면은 그 전제조건으로 해서 꼭 음식,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그런 정도로 가급적이면 일종하면 더욱 좋고 그렇게 못한다 하더라도 될 수록 적게 먹어야 됩니다. 고기나 오신채(五辛菜) 그런 것은 다시 말할 것도 없지요.그렇게 하시고, 남여 이성간도 같이 친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좋은데 하여튼 그 음욕만은 금하고, 그 음심하고 먹는 것 하고 그 두 가지 못 끊으면 아까 능엄경 말마따나 증사 작반이라 모래를 삶아서 밥을 짓는 것과 같다 것입니다.

 

절대로 안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유의 하셔서 그 삼매에 드는 아주 참 명상에 드는, 요즈음 별 명상이 다 나오지만은 가장 수승한 명상이 아, 우리 참선법 아닙니까. 우리는 지금 이 세상에서 제일 좋은 공부법으로 공부를 하는 것입니다. 그런 우리 영광(榮光)과 행복(幸福)을 생각해서 부지런히 공부하십시다.